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ㆍ김관진 실장 등 방미…北 리수용 외무상 뉴욕행북한 해외비자금 관리자 잠적, 미국과 접촉…北 비상, 탈출구 모색

북-미 극비리에 평양 회동…북핵ㆍ남북문제ㆍ美 인질 등 논의 알려져
北 9월 말 대대적 인사 전망…대남 담당 인물 교체,정책 변화 예상
남북관계 변화 가시화 조치 나올 듯…‘남북경협’최고의 해법 평가


우리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8일(현지시각) 미국에 도착한데 이어 14일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2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24일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한다.

북한 외교가도 분주하다.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6일 유럽 순방에 나섰고, 리수용 외무상은 9월 중순 뉴욕을 찾는다.

남북 간에 ‘한반도 외교전’이 미국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인질 석방을 위해 고위급 특사 파견이나 북한과 물밑 접촉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북미 대화가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은 9월 말쯤 대대적 인사 교체를 단행, 대남 외교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반도 내외에서 불고 있는 남-북-미 이상기류의 실체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추적했다.

美 전용기 극비 평양 도착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8월 14일) 전인 지난 8월10여일 쯤 미국 전용기가 극비리에 평양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비행기가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미 전용기가 북한 땅에 안착한 것은 유례 없던 일로 북미 간에 무언가 ‘특별한’ 사안이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내용을 전해준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미 전용기의 극비 평양 도착이 북한 조선대성은행 수석대표인 윤태형의 망명과 관련 있다고 알려왔다.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 관계자들도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과 유사한 얘기를 전해왔다.

이들이 전한 얘기를 종합하면 윤태형의 망명은 북한은 물론, 북한을 상대하는 주변국에 엄청난 파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윤태형은 지난 6월 러시아에서 행방을 감췄다. 국내 일부 언론은 8월말에야 윤태형의 망명 사실을 보도했다. 중앙일보 8월 29일자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북한 금융기관 고위급 인사가 거액의 자금을 챙겨 탈북해 망명길에 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북 핵심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한 조선대성은행의 수석대표인 윤태형이 지난주 러시아 나홋카에서 500만 달러(50억7000만원 상당)의 ‘혁명자금’(김정은 통치자금)을 가지고 잠적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재 제3국 망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윤태형은 대외적으로 은행장 역할을 해온 인물로, 러시아 극동지역 등에서 김 위원장의 비자금 조성과 관리를 책임져 왔다”고 전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윤태형을 체포하기 위해 러시아 공안당국에 협조를 요청한 상태라고 소식통은 말했다. 신문은 한국 정부도 윤태형이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신문의 보도와 신문이 인용한 대북 소식통의 말에는 몇몇 부분 사실과 차이가 있다. 우선 윤태형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윤태형은 북한의 비자금 등을 맡겨 둔 러시아 6개 지점 은행의 한 지점 책임자로 북한의 해외 비자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비자금 관리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소식통 등의 전언이다.

둘째, 윤태형이 ‘지난주’ 잠적했다고 했으나 베이징 소식통 등은 그가 6월 말쯤 러시아 지점에서 사라졌고, 북한은 윤태형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셋째, 신문은 ‘윤태형이 현재 제3국 망명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도 윤태형이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베이징 소식통 등에 따르면 윤태형은 러시아에서 잠적해 숨어지내다 미국 측과 선이 닿았고, 한국으로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한다.

소식통 등은 미국 전용기가 극비리에 평양으로 들어간 것은 윤태형이 미국에 넘긴 ‘정보’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의 실체에 대해선 북한의 해외 비자금과 관련됐을 것이라고 말할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평양 북미 대화의 비밀

지난 8월 10여일쯤 미 전용기가 극비리에 평양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뒤 한반도 주변국에서는 예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8월 14일,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에 고위 인사가 화환을 전하겠다는 뜻을 남측에 전해왔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이 김 전 대통령 서거 5주기에 화환을 전하겠다고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화환 전달자가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 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라는 사실은 북한이 화환 전달보다 남한과의 ‘대화’에 무게를 두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북한은 9월6일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유럽 순방에 나섰고, 리수용 외무상은 9월 중순 뉴욕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강 비서가 유럽 순방에 나선 것은 예정에 없던 일이라는 게 베이징 소식통의 전언이다. 더구나 리수용 외무상의 뉴욕행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15년 만의 일이다. 이 또한 예정돼 있지 않았던 일이라고 한다.

베이징 소식통과 미국과 러시아 정보 관계자들은 강석주의 유럽행과 리수용의 미국행이 지난달 10여일 쯤 미국 측의 극비 방북과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형이 북한의 해외비자금 내역을 알고 있고, 그가 미국과 접촉하는 과정에 그러한 사실을 털어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 소식통과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은 윤태형이 내놓은 ‘정보’를 갖고 북한을 압박했고, 북한은 전 세계(주로 유럽) 해외 비자금이 노출되는 것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에 따른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강석주 비서가 급히 유럽으로 달려갔고, 리수용 외무상은 9월 중순 유엔 총회 참석을 이유로 방미해 북미 간 현안을 놓고 미국 측과 협상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제 금융관계자에 따르면 강석주 비서는 독일을 시작으로 벨기에와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을 순방하고 있지만 앞서의 ‘구멍’을 메우는 데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해외 비자금이 안치된 해당국 금융권이 북한의 환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강 비서는 ‘빈손’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장성택 숙청 이후 해외 지원이 끊기다시피한 북한으로선 해외 비자금마저 묶인다면 김정은체제 유지에 심대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 9월 중순 리수용 외무상의 방미는 이러한 북한 정권의 궁핍한 사정을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워싱턴 정가와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리수용 외무상의 방미와 북미 회담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내용은 ‘북한 핵’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들은 지난 8일 우리 측 북핵 6자회담 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방미와 14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도 ‘북핵’ 관련 논의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에 억류 중인 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물밑 대화를 하는 이면에는 북핵을 포함해 남ㆍ북ㆍ미 간에 얽힌 문제를 포괄적으로 풀어가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한반도에 새로운 훈풍 부나

미국은 지난달 10여일 쯤 평양 극비 방문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북한의 전향적인 변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워싱턴의 정보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상대가 한국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주지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서의 북미 회담 후 북한이 8월 14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에 화환 전달을 명목으로 남측과 대화를 시도한 배경에 미국의 역할도 일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의 ‘역할’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사실 지난 8월 17일 남측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일행과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등과의 개성 회담은 남북관계 변화에 커다란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주간한국 제2541호, 8월 25일자 참조)

박지원-김양건 개성 회담과 관련해 남북 양측은 화환 전달 외에 남북관계에 관한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베이징 소식통을 비롯해 또 다른 중국내 대북 소식통은 전혀 다른 얘기를 전해왔다.

이들에 따르면 박지원-김양건 담화에서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 ‘큰 대화’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들은 ‘박지원-김양건’ 담화의 핵심을 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밀리에 한 약속’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밀약’의 요체는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할 만큼 대 규모 북한지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북 정보통도 비슷한 얘기를 전해왔다. “북한이 2000년 당시 이례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김대중정부의 엄청난 대북지원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판 마셜플랜’은 김대중정부 동안 이행되지 못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이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실제 배경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약속한 ‘북한판 마셜플랜’이 이행 가능한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 ‘밀약’을 이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밀약’에 대한 집착은 끈질겼다. 소식통에 따르면 2009년 9월, 김 전 대통령 사망 때 북한의 조문단으로 온 김양건 통전부장은 1차 정상회담의 주역인 박지원 의원 등을 만나 ‘밀약’을 확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약속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해듣고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북한은 17대 대선을 한달 가량 앞둔 2007년 11월 김양건 통전부장이 남한을 방문해 비밀리에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이명박 후보를 만나 ‘밀약’ 을 거론했지만 소득없이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밀약’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다시피했던 북한은 박근혜정부에 상당한 기대를 나타냈다. 남북이산가족상봉을 먼저 거론한 것이나 개성공단 활성화 논의, 남북고위급회담에 나서고 최근 인천아시안게임 참가 등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북한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통일 대박’을 거론한 뒤 지난 3월 ‘드레스덴 선언’, 7월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 등 남북통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지원-김양건 담화에서 박 통령의 메시지가 박지원 의원을 통해 북측에 전달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한 북한의 김양건 통일비서가 직접 나온 것은 지난 7월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을 주문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박지원-김양건 담화에서 북측은 박근혜정부가 앞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밀약’을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베이징 소식통은 “박지원-김양건 회동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북측이 상당히 고무돼 있다”며 “다만‘밀약’ 이행과 관련한 (박근혜정부가 요구했다는)‘전제’에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전해왔다.

남북관계 변화 ‘민족경협’에 달려

북한의 강석주 비서는 독일 방문 중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질문에 “남북합의 이행하면 다 풀린다”며 “우리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김대중 대통령, 이후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합의서가 있지 않느냐. 그것을 이행하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전술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밀약’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아직‘밀약’이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바 없다.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원칙’을 전제로 ‘큰 변화’를 도모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측근 인사는 “남북통일 기반 조성은 부친(박정희 대통령)의 유업이기도 해 대통령은 강한 의지로 남북문제에 임하고 있다”며 “이전 정부와는 다른 획기적인 남북관계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9월 20∼26일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하고 24일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는 것을 주목한다. 다수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방미가 황준국ㆍ김관진의 방미와 연장선에 있고, 북한 강석주의 유럽 순방과 리수용의 방미와도 연관돼 있다고 해석한다. 청와대와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의 방점이 ‘한반도 문제’에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베이징 소식통과 북한과 왕래가 잦은 무역상들은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변화ㆍ발전하려면 실천할 수 있는 ‘각론’이 중요하다”며 “그것은 ‘민족경협’이 핵심”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북한에 당장 필요하고, 북한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경협(경제협력)’이며, 남한을 파트너로 삼아 남북이 상생ㆍ발전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9월 25일쯤 대대적 인사 교체를 통해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개성공단을 총괄했던 라운석 참사나 김대중정부 시절 북측 장관급회담 대표로 나섰던 권호웅 참사 등과 ‘경제통’이 중용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대남 정책 변화에 우리 측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