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무력 독립시위… 달라이 라마 통제력 상실올림픽 앞둔 중국은 무자비한 탄압 못할 듯

중국 소수민족 문제의 뇌관인 티베트(시짱 西藏)에서 20년 만에 대규모 독립 시위가 발생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989년 후진타오(胡錦濤) 현 국가주석이 당시 티베트 자치구 서기로 재직할 당시 발생했던 유혈사태 이후 처음인 이번 무력 시위는 특히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불과 5개월 앞둔 시점에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올림픽 시점에 맞춰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운동이 연쇄적으로 촉발될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제기된 상태여서 이번 티베트 시위가 자칫 신장위구르 자치구 등 독립운동 기운이 강한 여타 지역으로 소요를 확산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0일 인도 거주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항의하고 올림픽에 반대하기 위해 베이징까지 6개월 간의 대장정에 돌입하면서 촉발된 시위는 티베트 자치구의 승려와 주민들까지 가세하면서 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무력시위로 발전했다.

중국 정부는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까지 10여명 안팎이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는 중국 무장경찰의 무차별 발포 등으로 100여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망자가 수백명에 이를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중국 당국이 티베트를 완전 장악, 외부와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해 정확한 진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재 티베트 자치구의 주도인 라싸(拉薩)는 주변과 완전히 격리된 고립무원의 처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 당국이 시위대에게 투항 최후통첩 시한으로 정한 17일 자정이 지나면서 중무장한 진압병력이 추가 투입되는가 하면, 가가호호 주택을 수색하면서 시위대 주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검거 선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당국에 “자수한 시위자가 100명을 넘었고, 체포된 사람만도 수백명에 이른다”고 라싸 거주 교민을 인용해 보도했다. 통첩시한 이전에 체포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이 구금돼 있다는 소식도 나온다.

라싸 시내는 장갑차와 군용차들이 주요 도로를 차단한 채 주둔해 있고,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돼 행인들의 신분증과 여행허가증을 검사하는 등 비상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고 있다.

시위 발생 1주일째를 맞는 지금 중국 당국의 강력한 무력진압으로 소요사태는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해 있는 상태다. 그러나 시위대가 대피한 조캉사 세라사 드레펑사 등 주요 불교 사원 주변으로 진압 병력이 이중삼중 포위하고 있어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아직 불교 사원으로의 병력 투입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만약 승려와 시위대들이 결사 항전할 태세를 보이고 있는 사원으로까지 무력진압이 시도된다면 비극적인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이번 시위의 향방을 더욱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인도 망명정부 수반인 달라이 라마가 과거와 달리 시위대에 대한 통제력을 상당부분 잃고 있다는 점이다.

비폭력노선을 주창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티베트 문제에서도 ‘완전한 독립’ 대신 ‘고도의 자치권 보장’으로 중국 정부에 대한 요구수준을 낮췄다.

독립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고 티베트의 고유한 문화를 살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계속되는 중국 정부의 티베트 문화 말살정책, 한(漢)족의 인위적 이주로 생긴 빈부격차 등 티베트에 대한 억압적 상황이 계속되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의 비폭력노선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티베트의 독립운동단체인 ‘티베트 청년회의’는 “중국은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올림픽 보이콧 요청을 거부한 달라이 라마를 공개 비판하기까지 했다.

이 단체는 또 “달라이 라마의 ‘중도노선’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좌절감이 높다”며 노선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18일 망명정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과 공존해서 살아야 한다”며 “중국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인종적 편견에 근거해 중국인들을 반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해 오히려 티베트 시위대가 한족을 공격한 것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의 이 발언은 시위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폭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어서 시위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거리다. 달라이 라마는 또 “티베트의 폭력상황이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진다면 망명정부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각오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실제 망명정부 수반직에서 물러나는 사태가 발생하거나, 시위대가 그의 비폭력노선을 거부할 경우 티베트의 사태는 또다시 혼민한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 당국이 과거 1959년, 89년 당시와 같은 무자비한 방식의 진압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의 스포츠 제전이자 평화의 축제인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5개월 앞둔 상황에서 폭압적인 시위 진압은 올림픽을 위해 중국 정부가 쌓아올린 모든 노력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에서 20년만에 가장 심각한 소요가 발생했는데도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고 치안확보에만 주력하는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런 점 등으로 인해 진압병력이 시위대에 발포했다는 인도 망명정부의 주장은 아직까지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보이콧 주장이 리처드 기어 같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일부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나 각국 정부들은 “올림픽과 정치는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또 하나 주목받는 것은 후진타오 주석과 티베트와의 인연이다.

89년 티베트 대규모 소요사태 당시 티베트 자치구 서기로 유혈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후 주석은 그 사건으로 덩샤오핑(鄧小平) 등 당시 지도부에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고,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마침내 1인자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에게 티베트는 정치적 영광을 가져다 준 행운의 땅인 셈이다. 시위가 한창이던 15일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되면서 집권 2기를 시작한 후 주석에게 이번 티베트 시위가 또 어떤 정치적 변수로 작용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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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