프랑스 역대 23명 대통령 중 처음으로 파경맞은 사르코지 부부퐁피두·지스카르 데스탱·미테랑 아내도 마음고생 심해새 퍼스트레이디론 정치부 기자 풀다·여배우 부케 물망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세실리아 여사가 지난 5월 16일 엘리제궁에서 키스를 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52)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세실리아(49)가 결국 소문대로 ‘대통령 남편’과 이혼하고 엘리제궁을 떠났다.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선망의 대상임이 분명한 ‘퍼스트레이디’의 자리를 세실리아 여사가 스스로 포기한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아무튼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본인의 말마따나 궁 안에서 사는 것이 답답했다면 밖으로 거처를 옮겨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예는 과거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들 중에도 있었다. 그렇다면 세실리아가 엘리제궁을 나온 것은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에 대한 회의감 못지 않게 남편과의 원만치 않은 관계가 큰 원인이 됐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전 세계 언론과 호사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프랑스 최초의 현직 대통령의 이혼’은 엘리제궁 입성 이전부터 세실리아 여사가 보인 ‘튀는 행동’으로 시기가 문제였을 뿐 익히 예상됐던 것이었다.

첫번째 사건은 5월 대통령 선거 당락을 결정짓는 결선투표에 세실리아가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남편의 부인이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온갖 억측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세실리아는 이미 2년전 이벤트 기획가와 불륜에 빠져 한 때 가정을 버린 전력이 있던 터였다. 비슷한 시기 남편 사르코지와 미모의 여기자와의 염문설이 터져나온 것도 세실리아의 바람기에 남편이 똑같이 복수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오래 전부터 “카우보이 장화와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퍼스트레이디 생활은 상상만 해도 지겹다”고 서슴없이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정황으로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부부관계에 뭔가 심각한 게 있구나’하는 심증을 갖던 차에 대통령 취임 이후 잇따라 사단이 벌어졌다.

사르코지 부부의 다정했던 한때.

6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때 세실리아는 딸의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전 절차 없이 남편을 남겨 두고 일정보다 하루 먼저 돌아가 버렸다.

지난 여름 미국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중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초대한 비공식 저녁 만찬은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다음날 세실리아는 건강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 목격돼 몸이 아프다는 것은 꾀병이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도 세실리아의 뜻하지 않은 파티 불참과 다음날의 행적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달 초에는 불가리아 정부가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사르코지 부부를 초청한 자리에 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남편만 덜렁 혼자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 대통령 당선 전부터 파경의 조짐이…

엘리제궁이 둘의 이혼을 공식 발표한 다음날인 19일 세실리아는 “퍼스트레이디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녀는 “나는 응달과 평온과 고요를 더 사랑하는데, 그 자리는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 뒤섞여 더는 무엇을 못하게 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성격의 자신은 대통령 부인으로는 적합치 않았다는 고백이다.

남편의 행운을 비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받아 이제 막 예술성을 발휘하게 된 바이올리니스트와 같다”며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라고 한껏 부추겼다.

엘리제궁이 이혼을 발표할 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중이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내 개인문제를 언급하는 대신 프랑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대통령에 선출됐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지난 2006년 7월 14일 당시 내부장관이던 니콜라스 사르코지(왼쪽)가 부인 세실리아 여사와 함께 걸어가는모습. 이들커플은 결국 프랑스대통령으로 처음 파경을 맞은 부부로 기록되게 됐다.

세실리아와 사정은 다르겠지만 과거 엘리제궁 안주인들도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올해 타계한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의 부인 클로드는 미술작품을 수집하기를 좋아한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으나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행동에 제약을 받자 엘리제궁을 ‘불행의 집’이라 부르며 노골적으로 불편을 호소했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의 부인인 안에이몬은 엘리제궁의 공식적인 생활을 피해 아예 네 자녀와 함께 밖에서 생활하면서 궁안에는 방 하나와 사무실을 두고 공식업무만 챙겼다. 누구 못지 않게 마음고생을 많이 한 엘리제궁 안주인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정부(情婦)와의 사이에 딸까지 낳은 사실을 알면서도 의전상 필요할 때는 동행하는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사랑과 권력 사이에서 고민한 그녀는 남편의 병적인 외도를 정력적인 외부활동으로 해소했다.

83세가 된 지금도 가난한 나라에 식수공급 시설과 학교를 지어 주는 인도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역시 여성편력이 심했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부인 베르나데트 여사는 그럼에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내조해 ‘엘리제궁의 거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 관심은 누가 엘리제궁의 새로운 안주인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아직 세실리아의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의 혈기왕성한 성격으로 볼 때 독신생활은 길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또 EU의 핵심국가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G8 회원국이라는 프랑스의 위상을 생각할 때 퍼스트레이디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프랑스 언론이 주목하는 여인은 여배우 캐롤 부케와 일간 르 피가로의 정치부 기자 안네 풀다 두명이다.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에서 본드걸로 나왔을 만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부케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만찬장에 자주 동행할 만큼 친분이 깊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새 인생의 반려자는 풀다 기자가 가장 가깝게 근접해 있다.

사르코지가 맞바람을 피운 상대가 바로 풀다 여기자였는데, 파리에 있는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아파트 인테리어를 풀다 여기자가 모두 바꿔 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세실리아의 결혼식 주례를 서다 첫 눈에 반해 이 후 12년간의 구애 끝에 남의 여인을 빼앗는데 성공한 사르코지가 프랑스에 대통령제가 도입된 1848년 이래 23명의 대통령 중 이혼한 첫 대통령이 되리라고 당시 생각이나 했었을까.

각각 전 남편과 전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과 두 아들을 뒀고, 둘 사이에도 아들 루이(10)가 있는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세기의 이혼’은 이혼이 결혼 만큼이나 흔한 일이 돼 버린 요즘 서구 세태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결혼한 두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게 요즘 프랑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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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