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갈등 심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사자방 수사-'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시각차 반영친이계 중심 비주류 청와대 개혁·개헌론으로 친박 압박

새누리당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정치권 일부에서 최근 비박(비박근혜)계와 친박(친박근혜)계를 두고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는 말이 적지 않다. 이미 계파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친이(친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는 ‘청와대 개혁론’을 내세우며 친박계와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친박계 내부에서는 친이계를 가리켜 “야당보다 더 야당같은 여당”말까지 나오고 있다.

비박계는 검찰의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사건 중간수사 발표 후 청와대 책임론·인적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 비박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적지 않다. 친이계 등 당내 비박계가 협조를 하지 않고 국정운영의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비박계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당심을 외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비박-친박의 신경전을 두고 정치권 일부에서는 친이계가 사자방 국조 등을 놓고 청와대와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향후 총선 준비를 놓고 미리부터 자리 잡기를 염두에 두고 당내 비주류인 친이계가 비박계를 선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친이계의 도발(?)은 사자방 국조를 겨냥한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의혹 가운데 자원외교에 대한 비리 의혹이 적지 않다. 사업규모도 자원외교 부분이 제일 크다. 4대강은 이미 사정기관에서 대략적으로 조사를 한 상태이고 방위산업 비리 의혹은 현재 검찰 등에서 수사 중이다. 이 때문에 향후 자원외교 조사를 통해 드러날 MB정부의 비리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MB정부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은 당시 정부 핵심 실세들이 다수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가 자원외교 국조를 의식해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사자방 국조 친이계 발끈 속내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 7일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검찰 중간수사결과를 두고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 청와대에서 유출됐고, 연말에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면서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청와대가 인사조치를 과감하게 취해야 하고, 그것이 청와대가 국민을 신뢰하는 자세다. 그런 조치가 금명간 있어야 한다”고 청와대를 압박했다.

이 의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청와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책임을 지든지 담당 비서관이 책임을 지든지, 아니면 비선실세로 알려진 사람들이 책임을 지든지 말끔하게 처리가 돼야지”라며 구체적 대상을 거론하기도 했다.

또 “(청와대가) 국민에게 ‘미안하다. 새해부터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관련됐던 몇몇 사람들은 부득이 쇄신차원에서 인사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치를 하는 게 책임정치이고, 적어도 청와대가 여당 입장을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이 의원은 강조했다.

정병국 의원도 최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이 의원과 뜻을 같이 했다. 정 의원은 “이 사건은 청와대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청와대가 만든 문건이고 이런 문건이 밖으로 유출됐다는 팩트가 있는 게 아니겠나”며 “누군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청와대에서 책임을 지고 인적 쇄신을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새누리당 내부 계파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면서 당 내부에서 “계파 갈등이 연초부터 시작될 경우 총선정국을 앞두고 쇄신 요구와 개혁 바람이 정면충돌할 게 불 보듯 환하다. 이렇게 되면 당은 총선 준비와 맞물려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여당의 한 관계자는 “사자방에 대한 야권의 요구가 거세기는 하지만 결국 청와대가 자원외교 국조와 관련해 가릴 부분은 가리게 될 것”이라며 “친이계와의 타협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자원외교와 관련된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결국 새누리당 친이계 뿐만 아니라 청와대도 좋을 게 없다. 어차피 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진퇴양난 청와대 해법은?

일부에서는 친이계의 반란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이계가 청와대와 친박계를 압박하는 것을 두고 “사자방 국조와 더불어 내년 총선을 위한 의식적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진 점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해법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점 등이 작용해

올해 청와대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친이계의 움직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윤회 문건 파동’에 대한 친이계의 특검론 공세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친이계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고리로 청와대 쇄신론에 그치지 않고 특검 필요성까지 주장한 것이다.

이 의원 등 친이계 핵심인사들은 “청와대 쇄신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떳떳하다면 특검을 통해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 의원은 청와대와 친박계가 의혹 확산을 우려해 꺼려하는 특검 필요성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 의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으니 특검을 못 받는다면 야당이 ‘아무것도 아닌데 왜 특검을 못 받느냐’고 할 것 아니냐”면서 “야당의 특검 주장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국이 점점 혼란스러워진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일단 친이계를 비롯해 정치권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과 8일에는 일정을 비운 채 기자회견 등 여러 가지 국정 현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정치권의 공세 수위와 여론의 움직임을 분석한 뒤 인적쇄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주변에서는 두 계파가 전면전을 앞두고 전략 마련 중이라는 소문과 함께 청와대가 친이계에 강공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향후 두 계파의 대립은 더욱 거세질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구나 친이계는 청와대 개혁, 문건 유출 사건 특검에 이어 개헌론 요구까지 더할 태세여서 폭풍전야와 같은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개헌문제는 현재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자칫 당 내 대혼란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들 수 없는 문제로 간주되고 있지만 친이계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겠다는 자세다.

개헌론을 주도하는 이 의원은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는 것은 일반적인 국회의원들의 요구로서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개헌특위 구성 요구에 당 지도부가 미온적으로 나오는데 대해서도 문제삼았다.

지난해 ‘개헌 봇물론’ 제기했다가 한발 물러났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지난 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이날 공개 회의에서 “우리나라처럼 지나치게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돼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 방문 중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고,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가 돌연 하루 뒤 “연말까지 개헌 논의가 없어야 한다”고 물러선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대책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청와대가 가장 크게 보는 사안은 문건 유출 특검이나 사자방 국조보다 개헌문제다. 박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당직자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오는 15일 국회 정치개혁특위 구성을 논의할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개헌 관련 논의를 할 가능성이 크다.

개헌관련 논의가 본격화 될 경우 청와대와 친박계의 동력이 크게 상실돼 국정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빗을 수도 있다는 견해가 친박계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부분에 대해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친이계와 이 문제를 놓고 총선 등과 관련된 모종의 ‘빅딜’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다.

본 기사는 <주간한국>(www.hankooki.com) 제 256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