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차기 지도자' 예우에… 박근혜 '공천논란 매듭' 화답당선 직후 상반된 행보로 무너진 신뢰 회복'국정운영 동반자' 큰틀에서 합의 이룬듯… 외교서도 이견 좁혀 북핵문제 등 순항 예고

“연작(燕雀, 작은새)이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랴.”

23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간에 공천과 국정 동반자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이 수습 국면에 들어간 뒤 양측 최측근 인사들 사이에서 나온 소리다. 즉 이-박 회동의 본질은 공천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 있다는 뜻이다.

이명박 당선인이 23일 오후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박근혜 중국특사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큰 틀에서 봐야 향후 정국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정계에 들어선 뒤 일관되게 국가와 국정의 관점에서 정국을 봐왔다”며 “그러한 틀에서 보면 공천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가 회동에서 ‘좋은 나라 만드는 데 최대한 도와드리겠다’고 한 대목을 주목하라”고 덧붙였다. 이 당선인과의 관계에서 종래 발언보다 한 단계 진전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 측 관계자 역시 “당선인이 박 전 대표에게 최대한 양보하고 예우를 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보’와 ‘예우’가 공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23일 회동에서 25분간 독대에서 나눈 얘기에 모든 것이 함축돼 있다”고 풀이했다.

이-박 양측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25분 독대’에 회동의 본질이 담겨 있고 박 전 대표에 대한 ‘예우’가 그 핵심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우’와 관련해서는 ‘총리설’, ‘빅딜설’(공천,각료 임명), ‘당권설’ 등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으나 복수의 양측 원로그룹의 설명에 따르면 박 전 대표를 ‘차기 지도자’로 예우하겠다는 뜻을 이 당선인이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 전 대표도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격적으로 수용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원로는 “박 전 대표는 원칙과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이 당선인이 그렇지 못한 태도를 보여 관계가 어긋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선인이 대통령 당선 전과 당선 이후 상반된 행보를 보여 박 전 대표에게 실망을 주었다고 전했다. 국내 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 지도자가 다뤄야 할 국제관계, 특히 북핵을 둘러싼 남ㆍ북ㆍ미 관계에서 대선 이전과 다른 목소리를 낸데 대해 박 전 대표 뿐만 아니라 미국, 북한도 적잖이 실망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올해 11월 임기 만료 전에 북핵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지난해 2ㆍ13 합의 이후 북한을 설득하고 남한이 대북 경제 지원에 나서면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는 3국간 북핵 로드맵을 본격 가동해 왔다.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둔 지난해 11월 29일 느닷없이 남한을 방문한 것이나 올 1~2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설이 불거진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라는 분석이다.

미국은 내부적으로 북한의 핵 신고 시한을 2월 25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9일 박 전 대표를 만나데 이어 이 당선인을 만난 것도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는 미국의 북핵 로드맵에 전적으로 동의한데 반해 이 당선인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다음날 힐이 베이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 것은 이 당선인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무렵 미국 조야와 외교가에서는 미국 특사로 임명된 정몽준 의원의 방미가 연기된 것도 북핵을 둘러싼 한미 간의 시각차 때문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4강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중인 정몽준 의원(오른쪽)이 2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14일 이명박 당선인과 대중 특사로 임명된 박 전 대표가 서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등 중국 특사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만났으나 두 사람 사이에 냉기류가 흐른 것은 이 당선인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불신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 당선인이 국내외 문제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언행을 보인 것에 박 전 대표가 못미더워 하는 것 같다”며 “국정에 동참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그러한 고민은 지난해 12월 29일 대선 후 두 사람이 처음 회동한 직후부터 계속됐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박 전 대표의 눈에 이 당선인이 대선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 국정동반자로 동참하는데 한발 물러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박 상층부에 한랭전선이 형성되면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공천을 둘러싼 양측 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표적 친(親)이명박계인 이방호 사무총장은 ‘40% 물갈이’를 거론해 박 전 대표측을 자극했는가 하면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공천이 잘못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했고 일부에선 “탈당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파국으로 치닫던 한나라당 공천갈등은 23일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가 만나 ‘국정 동반’에 합의하고 박 전 대표를 ‘차기 지도자’로 예우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극적으로 반전됐다.

주목되는 것은 이-박 회동과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는 이 당선인의 미국특사인 정몽준 의원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간에 이례적인 면담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정 의원과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만나는 자리에 부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등장한 것.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당선인 특사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했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이 당선인의 친서에는 북핵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 즉 미국의 북핵 로드맵을 따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이 당선인이 독자적인 남북관계 로드맵을 만들기보다 한미공조를 통한 북핵 해결, 남북관계 정립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당선인이 대선 전 남ㆍ북ㆍ미 3국 간에 합의한 사항을 수용한 것으로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서는 미덥지 못한 불신의 흔적을 지운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난항을 겪던 공천 문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은 이 당선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방증으로 풀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측은 ‘공정 공천’의 보장을 갈등 해소의 근거로 삼고 있지만 이-박 간에 더 큰 차원의 합의를 이뤄낸 게 직접적인 배경이다. 바로 23일 회동에서 ‘25분 독대’에 숨겨진 이-박 서로에 대한‘믿음’, 국정 동반자라는 합의점이다.

북핵 로드맵에 대해 미국과 이 당선인측 간에 합일점을 찾으면서 항로에서 벗어나 기우뚱거리고 있는 북미 간 북핵 문제도 제대로 궤도를 찾을 전망이다.

아울러 남북간 대화와 경협도 순항의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은 신년사에서 남북경협을 강조, 이명박 정부 출범에 침묵하고 있는 지금의 속내를 상당부분 드러냈다. 북핵 문제가 풀리면서 남북관계도 탄력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 한나라당 공심위 뜯어보니 공천갈등 딜레마 보이네

강재섭 대표와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과 위원들이 25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위원임명장을 받은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은 24일 공천심사위를 구성하고 이번 주부터 공천 신청을 받아 심사에 착수한다. 공심위원들의 성향과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공천 발표 시기와 방식, 물갈이 폭 등이 좌우됨에 따라 이들의 면면이 관심을 모은다.

공심위는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을 위원장으로 해서 당내 인사로는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과 이방호 사무총장, 이종구ㆍ임해규ㆍ김애실 의원 등 5명이 포진했고, 외부인사는 17대 공심위원을 지낸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 이은재 건국대 교수, 김영래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 양경민 금융노련위원장,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 등 5명으로 구성했다.

안강민 위원장은 친이(親李)ㆍ친박(親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인사로 꼽힌다. 당내 인사의 경우 강창희 위원장은 친박, 이방호 총장과 김애실ㆍ임해규 의원은 친이 성향이고, 이종구 의원은 중립에 가깝다.

외부 인사 가운데에선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와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가 각각 확실한 친이, 친박 인사. 친이 진영에선 이은재 교수와 김영래 공동대표, 양경민 위원장 등 3명을 모두 중립인사로 분류하지만 친박 진영은 모두 친이 성향이라고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친이 대 친박 대 중립’ 성향이 ‘4 대 2 대 5’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췄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친박 진영은 ‘친이 대 친박 대 중립’ 비율이 ‘7 대 2 대 2’이어서 절대 불리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친박 진영이 공심위 구성을 수용한 것은 박 전 대표의 결단을 따르고 이명박 당선인과 강재섭 당 대표가 ‘공정 공천’을 보장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공심위원 역시 ‘공천 기준’을 마련한 뒤 친이ㆍ친박 구분 없이 원칙대로 적용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직후보자 추천규정인 당규 3조2항과‘이심(李心)’으로 알려진 ‘3선 이상 영남의원 물갈이’설이 벌써 논란이 되고 있다.

당규 3조2항에 따르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를 확정 받은 사람은 공천을 받을 수 없다.규정을 엄밀히 적용하면 친박인 김무성(부산 남을) 의원과 서창원 전 대표, 친이인 박성범(서울 중구) 의원, 김석준(대구 달서병)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등이 해당 조항에 정면으로 걸린다.

이와 관련, 이종구 의원은 예외없이 원칙대로 당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김애실ㆍ임해규 의원 등은 적용시점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견해다. 다른 위원들도 견해가 갈린다.

‘이심(李心)’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3선급 이상 영남 의원은 ▲부산의 경우 김무성(남구을), 정의화(중.동구), 권철현(사상), 정형근(북.강서갑) ▲경남은 김기춘(거제), 김용갑(밀양 창녕) 박희태(남해 하동) 이강두(산청 함양 거창)▲대구는 강재섭(서), 박근혜(달성), 박종근(달서갑), 안택수(북구을), 이해봉(달서을) ▲경북의 이상득(포항 남구 울릉) 권오을(안동), 김광원(영양 영덕 봉화 울진), 이상배(상주), 임인배(김천) 의원 등 총 1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친이계는 정의화 권철현 정형근 안택수 박희태 이상득 권오을 김광원 이상배 임인배 의원 등 10명, 친박계는 김무성 김기춘 김용갑 박종근 이해봉 이강두 의원 등 6명이다.

이들 중 이명박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영남 물갈이’의 바로미터로 꼽히고 있어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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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