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 '밀약' 이행?…박-이 청와대 접견 박지원 역할론DJ정부 사람들 방북 회의론 대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접견하고 있다. 주간한국
北실세 3인방 파격 방문·박지원-김양건 회동 등 남북관계 변화 조짐
남북정상회담때 비밀리 약속한 '대북지원 문제' 매듭지을 가능성도

박근혜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청와대 접견을 두고 여러 해석과 뒷말이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난 과정과 접견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이 여러 면에서 '이례적'인 까닭에서다.

특히 이희호 여사가 요청한 '북한 방문'은 그 배경과 향후 실현 가능성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이 여사가 방북을 요청한 것이 단순히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특히 이번 청와대 접견의 배후에 박지원 의원의 역할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오히려'다른 목적'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도 보인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와 북한 소식통 사이에선 이 여사의 방북 요청이 최근 북한 실세 3인방의 파격적인 인천 방문과 그 이전 박지원 의원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판문점 회동, 그리고 박 대통령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 총회 참석과 반기문 사무총장 면담 등과도 관련됐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여사가 북한 방문을 요청한 것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비밀리에 약속한 대북 지원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와 남북관계에 변화 조짐이 일고, 북한 내부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전언이다.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 접견에서 요청한 '북한 방문'의 이면을 다각도로 추적했다.

이희호 여사 뜻밖의 '북한 방문' 요청

"북한을 한 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줬으면 좋겠다" (이희호 여사)

"언제 한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 (박근혜 대통령)

10월 28일 이희호 여사는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접견에서 '북한 방문'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과 대화 중 이 여사는 "북한 아이들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어, 겨울 같은 추운 시기 모자와 목도리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짰다"며 "북한에 가서 직접 그들을 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청와대 접견 자리에 함께 배석한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에 따르면 '북한 방문' 얘기는 통일에 대한 담소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한다. 이 여사는 박 대통령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특히 북한의 영유아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모자 보건사업을 하는 드레스덴 선언을 한 것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이어 자신도 사랑의 친구들을 통해 오래전부터 영유아들 영양식도 보내고, 산부인과로 의료기기도 보내고, 아이들 털 모자를 보내고 했는데 그래서 한 번 북에 가서 직접 그들을 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기회를 봐서 한번 다녀오십시오'라고 화답했다.

김 원장은 이 여사 같은 분이 방북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고 실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럴 경우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상징적 자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원장에 따르면 이 여사의 방북 요청은 북한 어린이를 도와주기 위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여사가 '평화통일'이라는 휘호를 선물한 것이나 박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비밀스런 얘기나 특별한 서류를 건넸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아울러 이 여사의 방북 요청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보다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청와대 접견 '박지원 역할론' 나와

사실 박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청와대 접견은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이번 접견은 청와대 측이 이 여사 측에 만남을 제안하고, 이 여사가 이를 수락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접견이 이뤄진 과정을 살펴보면 이 여사 측에서 먼저 접견을 원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청와대 측이 이 여사 초청 계획을 밝힌 것은 지난 8월 19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5주기 때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고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청와대로 한번 초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아 박 대통령과 이 여사의 만남은 기약없이 미뤄졌다.

그러던 중 이 여사가 지난 26일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 서거 35주기를 맞아 추모화환을 보내면서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이 여사 측에 고마움을 전하며 청와대 초청을 얘기했고, 28일 접견이 이뤄졌다. 이 여사가 보낸 박 전 대통령 추모화환이 오작교 역할을 한 셈이다. 다시말해 청와대 접견을 이 여사 측에서 먼저 요청한 모양새다.

주목되는 것은 이 여사의 추모화환이 청와대 접견의 단초가 됐다는 점이다. 그간 이 여사 측에선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에 조화를 보낸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 여사가 조화를 보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청와대 주변과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여사가 박 대통령을 만나는 계기 마련을 위해 조화를 보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을 만난 것은 방북 요청을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실제 이 여사는 박 대통령과의 접견에서 '북한 방문'을 요청했고, 환담에서는 통일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이 여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 아이들을 직접 도와주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한 목적이라면 이 여사 측에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루트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굳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일에 처음 조화를 보내 박 대통령의 관심을 끌 필요도 없다.

때문에 이 여사의 '북한 방문' 요청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더욱이 이 여사의 청와대 접견과 방북 요청의 일련의 과정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던 박지원 의원이 배후에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북한 방문의 '진짜 이유'에 관심이 증폭됐다.

'박지원 역할론'은 이 여사가 예전에 없던 추모화환을 보내고, 박 대통령에게 방북 요청을 한 일련의 과정이 박 의원의 구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박 의원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이 여사나 박 의원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깊이 관여돼 있고, 특히 지난 8월 17일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조화를 보낸 다는 명목으로 박 의원 등과 개성 회담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북측 대표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으로 박 의원과 함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다. 이후에도 김양건 통전부장은 남한 방문 때마다 박 의원을 만나 2000년 정상회담 과정에서 남북이 비밀리에 약속한 대북지원 이행 여부를 확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이 여사가 청와대 접견에서 방북 요청을 한 '진짜 이유'도 2000년 정상회담과 관련됐을 것이라는 게 정통한 대북소식통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밀약' 논란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 접견에서 '북한 방문'을 요청한 시점은 절묘하다. 앞으로는 10월 30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예정된 때이고, 시계추를 돌리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수면 위아래서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남북관계는 남북뿐 아니라 유엔까지 관여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킨 것만 해도 10월 4일 북한 실세 3인방의 파격적인 인천 방문과, 바로 전인 9월 말 박근혜 대통령과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반기문 사무총장 면담을 꼽을 수 있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와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과 리 외무상의 반 총장 면담, 그리고 박지원 의원과 북한 김양건 통전부장의 판문점 회동에는 한가지 공통된 사안이 있다. 바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에 이뤄졌다는 '밀약' 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 등에 따르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순수하게 '민족통일' 차원에서 이뤄졌다기보다 남과 북 양측이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거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즉, 김대중정부는 북한에 남북경제 활성화와 대규모 북한 지원을 약속했고,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에 응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도움을 준다는 비밀 약속(밀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비선라인이 성사시키는 과정에 '밀약'이 논의된 것으로 안다고 전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이러한 주장, 문제 제기에 대해 일관되게 부인해왔다)

주목되는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북한에 들어간 점이다. 이와 관련, 미국 부시정부는 "한국에서 북한에 들어간 수조원의 돈이 북한 핵개발에 전용됐다"며 김대중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부시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룬 한 정보 관계자는 "현대그룹 해외 지사를 통해 오스트리아, 러시아 은행 등을 통해 평양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은 2010년 1월 '한미관계, 의회 이슈'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김대중정부가 현대그룹 등을 통해 북한에 제공한 자금으로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핵 개발을 위한 물질과 장비를 구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대해 DJ정부 사람들은 "북한지원금은 경제 분야등 민간 차원에 쓰였으며 핵개발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반면 베이징 소식통은 미국 측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엄청난 돈이 북한에 들어왔다. 김정일 등 수뇌부는 인민을 위해 쓰기보다는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남조선에서 정상회담 대가로 그(현대그룹 지원)와는 다른 대규모 대북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남한 정부의 대규모 지원 약속을 믿고 거금을 군사분야에 쏟아부었는데 막상 남측의 지원이 이행되지 않자 충격을 받았다"면서 "북한은 국가계획을 짧게는 5년, 10년, 그리고 50년 안팎의 장기 계획을 세우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베이징 등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2007년 10월 퇴임 2개월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남북정상회담을 한 것은 김대중-김정일 '밀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우리 정부에 줄기차게 6ㆍ15 선언과 10ㆍ4 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것도 DJ정부 시절의 '밀약'을 이행하라는 압박이라는 설명이다 .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전술한 '밀약'은 DJ정부 때는 물론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때도 이행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북핵 안전성 미확보, 대북 지원과 관련한 남북 당국의 이해차, 우리 정부의 전략 부재,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각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에 발전적 변화 가능성이 높아졌고 '밀약'에 대한 북한의 기대도 커졌다.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 일관성을 보이며 대북 지원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 데다 국제사회도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하고 있어서다. 북한도 이전 정부 때와는 달리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대화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남북경협 활성화와 대규모 대북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밀약'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실제 박근혜정부와 유엔은 북한핵 등 장애물이 제거되거나 완화된다면 대북지원에 적극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말 박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의 대담에서도 대북 지원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 등 김대중 전 대통령 측에서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밀약'(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또는 밀약과 같은 대규모 북한 지원이 가까워진 셈이다.

'밀약'을 전제한다면 김 전 대통령 측은 2000년 당시 대북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여사가 방북을 요청한 '진짜 이유'가 그러한 국내외 분위기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이희호 여사 방북은 '밀약' 이행?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 접견에서 '북한 방문'을 요청한 것과 관련, 지난 8월 박지원 의원 일행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등과의 개성 회동이 단초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개성 회동은 북한이 느닷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화환을 전달하기로 하고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김양건 통전부장이 직접 나서면서 성사됐다. 북한은 조화 수령자로 박 의원과 임동원 전 장관을 불렀다.

북한이 조화를 전달하는 데 김양건 부장이 나선 것이나 수령자로 박 의원과 임 전 장관을 지목한 것은 사실 '대화'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주목되는 것은 이들 3인이 모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당시 개성 회동 후 남북 양측은 "조화 전달이 전부"라고 했지만 박지원ㆍ김양건 등이 2000년 정상회담의 핵심으로 그간 여러 차례 '밀약'과 관련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난 개성 회동에서도 그(밀약) 부분의 대화가 오갔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박 의원은 개성 회동에서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와 달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대북 소식통들은 박근혜정부가 '밀약'못지않은 남북경협과 대규모 북한 지원을 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박 의원이 대신 전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 소식통은 "박근혜정부는 김대중정부와 달리 '거래' 없이 순수하게 북한을 도우려는 의지가 강해 북한도 기대가 크다"고 전했다.

이러한 박근혜정부의 대북 입장은 유엔을 통해 재확인됨으로써 북한이 '행동'에까지 나서게 했다. 베이징과 미국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9월 2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 4일 전 박 대통령이 반 총장에 전한 대북 입장과 정책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또한 리 외무상은 반 총장으로부터 향후 대북 지원 및 북한의 변화에 한국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밖의 소식도 접했다.

리 외무상은 반 총장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9월 30일 러시아로 달려갔고, 다음날 오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등을 만나 반 총장이 전한 얘기가 사실이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러한 사실을 평양에 타전했다. 그날 평양에선 북한 변화에 대한 한국의 역할(대규모 지원 등)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를 넣고 격론이 벌어졌다. 사안이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만큼 최고위급인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이 나서기로 결정했고, 10월 4일 파격적인 인천방문을 단행했다.

최근 대북 전단 논란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전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흔들리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는 상호 교류와 발전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장차 반기문 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이렇게 남북관계가 새 전환기를 맞는 과정에서 이희호 여사의 방북 요청이 나왔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은 이 여사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2000년 정상회담 과정의 '밀약'이 다시 거론되거나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규모 대북지원이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현 남북관계가 '밀약'같은 대북지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김대중정부 사람들이 방북하게 되면 그것(밀약)을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가 북한에 끌려다닐 위험이 있고, 현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2000년 정상회담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한 한반도 전문가는 "이희호 여사의 방북이 이뤄지고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을 제시할 경우 무분별한 대북 지원 홍수가 나타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과거와 같이 '큰 떡'을 받아먹기만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북 지원은 명분 있는 프로젝트인 만큼 지하자금 등 불투명한 자금이 엉뚱한 곳으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 여사가 방북 요청을 한 '진짜 이유'가 대북지원에 따른 '과실'을 탐하려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즉, 이 여사가 방북하게 되면 정치적이든, 인도주의적이든 어떤 형태의 대북지원이 논의될 것이고,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 상당한 자금 지원이 수반되는데 이 여사 측은 대북지원의 이니셔티브와 함께 금전적 이득도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과정과 이후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잘 아는 대북 소식통들은 이희호 여사의 방북 요청에 대체로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대북 지원 과정에 주체, 자금, 방법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북한에 이용당하거나 현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북 소식통은 "2000년 정상회담 과정에 김대중정부가 북한에 약점이 될 수 있는 빌미를 남겼다는 얘기가 파다했는데, 이런저런 것을 고려할 때 당시 정부 사람들이 방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에서 이 여사의 방북이 '장벽'을 허물고 새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찬성론도 만만찮다. 북한 어린이를 위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방북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여사의 방북 요청에 "기회를 보겠다"며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과연 이 여사의 방북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종진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