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주도권 탈환 정면 충돌… '친노-비노'생존 건 전당대회 전운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모임' 인국가경쟁력강화포럼 송년 오찬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조기레임덕·진보진영 신당창당설에 정치권 '권력지형' 변화
2월 전당대회·4월 보궐선거 준비 앞두고 여야 내부 '암투' 본격화
새누리당 '친박-비박'·새정치민주연합 '친노-비노' 극한 대립구도

2015년 희망찬 새해가 열렸지만 정치권 분위기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 당 내부에 계파갈등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새누리당은 양대 계파인 친박(친박근혜)·비박(비박근혜)계 사이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오는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친노무현계)와 비노(비노무현계) 간에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이어져 온 친박-친이(친이명박)계 간 오랜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면서 폭풍전야의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친박-비박의 전운은 일부 의원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한 의원은 "청와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당내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박계의 불만도 증폭되고 있다. 친박 의원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연말인 12월 30일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유기준 홍문종 윤상현 의원 등 40명가량이 참석한 가운데 연 대규모 오찬회동에서 김무성 대표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공개적으로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서 김 대표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 전횡을 한다"거나 "당을 사유화한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고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해 12월 "새누리당은 국민 앞에 겸허히 반성하고 잘못된 관행과 제도와 조직은 과감히 고치면서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의 분위기도 시한폭탄이다.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양강으로 분류되는 과 이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계파청산'을 당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어 전대 이후 야권 분열 등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중심 잃은 청와대 비박계 반격

이날 회동에서 유기준 의원은 "선명하지 못한 당청 관계, 국민 역량과 관심을 분산시키는 개헌 논쟁, 260만 당원의 공동권리이자 책임인 당직 인사권을 사유화하는 모습 등 갈 길 먼 정부와 우리 여당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김 대표를 비난했다.

윤상현 의원도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 득표율은 29.6%였는데, 지금 당을 운영하는 당 대표의 모습은 한 마디로 92%의 득템('수확'이라는 의미의 인터넷 은어)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친박계가 대규모 회동에서 비박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정치권 일부에서는 양 계파 간 정면충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고착화된 친이-친박계 간 갈등은 한동안 봉합되는 듯했으나 최근 친박계 인사들의 이같은 언행이 포착되면서 양 계파 간 갈등이 다시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의원
무엇보다 올해는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이어서 양 계파의 주도권 쟁탈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에 양 계파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생존을 건 포섭작업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는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과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등에서 비박계에 밀려 위기의식이 조금씩 확산됐다. 이어 지난 7·14 전당대회에서 참패하면서 "이대로 가면 당이 두쪽 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친박계 내부에서 커졌다. 이뿐만 아니라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음에도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기업·규제 개혁 등 정권 핵심부에서 추진해온 주요 국정 과제들이 좀처럼 실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위기의식은 더 커지고 있다. 이에 올해부터 친박계는 당의 주도권 탈환 작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비박계는 일단 친박계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친박 계에 당장 정면 대응을 하면 계파갈등이 본격화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김 대표는 친박 의원들의 당 사유화 주장에 대해 "(대표로서)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데 무슨 사당화(私黨化)냐"고 반박했다. 김 대표는 "내가 반 이상 (친박계에 당직을) 내놨다"면서"당 대표가 제일 큰 권력을 발휘하는 게 공천인데, 공천을 안 하겠다. 이렇게 하는데 '당을 사당으로 운영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비박계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박계에 대한 친박계의 성토가 있은 다음날 친이계(친이명박) 핵심인 이재오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속 좁은 정치를 그만했으면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박지원 의원
이 의원은 "국가나 권력을 사유화하지 말고 패거리 정치를 하지 말고 너그러운 정치를 했으면 한다"며 "새해에는 청와대나 당 지도부가 다수 국회의원의 생각을 깔아뭉개는 옹졸한 짓을 안 했으면 좋겠다. 당을 시종 부리듯이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청와대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으로 당내 계파갈등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 새누리당의 입장에 계파별 온도차가 감지돼 계파 갈등이 새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 12월 4일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은 공식 대응을 자제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친박'과 '친이' 사이에 사건을 보는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됐다.

'친박 원내 실세'로 꼽히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윤회 씨, 조응천 씨 등 전직 비서들이 나와서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바람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며 "검찰에 가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친이계 의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병국 의원은 당 최고의원회의에 참석, "청와대 비서실의 전면 개혁"을 주장했다.

김성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 옛날 궁중 비사에나 나올 법한 의혹들에 대해서만 며칠째 뉴스를 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국민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며 "국가 최고 권력의 의사 결정 판단에 비선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번에 전부 파헤쳐야 한다"고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것은 청와대 공직 기강이 무너진 문제이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라며 "국민이 집권 2년차 정권의 레임덕을 걱정하는 나라라면 이게 정상적인 나라이냐"라고 청와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과거 범친이계로 분류됐던 박민식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건이 유출됐다는 것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고의로 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공직기강이 상당히 흐트러져 있는 것"이라며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인 김 대표를 제외한 친박계 핵심 중진들만 불러 비공개 회동을 가진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청와대와 김 대표 간 불협화음이 이미 본격화 된 것 아니냐는 말도 무성하다. 지난 12월 19일 박 대통령이 김 대표 등 공식 라인을 제외하고 서청원·정갑윤·최경환·김태환·서상기·안홍준·유기준 등 친박계 중진 인사들만 불러 비공개 만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미묘한 신경전에 대해 "차기 총선 공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여의도연구원장 인선 문제를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 대표가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을 지명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내년에는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 4월 말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있다. 당권을 빼앗긴 친박계가 총선을 앞두고 생존권적인 차원에서 총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많아 계파 전쟁이 본격화돼 당내 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친박계의 공세에 김 대표를 중심으로 비박계가 본격적인 반격에 나설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계파갈등 후폭풍 새정치연합 위기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후보 등록을 지난 12월 30일 마감하고 본격적인 전대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누가 야권의 당권을 쥐게 될지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오는 2월 8일 전대에서 새 당대표를 뽑는다. 과 이 '빅2'로, 이인영 의원이 양강 구도에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이번 새정치연합 전대의 최대 쟁점은 계파청산이 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심 확보를 위한 각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양 계파는 이번 전당대회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새 당 대표는 오는 2016년 차기 총선의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특히 비노 진영은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전당대회를 치르겠다는 각오다. 당 대표 중심의 계파는 추후 야권의 주도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비노진영은 과거 민주당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권 장악이 필수다.

새정치연합의 2·8 전당대회는 '친노'와 '비노'간 계파전쟁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다크호스'로 꼽힌 김부겸 전 의원이 지난 12월 28일 불출마를 공식화함에 따라 친노 수장 문 의원과 박 의원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전대는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이 심화되는 구도의 선거가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야권 일부에서는 친노계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친노계가 확실하게 쪽으로 다 붙어 정치세력화를 도모할 것이란 이야기다. 이를 통해 문 의원을 대통령으로 강하게 밀고나가는 대오를 형성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전대 과정에서 당내 불안정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야권 내부에 적지 않다.

결국 문 의원을 중심으로 계파 자체가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번 전대의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벌써부터 전대와 관련해 친노냐 비노냐 하는 식의 구분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이에 친노를 대변하는 문 의원이 당권을 얼마만큼 장악하느냐가 관전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문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 이상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를 중심으로 계파의 한 축이 되고 있기 때문에 누가 이에 경쟁할지가 관건이 되는 구조다. 일부 전문가들은 친노 수장인 문 의원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약화된 구 민주당을 비롯해 범 야권에서는 친노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아 비노의 승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야권 안팎에서는 현재 국민정서상 친노가 불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향후 여권과의 정치적 파워게임을 고려할 때 친노가 당권을 쥐는 게 득일 수 있지만 이미 야권을 지지하는 민심은 친노에 냉소적인 반응이라는 점에서 친노의 당권 장악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노와 비노간 갈등이 전대 이후 경우에 따라 탈당과 신당창당 이라는 후폭풍을 낳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새정치연합 차기 당대표가 된다 해도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당 대표는 당선 직후 치러지는 4월 보궐선거에서 1차 평가를, 이듬해인 2016년 총선에서 본 시험을 치러야 한다. 만약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이 또다시 참패할 경우 당대표 직도 크게 흔들릴 공산이 크다.

아울러 새정치연합의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정동영 상임고문의 행보가 전대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야권에 새정치연합을 대신할 수 있는 '제3 신당'이 만들어지느냐, '호남권 신당'이 새롭게 꾸려지느냐 등이 정동영 신당의 선택지로 풀이된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등 합류 세력의 무게감에 따라 정동영 신당의 성패가 달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건은 새정치연합이 당대표 선거 후 얼마나 새 체제가 안착되느냐 여부로 모인다. 기존 야권의 판이 흔들려야 후발 신당이 누릴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정동영 신당은 성공하기 어렵다. 안철수로도 안됐던 것이 신당"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2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