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처 전 뉴욕주 주지사는 고급 성매매 조직 '9번 고객'… 한 번 매춘에 4만 달러 사용뉴욕주 검찰 총장때 월스트리트 거물급 부정부패 혐의로 토진시켜"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 미국 국민 도덕적 이중성에 환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과 매춘과의 관계는 무엇일까. 더더욱 그가 청렴과 원칙, 도덕성을 무기로 성공가도를 달린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현직 주지사가 돈을 주고 고급 콜걸에게서 섹스 서비스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미국 전역이 벌집 쑤신 듯 시끄럽다. 주인공은 엘리엇 스피처(48) 뉴욕주 주지사. 그는 지난달 13일 워싱턴의 메이플라워 호텔의 VIP 룸에서 고급 매춘여성과 성 관계를 가진 사실이 미 연방수사국(FBI)와 국세청(IRS)의 합동수사 결과 드러났다.

미국에서 유력 정치인, 기업인 등 상류층의 추악한 섹스행각이 드러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당사자가 다름 아닌 ‘미스터 클린’ 이라 불릴 정도로 엄격한 원칙을 강조했던 스피처 주지사였다는 점 때문이다.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뉴욕주 검찰총장이던 1999~2006년 분식회계 혐의로 세계적 보험회사인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의 옷을 벗겼다.

이를 계기로 그에게는 ‘저승사자’라는 무시무시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 스피처 검찰총장에게 걸려 한 순간에 ‘거물’에서 ‘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그린버그 회장 뿐만이 아니다. 대형 뮤추얼펀드인 스트롱파이낸셜 그룹의 리처드 스트롱 회장이 부정거래 혐의로 회장직에서 쫓겨났고,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도 그의 수사망에 걸려 불명예 퇴진했다.

수뇌진은 손 대지 않은 채 말단 피라미들만 잡아들인다는 비판을 받던 다른 사정기관들과 달리 그는 월스트리트를 좌지우지하는 거물들에게 철퇴를 가해 월가의 경영진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국민에게는 개혁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또 뉴욕의 고급 매춘조직단을 체포, 기소하는 등 매춘조직 단속에도 혁혁한 공을 세워 검찰총장으로서 ‘올해의 개혁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화려한 경력을 밑천으로 그는 2006년 압도적인 득표율로 주지사에 선출됐다. 이번 성 매매 사건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그가 고위 인사들을 심판하고 처벌한 명분으로 삼았던 추악한 도덕적 타락을 개인적으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다는 이중성, 그리고 그에 따른 배신감 때문이다.

남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했던 그를 보면서 미국 국민은 한 영웅의 추락을 넘어 고위 공직자들의 역겨운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스피처의 섹스 행각이 들통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스피처 전 주지사의 섹스파트너였던 고급 매춘부 애슐리 알렉산드라.

국세청은 지난해 은행에서 보고하는 자금거래에 대한 일상적인 조사를 하던 중 스피처 주지사의 이상한 자금거래를 발견했다. 자금출처는 물론, 수천달러에 달하는 송금액의 대상이 불분명했다. 돈이 건네진 계좌도 유령회사의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이런 형태의 의심스런 거래를 뇌물이나 정치부패, 또는 선거자금과 관련된 부정행위 정도로 여겼다.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진 것은 국세청의 요청으로 FBI가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부인과의 사이에 세 딸을 둔 그는 성매매를 위해 ‘엠퍼러스 클럽 VIP’라는 고급 매춘조직과 전화통화를 한 것이 FBI와 국세청의 도청에 포착됐다.

그는 실명 대신 ‘9번 고객(Client 9)’이라는 번호명으로 ‘매춘 여성의 교통비를 화대에 포함시킬지’ ‘화대 지불이 이뤄졌는지’ ‘매춘 여성을 어떻게 호텔방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등을 논의했다.

이렇게 ‘사전절차’를 끝낸 스피처 주지사는 당일 워싱턴의 최고급 호텔인 메이플라워 호텔 귀빈 전용층에 있는 871호에 투숙했다. 방은 ‘조지 폭스’라는 가명으로 예약됐다.

‘크리스틴’으로 불리는 165cm에 48kg의 미모의 20대 여성이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 ‘9번 고객’이 이 여성과 예약한 시간은 총 4시간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일’을 끝내고 매춘조직에 문자메시지를 보낸 시간은 3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날 0시 2분이었다. 크리스틴은 “모든 게 잘 끝났다”고 하면서 “그 사람은 때때로 여자가 생각하기에 안전하지 않은 것들을 요구한다”고 말한 것으로 감청 문서에 기록돼 있다.

FBI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가 지불한 금액은 크리스틴이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오는 기차비와 호텔비, 룸서비스 비용, 화대를 포함, 무려 4만달러에 달했다. ‘엠퍼러스 클럽 VIP’는 부유층 고객을 상대로 시간당 1,000달러에서 5,500달러를 받고 50여명의 콜걸을 뉴욕 워싱턴 런던 파리 등으로 보내는 대표적인 고급 매춘조직이다.

그가 성매매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클럽 계좌에 ‘9번 고객’의 이름으로 400~500달러의 잔고가 남아 있었고, 이 돈을 다음번 예약을 위해 쓰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날인 12일에는 클럽측에서 “선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자 “전과 같이 보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과 같은 고급 성매매 실태는 지난해 5월 워싱턴 DC 정가를 뒤흔든 이른바 ‘DC 마담’ 사건 때도 일부 드러났다.

뒤프레.

고급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던 데버러 팰리프는 당시 1만~1만 5,000명의 고객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오히려 당국을 협박하기도 했는데, 실제 루이지애나 상원의원인 데이비드 비터, 랜들 토비아스 국제개발처(USAID) 처장, 핼런 울먼 전 해군사령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 컨설턴트인 딕 모리스 등 쟁쟁한 이름이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매춘여성들 중에는 대학교수, 법조인, 과학자 등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도 무려 130여명에 달해 충격을 더했다. 실제로 하워드 대학의 전 교수였던 브랜디 브리튼은 이 조직에서 성매매를 하다 폭로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피처 주지사의 추잡한 마각이 드러나자 금융계, 특히 그에게 호되게 시달렸던 월가의 인사들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월가의 윤리와 페어플레이를 내세웠던 한 인간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자신은 법 위에 군림한다고 믿은 이중인격자” 라는 비판에서 “월가의 모든 사람들이 기뻐할 것으로 확신하다”는 조롱까지 다양했다.

일부에서는 월가의 개혁을 주도한 인물이 허망하게 몰락한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 전체의 손실이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스피처 주지사는 12일 사임을 발표했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났다. 월가를 금융부패를 척결하던 ‘백기사’에서 ‘9번 고객’으로 추락한 이번 사건이 미국 고위 지도자들의 이중적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교훈으로 작용할지 두고 볼 일이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