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 버리고 입헌군주제 세운가난하지만 가장 행복한 국가의 국왕, 정치·경제적 난관 극복위해 모험 단행한 듯

부탄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소 안에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국왕의 사진을 걸고 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한 작은 나라 부탄이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한 주였다. 웬만한 사람은 지구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모를 부탄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가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이유는 절대왕정 국가인 이 나라가 100년 왕조 역사상 처음으로 24일 총선거를 실시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선거를 통한 입헌군주제로 헌정체제가 바뀐 나라가 부탄 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들 나라 모두가 부탄 같은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먼저 부탄이 어떤 나라인지 간단히 보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300달러로 경제수치로만 보면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인구 75만명에 교통신호등조차 없고, 인터넷과 TV는 1999년에야 보급됐다. 포장도로, 전기, 의료시설도 최근에야 생긴, 문명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거의 원시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ㆍ인구학적으로는 인구의 60%가 티베트계. 1959년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 폭동이 발생하고, 중국 정부가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자 중국과 국교를 단절했다. 이후 84년 국경교섭을 재개한 뒤 98년 국경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비동맹 중립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49년 국경을 접한 인도와 우호조약을 체결, 국고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외교권을 인도에 위임했다. 이쯤되면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전형적인 후진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후진국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 ‘가난하지만 가장 행복한 국가’라는 것이다. 지난해 영국 레스터 대학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세계 행복지수’를 조사했다. 10위 내 상위권을 북유럽을 비롯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잘 사는 선진국들이 휩쓸었다. 하지만 딱 한나라, 예외가 있었다. 부탄이 당당히 8위에 오른 것이다.

영국의 신경제학재단이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한 ‘국민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가 108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부탄 국민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물질문명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는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부족중심의 공동체문화, 전통가치의 존중, 여기에 히말라야 산맥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물질은 가난해도 정신은 풍요로운 삶이 행복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잠재적인 관광자원이 엄청났지만, 관광지 개발에 매달리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부탄 국민의 이 같은 생활방식은 71년 즉위해 2006년 사망한 4대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국왕의 통치철학과도 관계가 깊다. 왕추크 국왕은 즉위 이듬해인 72년 ‘국민총행복량’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이를 국정 운영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국민총행복(GNHㆍ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새로운 지표가 생겼다.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생산’이란 개념 대신 ‘행복’을 국부(國富)의 원천으로 보았던 것이다.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고 성취한, 그래서 ‘반세계화’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까지 일컬어졌던 부탄이 그럼 왜 갑자기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의 틀인 선거를 도입한 것일까.

은둔의 나라 부탄의 유권자들이 24일 팀푸의 한 투표소 앞에 줄지어 서있다.

왕실에 대한 국민의 존경과 사람이 여전히 절대적이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왕실이 권력을 내놓아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데 스스로 ‘위로부터의 입헌군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왕추크 국왕은 사망하기 1년 전인 2005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국왕의 이런 결단에 당시 서방 언론은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산속으로 숨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산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대왕정을 포기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선거가 가져올 수 있는, 후보 상호간의 비방과 모함, 선거부정, 권력을 노린 탐욕과 부패 등으로 오히려 행복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역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부탄 국민은 선거 유세 기간 선거 민주화를 채택했다 부패한 정부만 낳은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 이웃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불안해 했다. 유권자들은 “민주화를 원하지 않지만 투표를 하는 이유는 존경하는 왕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심지어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조차 “선거를 치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질만큼 비통한 일”이라며 국왕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을 표현했다.

왕추크 국왕의 속내가 무엇이었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린 데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한 불교 절대왕정국가들이 종국에는 이웃나라에 정복되거나 민중에 의해 왕실이 전복되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을 염두에 둔 듯하다.

1949년 인도와 파키스탄에 나뉘어 흡수된 카슈미르의 ‘라다크’ 왕조가 그렇고, 50년 중국에 강제 병합된 티베트가 그랬다. 75년에는 불교와 힌두교의 나라였던 시킴이 인도로 편입됐다.

2006년 4월 네팔에서 왕정폐지를 요구하며 일어난 전국적인 반 봉건 민중시위는 절대권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압력으로 다가왔다. 왕권의 전부를 잃지 않기 위해 권력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추론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행복지수’가 높다고는 하나 빈곤, 실업 등의 문제는 여전했다. 국민의 5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허덕이고 있고, 도시에서는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특히 15~24세 청년층의 실업률이 높아지는게 큰 문제였다. 타개책으로 제시된 것이 관광산업 육성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생계를 의지하는 농업 임업 외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궁한 자원을 지닌 관광이 최적격이었다. 여기에는 인프라가 필요했다.

공항과 호텔을 세우고 도로를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절대왕정에서 이 모든 것들은 한계를 보였다. 민간경제에 자생력을 불러일으키고,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분산하고 의회가 책임정치를 할 수 있는 선거가 절실했다. 부탄은 올해 내를 목표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추진중이다. 다 같은 맥락이다.

애써 가꿔온 행복이 깨질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추진하는 민주화와 개방화가 입헌군주국 부탄에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지, 아니면 불행의 씨앗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