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중 진정한 '말짱'은 누구일까… 이슈선점·레토릭·말투 등 화법 비교 분석

정치인의 ‘말’은 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에 따라 정치생명을 잃거나 위기에 빠질 수 있고, 반대로 지지 내지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12월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도 ‘말’의 중요성은 그대로 적용된다. 나아가 대선 후보의 화법, 즉 이슈선점, 정치수사(레토릭), 말투와 목소리 등은 때에 따라 대선지형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요소들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저마다 독특한 화법을 지니고 있다. 표밭에서 일어나는 반향도 제 각각이고, 그 이미지의 차이는 지지율 변화에 영향을 준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17대 대선 후보들의 화법이 대선에 미치는 잠재성을 가늠해 봤다.

‘이슈 선점’은 각 후보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선거의 중요한 이슈로 부각시키는 능력이다. 유권자가 해당 이슈를 중요하다고 판단하는지, 해당 이슈가 후보에게 유리한지에 따라 평가된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후보가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선점함으로써 경제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 대선에서는 아직 정치 이슈 선점에서 뚜렷한 우위를 점한 후보가 없다. 성균관대 이상철 교수(정치수사 전공)는 “각 후보들의 이슈 선점 기능은 BBK문제, 이회창씨 출마 등 변수 때문에 마비됐다. 어느 쪽도 이런 변수들로 이득을 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슈선점에 성공한 후보는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치수사의 경우 토론회와 각종 인터뷰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정책을 설명하는 논리력으로 평가된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전문가들로부터 “선거 키워드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체정부’, ‘통합정부’, ‘일하는 정부’ 등을 내세워 이 후보의 추진력을 충분히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는 정치수사로 ‘통합’, ‘분배’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외로운 길’, ‘다른 길’, ‘개혁’등의 구호로 일관된 이미지를 심었던 것과 비교해 핵심적으로 다가오는 메시지가 없어 단점으로 지적됐다.

경선 이후 그 동안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카리스마 지도자의 모습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는 평이다.

정치수사 부분에서 문국현 후보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그가 토론에서 순발력이 좋고 상대 후보의 약점을 지적할 때 핵심을 짚어낸다고 설명했다.

이상철 교수는 “한국 정치인들의 경우 네거티브 선거전략이 많기 때문에 저급한 레토릭이 문제로 지적된다. 문 후보는 상대를 폄하할 때도 수준 높은 수사를 구사하고 있다”고 평했다.

권영길 후보는 ‘진짜 진보’ ‘코리아 연방정부’ 등을 내세워 강한 정치수사를 구사한다. 이 방식은 기존 지지자의 표를 확실하게 모을 수 있지만, 부동층의 지지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어 단점으로 지적된다.

이회창 후보의 경우 최근에 대선출마 의사를 밝혀 정치수사 분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목소리와 말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최악’으로 꼽혔다. 탁한 음성과 불분명한 발음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한 정치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는 “이 후보의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없다. 후보간 1:1토론회를 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정동영 후보는 방송인 출신답게 뛰어난 화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이명박, 이회창 후보 등이 이성적 표현방법을 자주 쓰는 반면 정동영 후보는 이성적ㆍ감성적 표현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목소리도 좋다. 그러나 정 후보의 경우 ‘실체’보다는 ‘정치 수사’가 더 돋보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뛰어난 화술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한 수사학 전문가는 “말 잘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어 오히려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고 평했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감성적 표현방식에 능하다. 대화체로 토론과 연설에 임하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고 부드러워 대중연설에는 부적합한 화법을 구사한다.

왼쪽부터 권영길 후보, 이인제 후보, 문국현 후보

이인제 후보의 경우 가장 ‘정치인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논리정연하고, 반박과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이인제 후보 화법의 경우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일부 전문가들은 “후보 중 화술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뛰어나다. 다만, 이전 정치 행적과 더불어 평가해보면 이인제 후보의 메시지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게 흠”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언제나 웅변투로 말하기 때문에 대화체가 끊긴다. 연설, 인터뷰, 토론 모든 분야에서 같은 스타일의 화법을 구사한다”고 깎아 내렸다. 다만, 대선 후보 중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화법이 가장 대조적이라는 데는 전문가 모두 동의했다.

권영길 후보는 이성적인 표현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말투는 느리고 소박하지만, 사용하는 단어가 ‘사이비 좌파’ 등 강성을 띈 단어가 많아 유권자에게 강한 이미지로 전달된다.

이회창 후보는 목소리가 권위적이다. 97, 2002년 텔레비전 토론회를 분석해보면,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려있다는 평가다. 그의 경륜과 더불어 신뢰감을 준다.

그러나 친근감,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사실 나열이 많고 감성적인 측면의 설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이회창 후보는 화법을 바꾸려는 시도가 보인다. 이전보다 한층 부드러우면서도 높은 톤을 구사한다. 가끔 말 끝을 올리는 것도 이전과는 다른 점이다.

각 후보의 화법을 분석해 보면 이명박, 이회창 후보는 이성적 화법, 문국현 후보는 감성적 화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국대 신문방송학과 김연종 교수는 “이성적 화법의 후보는 감성적 표현법을, 감성적 화법을 구사하는 후보는 이성적 표현법을 더 자주 사용해야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치 화술’과 지지도는 별개다. 김연종 교수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연설 등 화법만 가지고 얘기할 수 없다. 전체적인 생김새와 느낌, 과거 행적에 대한 평가와 선입견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어눌한 말투의 조순 후보가 박찬종, 정원식 후보를 꺾고 당선된 사실이나, 92년 김영삼, 김대중 대결구도에서 김영삼 후보가 승리한 것도 이 같은 논리를 뒷받침해준다.

전문가들은 “말의 진실성, 윤리성, 효율성, 미학성 4가지 분야로 나누어 대선 토론회를 지켜보면 각 후보들의 화법을 일반인도 쉽게 분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이명박 화법이 변했다

후보들의 화법 분석을 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명박 후보의 화법 변화상이 2002년 노무현 후보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 이 후보는 불분명한 발음과 사투리, 부적절한 비유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말투도 일반 정치인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정치 연설보다는 대화에 가까운 말투라는 것이다. 그러나 8월 경선을 기점으로 이 후보는 이전과는 다른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느리면서도 낮은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구설수에 오르는 횟수도 점차 줄었다.

2002년 노무현 후보 역시 사투리와 강한 어조, 빠른 말투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구설수에 자주 오른 것도 이명박 후보와 닮은 꼴이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 역시 9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며 빠른 말투에서 느리고 낮은 말투를 구사하는 방식으로 화법을 바꾸었다.

성균관대 이상철 교수는 “이런 방식은 유권자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준다. 아마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듯 하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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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