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정윤회씨 첩보 본격 생산… 첩보 내용에 VIP 동향도 포함돼감찰 결과 사실일땐 '권력암투' 입증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지난 11일 오전 청사를 나오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 핵심 실세·사정라인, 정씨 동향보고에 촉각 왜?
유출된 문건은 사정기관 첩보와 청와대 보고 정리판
첩보 내용에 VIP 동향도 있었지만 문건에는 빠져 있어

정윤회씨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그리고 박관천 경정이 검찰에 출두해 진술하면서 검찰의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한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씨를 비선실세로 지목한 청와대 문건의 유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청와대에서 올해 초 발생한 문건 유출 과정을 감찰한 자료를 넘겨받아 청와대 측이 제기한 이른바 '7인회'의 공모 여부도 최종 확인할 방침이다.

일단 청와대는 감찰 결과를 통해 조 전 비서관이 주도한 '7인회'가 '정윤회 국정개입' 동향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까지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언론사 간부, 대검 수사관, 오모 청와대 행정관 등이 '7인회' 멤버로 거론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관련 소문을 부인하고 있다.

'비선 실세'로 거론되는 정윤회씨가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고소인 자격으로 중앙지검에 출두한 가운데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불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정씨 등 고발인들의 요구에 따라 청와대 내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이들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건 유출과는 별도로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은 일단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문건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추가로 제기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 수사 방향을 놓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문건 유출과 관련해 "검찰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에 대한 비난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몸통을 찾지 못한 채 깃털만 처벌하는 '용두사미형 수사'라는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검찰이 지금까지 권력형 사건 수사를 속 시원히 해결한 적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울러 최근 검찰 안팎에서 심상치 않은 소문도 무성하게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담긴 내용 중 일부가 이미 올해 초 검찰에 첩보 보고된 사항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 같은 루머가 조금씩 확산되면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 내부에는 미묘한 기운이 형성되는 상황이다. 검찰 주변에서 "검찰의 문건 유출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도출될 경우 검찰은 유탄이 아니라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찌라시 생산지?

조 전 비서관 조사와 함께 검찰은 박 경정에게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회동 의혹을 처음 알린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문건 내용의 출처를 캐고 있다.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의 진위를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10일 문건 내용의 제보자로 파악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지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검찰은 박 전 청장이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진술한 광고회사 대표, 서울청 정보분실 직원 등도 불러서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이정현 홍보수석 축출설', '김덕중 국세청장 교체설' 등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겨냥한 구체적인 문건의 작성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 등에 담긴 ▦핵심 인사들의 축출설 ▦정씨의 은거설 ▦정씨 면담에 7억원 필요설 ▦정씨 인사개입설 등 문건 내용의 개별 출처가 확인되면 '7인회'가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의 실체가 규명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검찰은 청와대 오모 행정관이 "조 전 비서관이 문건의 작성, 유출을 주도했다"고 진술한 부분에 주목하고 조 전 비서관이 이번 문건 유출의 핵심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수사를 거꾸로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건 유출 경로 조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정씨와 조 전 비서관 등 관계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어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건은 일단 청와대 내부 문건으로 밝혀졌지만 이것이 실제 청와대 내부문건인지 또 어떤 목적에서 작성된 것인지 그리고 이 문건은 누구의 요구에 따른 것인지 등이 구체적이지 않다. 이 같은 부분이 먼저 규명되지 않은 채 단지 문건 유출을 누가 했는지 밝히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시 말해 문건이 어느 선이 지시해 어떤 과정을 거쳐 작성됐는지 먼저 규명되지 않으면 문건 유출경로를 역학추적하기 힘든데도 이 부분에 대한 조사는 생략된 채 진술에 기초한 유출 당사자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내부 문건을 놓고 청와대 정무라인과 박근혜 대통령이 왜 서로 엇갈리는지 납득이 쉽지 않다. 청와대는 문건 유출 사건 직후 청와대 내부 문건이 맞다고 인정했지만 얼마 후 박 대통령은 문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며 내부 문건을 시중 정보지 일명 '찌라시'로 규정해 버렸다. 이는 바꿔 말해 청와대가 찌라시를 내부문건으로 생산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석연치 않은 것은 이뿐만 아니다. 청와대가 무슨 이유로 순순히 내부문건이라 인정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청와대에는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내부 대응 매뉴얼이 있다. 예컨대 과거 이명박 X파일, 박근혜 X파일 사건이 불거졌을 때 파일 작성자로 지목된 국정원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국정원 직원이 이 파일을 작성한 정황이 드러나자 "자체적으로 조사를 한 결과 내부 직원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파일로 국정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국정원이 파일 작성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꼬리를 잘랐다. 결국 해당 직원만 문책을 당했고 국정원은 직격탄을 피해나갔다.

청와대는 유출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하고 '허위사실 유포자 색출'이라는 구호를 외쳐도 될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사안을 키웠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내부 문건을 찌라시라고 규정한 사람은 대통령과 정씨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내부문건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 같은 모양새는 미묘한 구도를 암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사건 초기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사건'으로 규정하며 "유출자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한 것을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문건 유출자가 이번 사건의 핵심 즉, 작성과 언론제보 등 모든 것을 기획한 핵심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유출자를 찾은 뒤 그와 연결된 상부라인을 축출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살얼음판 걷는 검찰 불편한 수사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문건 유출 사건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무성하다.

이는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나오는 말이 아니다. 자칫 검찰의 수사방향이 틀어질 경우 검찰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 제기되는 관측이다. 문건 유출과 관련된 수사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야권을 비롯한 여론이 문건의 진위여부를 놓고 검찰을 압박할 수 있다. 우선 야권에서는 유출자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문건 진위와 관련해 특별조사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문건과 관련해 검찰도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는 게 검찰 주변의 분석이다.

수사가 정점을 향해 가면서 검찰 등 복수의 사정기관 주변에서 "문건 내용 중 일부가 검찰 등 사정기관에 흘러들어간 정씨 관련 첩보와 겹치는 대목이 적지 않아 문건이 사정기관 첩보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문건의 불똥이 검찰로 옮겨 붙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 "수사 내용에 따라 검찰 등 복수의 사정기관들에 메가톤급 후폭풍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일각에서 검찰 수사 시나리오과 관련, "검찰이 문건 작성 경로 등에 대한 수사는 손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확산되고 있다.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 내부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정씨에 대한 여러 첩보가 올해 초부터 생산됐으며, 지방선거 직후 일부 사정기관에서 정씨 관련 첩보를 수집한 정황이 있다.

이 소식통은 "검찰이 조사하지 않아도 유출된 문건 내용을 살펴보면 여러 정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건이 박지만 회장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동향보고가 아니라 정씨에 대한 동향보고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왜 정씨의 정보가 수집 정리됐는지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정기관의 동향 관련 첩보나 정보수집은 주요 인물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이뤄진다. 정씨 문건은 정씨만 집중적으로 조사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정기관 등에서 정씨에 대해 산발적으로 수집해 얻은 첩보를 상부기관이 보고받아 다시 이를 특정 목적이나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따로 정리한 것이 바로 정씨 문건이다.

이 소식통의 말대로라면 검찰도 정씨 관련 첩보를 보고받고 이를 청와대 등 상위기관에 올렸을 수도 있다. 실제로 검찰이 그랬다면 정씨 문건 생산에 일조한 검찰은 문건 진위여부와 문건 작성 배경 등을 제대로 밝히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경정은 사건 직후 "억울하다. 지시에 따라 문건을 작성하기만 했을 뿐 유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다시 말해 기존의 있는 내용을 서식에 맞춰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정씨 문건은 여러 통로에서 수집된 정보를 집대성한 것"이라는 소식통 말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청와대 상급라인의 누군가가 수집한 정씨의 정보를 계획적으로 한곳에 모아 치밀한 계획 아래 유출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이 유출자를 찾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 문건이 유출된 곳으로 확실시 되는 곳은 문건을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와 한화 등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미 문건이 여러 경로를 통해 많은 곳으로 유출됐고 확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역학추적을 해서 유출경로를 파악한다 해도 결국 청와대라는 벽을 넘지 못하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 그리고 유출 경관 2명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끝날 수 있다는 검찰 수사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야권과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정씨 문건과 관련해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 들린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씨 관련 사정기관 첩보는 대부분 VIP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또 정씨 관련 첩보는 VIP 또는 십상시의 동향과 연결돼 보고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정씨 문건은 VIP에 대한 내용이 대체로 빠져 있다. 'VIP의 특정 결정에 정씨가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줬다' 이런 식인데 문건이 정씨 첩보에만 철저히 맞춰진 느낌이 든다. 이는 VIP를 의도적으로 피해 작성된 문건이 틀림없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정기관 첩보에서 십상시와 정씨 등이 특정 식당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등의 내용은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내용은 정씨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청와대 특정 라인에서 나온 첩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사건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검찰이 박 회장을 상대로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박 회장은 정씨에 가로막혀 박 대통령과 관계가 소원해졌고 이로 인해 청와대와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져 있지만 일부에서는 박 회장이 은밀하게 박 대통령을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박 회장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청와대 관계자들과 여권 친박계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혹독하리만큼 로열패밀리를 단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활동에 제약을 호소하며, 이에 대해 크게 불만을 터뜨렸을 때에도 박 대통령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박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 '사업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일은 아예 관심도 갖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박 회장을 두고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청와대를 찾지 않았다"고 밝힌 것은 이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 라인이 모두 청와대를 나간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박 회장은 대통령에 누를 끼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을 갖고 반발할 인물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건의 작성과 유출 과정에 이른바 '조직적 배후'가 있었다는 청와대의 내부 감찰 결과가 나오면서 '비선실세 국정개입' 수사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는 '7인 그룹'이 문건을 꾸미고 유출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는 청와대의 감찰 내용을 두고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7인 그룹 멤버로 지목된 이들을 상대로 추가 수사를 벌일 계획이다.

청와대 감찰 결과는 문건 작성과 유출에 연관된 의혹 수사에 촉매가 될 전망이다.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작성 및 유출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고,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 외에 5명의 인물이 새로 등장한다. 이들이 문건 유출을 은폐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점을 시사하는 내용도 감찰 결과에 담겼다.

청와대의 감찰 결과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문건 유출 사건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박지만 EG회장 측이 포함된 조 전 비서관의 '권력암투'를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검찰은 청와대가 전달한 감찰 결과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 중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7인 그룹'으로 분류된 인물 한명 한명이 모두 문건 작성 및 유출에 관여한 것인지 등을 자백할 경우 사건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