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ㆍ박관천 '생존 카드' 쥐고 있나… 검찰 수사 결과 '삼천포'로?조·박 "당하지만은 않겠다… 다 밝히면 큰 일 벌어질수도"박근혜 대통령 '찌라시' 발언 내부 권력 암투 모르는 일?박지만 미행사건 수사 "정윤회는 무죄" 정해진 결론설

‘정윤회 문건’과관련해 지난 5일 검찰에 소환된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이 6일 새벽 조사를 마친뒤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빠져 나오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일단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검찰은 문건 유출에 이어 이른바 '박지만 미행사건'의 발단이 된 정보보고서 작성 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 모두가 '박관천 경정→정보1분실 경찰관→세계일보'로 이어지는 단일 경로를 통해 외부에 유출된 것으로 검찰은 사실상 결론 내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검찰의 권력형 사건 수사에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 등에서는 "문건 유출 사건 등을 특검을 통해 다시 수사해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고 있다.

문건 유출과 박지만 미행 사건의 핵심이 박 경정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박 경정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박 경정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나는 억울하다" "내가 입 열면 큰 파장이 일 것"이라는 말을 반복해 왔다. 이 때문에 박 경정이 검찰로부터 강도 높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검찰 수사결과를 반박하는 새로운 내용을 밝힐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반출한 것으로 알려진 방대한 분량의 문건에 관심이 모아진다. 박 경정의 문건들 중 민감한 내용이 담긴 내부 문건이 더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박 경정이 정보 업무 관계자의 특성상 자신이 취합한 정보들에 대해 입을 다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향후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추가 폭로의 여지도 남아 있다.

비선(秘線)실세 규명 불투명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을 담은 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조사된 박관천 경정(가운데)이 16일 오후 검찰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사진은 지난 5일 새벽 조사를 받은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박관천 경정.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문건유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예상됐던 시나리오 그대로 '용두사미'격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검찰은 사건의 핵심을 박 경정 한 사람에 집중시키고 있지만, 이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게 대다수 사정 관계자들의 견해이다.

박 경정은 경찰공무원으로 권력의 틀 안에 들어있지 않다. 그가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한 핵심이라면 그 동기가 명백하게 드러나야 할 일이지만 자신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도 않는 일을 스스로 실행했다는 게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검찰은 박 경정을 사건의 핵심이라고 못 박으면서도 그가 왜 핵심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라 경로를 추적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바꿔 말해 관계자들이 입을 맞춰 가리킨 곳으로 갔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검찰이 문건 유출과 관련, 박 경정의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 윗선의 지시, 특정인에 대한 원한, 행위에 대한 대가 등등 명확한 동기를 밝혀야 하지만 현재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건 초기 "검찰 수사가 청와대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꼬리만 잡게 될 것"이라고 회의론을 제기했다. 현재 검찰 수사는 향후 재판에서 입증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범행은 있지만 동기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사건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검찰은 '비선 실세' 논란의 당사자인 정윤회씨부터 박지만 EG 회장까지 주요 관련자 소환 조사를 마치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가지고 나온 것은 박 경정이고, 이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한모(44) 경위가 복사했으며, 지난 13일 자살한 최모(45) 경위가 세계일보 기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잠정결론 내렸다. 박 경정이 반출해 정보1분실에 가져다 놓은 문건을 박 경정 모르게 한 경위가 복사했고 이를 넘겨받은 최 경위가 언론에 유출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말 그대로 "황당한 이야기"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경찰 정보과 직원들이 내부 문서를 아무런 이유 없이 외부에 유출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정보과 직원들은 외부 정보를 안으로 들이는 일 외에 정보 교류를 위해 내부 정보를 외부로 반출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다. 더구나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을 복사해 유출 배포했다는 것은 보안 교육을 철저히 받은 경찰 정보과 직원들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무엇보다 유서에 억울함을 피력하며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최 경위의 행위를 미루어 봐도 특별한 이유 없는 행위였다는 검찰의 수사는 석연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 정보 업무 관계자는 "정보관련 업무를 하다 보면 정말 바닥이 좁다. 기관이나 기업의 정보 업무 종사자들은 서로 교류를 하기 때문에 한 다리만 건너면 다 크로스 체크된다"며 "특정 정보가 돌면 그 정보가 어디서 나왔는지 또는 누가 그런 정보를 흘렸는지 포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경찰 직원이 쉽게 특정될 수 있는 민감한 문건을 유출ㆍ배포했다는 것은 정보업무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들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실제로 최 경위는 검찰 수사 및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은 자신과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박 경정 파일 핵폭탄 되나

결론적으로 검찰은 유출배포라인은 밝혔다고 해도 그 배후, 즉 범행동기에 해당하는 지시라인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유출 배포라인으로 지목된 이들도 다른 주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순순히 "내가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뒤집어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 수사 기법상 검찰이 박 경정과 한 경위에 빅딜을 제시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을 두 사람 선에서 마무리하는 대가로 가벼운 처벌을 약속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박 경정과 한 경위를 압박하기 위해 이들의 추가 위법행위를 들춰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박 경정의 처벌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박 경정은 언론 등을 통해 문건 내용과 관련, '추가 내용을 더 폭로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박 경정은 체포되기 직전 접촉을 시도해 온 한 언론사에 "비밀을 지키고 있는 데 대한 회의감이 든다"며 폭로가능성을 암시했다.

이어 박 경정은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속이 후련해지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라며 "내가 이번에 나온 (정윤회) 문건의 내용,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 문건 작성 경위 등을 이야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다. 내가 시작과 종착이었으니까 민감한 사안을 가슴속에 쥐고 있는 것"이라고 이 언론에 밝혔다.

이에 박 경정이 정보1분실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알려진 라면박스 2개 분량의 서류뭉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윤회 동향' 문건과 '박지만 동향' 문건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 경정이 수집한 정보 중 정윤회 박지만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문건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검찰 조사 결과에서도 뒷받침 된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이 모두 해당 서류뭉치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했다. 검찰은 한 경위가 숨겨 놓은 휴대전화에서 찾아낸 통화내용 녹음파일을 근거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녹음파일에는 한 경위가 한화S&C 직원에게 문건유출 과정에 대해 털어놓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정은 청와대에 보고된 여러 정보들을 취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생산한 첩보의 보고라인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라인에서 전해지는 여러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예컨대 첩보생산→ 지휘부 보고→ 상부의 첩보내용 추가확인 지시→ 추가 확인 사항에 대한 상부 지시 전달 등 전 과정에 박 경정은 정보생산 당사자로서 포함돼 있을 수밖에 없다 게 전직 청와대 근무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박 경정이 생산한 정보 중 정윤회ㆍ박지만 관련 내용은 비서실을 거쳐 VIP에 전달됐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비서실 라인에서 VIP를 보호하기 위해 김기춘 비서실장 선에서 정보를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당 내용은 VIP에 보고되지 않을 수 없는 사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비서실에서 하는 핵심 업무 중 하나가 VIP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보고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라며 "더구나 VIP의 로열패밀리 관련 내용은 무조건 보고하게 돼 있다. 이를 김 실장이 보고받고도 잘랐다면 직무유기이고 대통령을 기만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의 인사는 "내가 알기로 대통령은 정윤회ㆍ박지만 등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보고받았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 김 실장만 알고 대통령은 몰랐다는 입장이니 이는 국민적 비판을 자초한 잘못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에 검찰 주변 등 일부에서 박 경정이 입을 다문다 해도 문건 내용과 관련된 진실이 결국 드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박 경정 외 박 경정과 유사한 정보를 생산한 이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애초 박 경정이 작성한 청와대 문건은 박 경정이 직접 보고 겪은 일을 작성한 파일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생산한 정보를 받아 확대 재생된 것이다. 이 때문에 비슷한 정보는 다른 곳에서도 추가 생산됐으며 이보다 더 자세한 내용의 파일과 다른 사건 정보를 담은 정보가 더 존재한다는 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 일부 의원실에서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을 통해 수집한 청와대 동향 정보에도 정윤회 관련 내용이 적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박 경정이 추가 폭로를 하게 되면 이를 뒷받침할 정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와 검찰은 상당한 후폭풍에 시달릴 수도 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35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