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6년 만에 풀려난 로하스·프랑스 대통령 전 부인 세실리아

두 명의 여인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주였다.

콜롬비아 좌익게릴라에 납치됐다 6년 만에 풀려난 클라라 로하스(44)와 취임하자마자 여성편력으로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는 니콜라 사르코지(52) 프랑스 대통령의 전 부인 세실리아(49)가 주인공이다.

로하스. 전도양양한 콜롬비아 차세대 여성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납치된 지 6년만인 10일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지옥 같은 6년 간의 억류생활의 대가는 혹독했다.

당당하고 거칠 것 없었던 6년 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마중 나온 노모를 부둥켜 안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첫 소감을 건넨 그녀의 얼굴에는 풀려났다는 기쁨보다는 회한과 고통,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 로하스
콜롬비아 좌익게릴라에 잡혀 혹독한 억류생활
정글에서 '부엌칼 제왕절개'로 아들까지 낳아

로하스의 인생 역정은 40년 넘게 좌우대립으로 신음하고 있는 콜롬비아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1년 재무부에서 근무하던 로하스는 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여성 정치인 잉그리드 베탕쿠르(47)와 만나면서 인생의 대전환을 맞았다. 베탕쿠르와의 만남이 인생이 갈기갈기 찢기는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는 씨앗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로하스는 2002년 정치개혁을 기치로 ‘푸른산소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베탕쿠르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마약을 밀매하는 군벌과 이에 연계된 정치인의 부정부패가 극한으로 치닫고, 특히 남부지역은 FARC 등 좌익 게릴라들과 정부군의 대립으로 수년째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해 2월 위험을 무릅쓰고 정부군이 철수한 남부지역으로 유세를 떠난 두 여성 정치인은 FARC에 인질로 붙잡혔다. 푸른산소당은 피랍 이후 로하스를 베탕쿠르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나 부질없는 일이 돼버렸다.

석방의 기회는 의외로 일찍 찾아오는 듯 했다. 애초 지명도 높은 베탕쿠르를 노렸던 FARC가 로하스를 석방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러나 로하스는 거절했다. 혼자만 나올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끝 모를 억류생활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점점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던 그녀가 다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6년 인질 상태로 게릴라 간부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처음 공개한 콜롬비아의 한 언론인은 “로하스와 게릴라 간부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했으나, 인질인 로하스가 성폭행을 당한 결과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여기에 2007년 5월 8년 반 동안의 포로생활 끝에 탈출한 한 경찰관이 둘 사이의 아들 ‘엠마누엘’이 정글에서 게릴라들이 만들어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는 것을 추가 증언하면서 콜롬비아 국민은 로하스의 비극적인 삶에 눈물을 쏟았다.

납치된 뒤 태어난 아이까지 포로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석방교섭이 재개됐다. 마침내 좌파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에 힘입어 로하스는 지옥 같은 6년 간의 피랍생활을 마감했다.

로하스는 석방 기자회견에서 “2004년 4월 정글에서 게릴라 단원이 부엌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해 아들을 낳았다”고 증언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해 ‘엠마누엘’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그녀는 아이가 출산 당시 팔이 부러진데다 풍토병을 앓아 게릴라들이 치료를 이유로 빼앗아간 뒤 이후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 후 “행복했으나 번민했다”는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다만 “출산 이후로 만나지 못했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자신이 엠마누엘의 아버지란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고 했다. “죽었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로하스는 풀려난 지 사흘만인 13일 수도 보고타에서 먼저 정글에서 나와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던 세 살짜리 아들과 감격의 상봉을 했다. 로하스의 ‘해피엔딩’을 대대적으로 전하는 콜롬비아 신문 기사 옆에는 여전히 정글 속에 억류된 채 초점을 잃고 바닥을 응시하는 베탕쿠르의 체념한 듯한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세실리아
"사르코지는 18년간 가족식사 한 번도 안한 냉혈한"
방값도 안되는 위자료 등 비참했던 결혼생활 공개

사르코지 대통령의 전 부인 세실리아와 그녀의 아들 루이.

사르코지 대통령의 이제는 잊혀진 여인 세실리아. 사르코지의 새 애인이자 유명 여배우인 카를라 브루니(39)가 사르코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뉴스가 한바탕 언론을 휩쓸고 간 뒤 세실리아의 자서전 출판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다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세실리아와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한 기자가 쓴 ‘세실리아, 자서전’이란 책의 출판을 금지해 달라며 세실리아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그러나 “세실리아가 기자들에게 이미 전 남편과의 관계를 털어놓은 것은 사생활에 대한 비밀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세인의 관심은 자서전의 내용. 언론들이 일부 발췌된 내용을 종합하면 자서전은 세실리아가 사르코지를 온통 혹평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사르코지를 “대통령 같은 직위에 올라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한 세실리아는 “사르코지는 바람둥이, 내가 한때 사르코지를 사랑했다는 점이 믿기지 않는다”고 썼다.

또 “18년 결혼생활 중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적은 한번도 없고, 그는 항상 집무실에서 식사를 했다”며 “그는 자신의 아이들조차 사랑하지 않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르코지는 자서전에 바람둥이일 뿐 아니라 지독한 구두쇠로도 등장한다. 세실리아는 “이혼 후 아이들 양육비와 위자료로 받은 돈은 방 값도 못 낼 수준”이라며 “다시 협상한다 해도 내가 받는 돈은 1,000유로(약 140만원)나 2,000유로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세실리아가 사르코지와의 사이에 낳은 10살짜리 아들이 스위스 제네바의 고급 사립학교에 입학한 사실도 회자됐다.

제네바는 세실리아의 한 때 연인이었던 이벤트 기획가의 직장이 있는 곳이어서 세실리아가 그와 다시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세실리아는 이 기획가와 함께 2005년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난 적이 있고 뉴욕에서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사르코지를 둘러싸고 끝없이 계속되는 추문에 성에 그렇게 관대하다던 프랑스 국민조차 식상해 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다고 해서 ‘사르코지 연속극(soap opera)’이라는 말까지 등장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계기로 세계 언론은 공인의 어디까지를 취재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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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한국일보 국제부 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