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세계질서 재편, 중국도 참여하는 다극체제로 전환 모색올 7회 행사 11개국 정상 등 39개국 2,000여명 참여'은밀히 힘 기르기' 외교서 '적극 개입' 정책 변화 시사대만 정부와 건국 이후첫공식 접촉… 대립 청산 신호탄

‘아시아의 다보스’라는 보아오 포럼이 11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중국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하이난(海南)섬 보아오(博鰲)에서 화려하게 열렸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보아오 포럼은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세계 지도자들의 ‘정상외교 무대’이자 재계 인사들의 ‘세계화 경연장’.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올해 보아오 포럼은 규모와 참석자들의 중량감에서 과거 6번의 대회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10~12일 포럼에 참석하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남바린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자카야 음리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 등과 연쇄 정상회담을 가졌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앞서 베이징(北京)에서 케빈 러드 호주 총리,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스웨덴 총리, 카림 마시모프 카자흐스탄 총리 등을 맞았다. 11개국의 정상들을 포함해 전세계 39개국에서 지도자급 인사 2,000여명이 보아오를 찾아 지난해 1,400여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지난 1월말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27개국 정상을 비롯해 88개국에서 2,500여명이 참석한 것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다. 다보스 포럼이 1971년 출범 이후 40년 가까운 경력을 갖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02년 시작된 보아오 포럼이 다보스 포럼을 제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화제도 만발했다. 세계 최대 커피판매 체인인 스타벅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커피 프리’를 선언하고 무제한 무료 커피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대회의장 및 각국 인사들이 묵는 숙소와 프레스센터 등 대회장 곳곳은 갓 볶은 에스프레소 커피향이 진동했다. 자원봉사자는 물론 스타벅스 본사에 근무하는 미모의 여직원들까지 총동원돼 마케팅으로는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는 평가까지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정ㆍ관ㆍ재계 인사들과 수많은 취재진을 상대로 한 기업들의 후원 경쟁도 뜨거웠다. 한국의 SK그룹은 행사비용으로 수억원을 쾌척했고, 메릴린치는 영문과 중문으로 된 두툼한 고급판형의 금융용어 사전을 참석자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해외에서는 물론 중국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했던 보잘 것 없는 작은 섬의 어촌마을 보아오를 다보스에 맞먹는 세계적인‘브랜드 네임’으로 키우려는 중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단서는 “세계의 다극화 추세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는 후 주석의 개막식 연설에서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중국이 하나의 극을 차지하는 다극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산파역을 보아오 포럼이 맡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올해 초 ‘2008년 중국 현대화 보고’를 통해 보아오 포럼과 역내 협력채널인 아시아협력대화(ACD)를 토대로 ‘아시아판 유엔’인 아시아국가연합의 창설을 주장한 바 있다.

오랜 외교전략이었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르다)’에서 벗어나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개입해 일을 관철시키다)’와 ‘화평굴기(和平山屈起·평화롭게 우뚝 선다)’의 외교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보아오 포럼을 출발점으로 8월의 베이징 올림픽, 10월 말 아셈(ASEMㆍ아시아유럽정상회의)을 잇따라 개최하면서 개혁ㆍ개방 30주년인 올해를 ‘중화민족 부흥의 해’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물론 지난달 발생한 티베트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이 빚어낸 손상된 이미지를 만회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올해 보아오 포럼의 주제는 ‘녹색아시아:변혁을 통해 윈윈(win-win)으로 가기’.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이 토론 주제로 채택됐다. 세계 4대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이 아시아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의 중국임을 과시하려는 목적이다.

룽융투(龍永圖) 보아오포럼 사무총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포럼의 금융 콘퍼런스를 6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혀 보아오 포럼을 유럽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마치 수십년간 고수해온 유럽을 떠나 최근 아시아와 남미로 개최지를 넓히고 있는 다보스를 그대로 흉내내는 듯 하다.

이번 보아오 포럼은 중국과 대만 정부의 최고위층이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공식 접촉했다는 점에서 양안관계에도 큰 획을 그었다.

후 중국 주석과 샤오완창(蕭萬長) 대만 부총통 당선자가 보아오 포럼 기간 중 회담을 가졌는데, 샤오 부통총이 ‘대만 양안공동시장 재단 이사장’이란 자격으로 포럼에 참석한 것이긴 하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 이후 9년간 계속됐던 양안간 대립관계를 청산하는 신호탄이란 점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이제 갓 출범한 대만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국민당 정부의 대 중국 정책이 어떤 모습일지 시사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후 주석은 “세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양안 인민들이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번영의 시나리오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샤오 부총통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양안 간 직항로의 조속한 개통 ▦중국 관광객의 대만 관광 개방 ▦협상기구 복원 ▦경제무역 정상화 등 4개항을 제안했다.

중국은 12일 저녁 후 주석이 주재한 보아오 포럼 참석자 만찬에서 샤오 부총통 부부를 후 주석과 같은 테이블에 앉도록 배려하고, 또 후 주석을 경호하는 중앙경위국 요원들에게 샤오 부총통에 대한 경호를 맡겨 외국 정상들에 준하는 의전을 베푸는 파격을 연출하기도 했다.

■ 보아오 포럼

후진타오 주석.

보아오 포럼의 영문 공식명칭은’아시아를 위한 보아오 포럼(Boao Forum for Asia’. 아시아 역내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경제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2001년 중국과 한국, 일본, 호주 등 26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해 창설한 비정부ㆍ비영리 포럼이다.

1998년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밥 호크 호주 총리,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일본 총리 등이 아이디어를 냈으나 2001년 말 보아오가 영구 개최지로 결정된 후 이듬해 4월 첫 총회가 열리면서 보아오 포럼은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는 외교무대로 변질됐다.

창설 초기 인구 1만 5,000명의 한적한 어촌이던 보아오는 매년 100여차례 국내ㆍ국제 회의가 열리는 세계 컨벤센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황유석 국제부차장 aquari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