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핵심부 움직이는 MB의 '숨은 힘'… 청와대 '사자방' 수사로 압박

<대통령의 시간> 회고록 탈고 후 가족들과 외국에 나갔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1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귀빈실을 통해 공항을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청와대를 쏘다
남북관계 중대 시점 나온 MB 비밀공개 내막
박근혜 대통령 위기론 확산 통일준비작업 적신호 왜?
MB 회고록 놓고 청와대 비상대책회의 무슨 말 오갔나

[주간한국 윤지환 기자]이명박 전 대통령(MB)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발간을 놓고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회고록과 관련해 여러 대응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회고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사전에 청와대가 파악한 내용보다 더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말하자면 MB측이 회고록 내용을 청와대와 전혀 조율없이 공개했기 때문이다. 회고록 내용을 대외적으로 사전에 철저히 비밀에 부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이에 일각에서 "MB가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 시점에 회고록을 공개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친박진영 일부에서는 회고록 발간을 두고 "MB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의 정치세력화가 목적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시점인데다 정부가 '대박론' 현실화를 위해 대북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회고록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1월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친이계 세력화 신호탄

친박계 내부에서는 회고록 발간 의도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주변 인사 10여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점으로 미뤄 회고록 출간을 통해 정치적 입지 강화를 도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그러나 회고록에 대한 세간의 비난이 적지 않아 일부에서는 "오히려 친이계가 역풍을 맞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지만 친이계가 이 같은 계산을 사전에 넣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회고록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지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한의 태도에 대한 기술이다. 이 내용은 지지율 상승의 유일한 돌파구로 꼽혔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 프로젝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 회고록이 이러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도 적지 않다.

회고록에 대한 대중의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청와대의 향후 국정동력 즉, 지지율 상승의 전환점이 될 대북정책의 결실 수확을 불투명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회고록이 나오면서 북한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고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대북프로젝트에 대한 국민적 시선에도 의구심이 서리고 있다.

청와대가 지지율 상승과 맞물린 국정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향후 정국의 주도권이 새누리당 친이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의 내부 결속이 필요한 시점에 회고록은 적절한 카드가 되는 셈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회고록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이는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반응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그만큼 청와대와 친박계의 감정이 격앙돼 있다는 증거다. 특히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비화 등은 현 정권에 직격탄이라는 게 친박계의 입장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도를 넘었다. 여러 가지 의도가 깔린 것은 분명한 일"이라며 "청와대가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유감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것도 이 같은 내부 의견 때문"이라고 내부 기류를 전했다.

일단 친이계는 "회고록은 정치적 목적과는 무관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친박계 내부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시점에 회고록 출간의 파장을 모르고 책을 냈을 리가 있겠느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친박계는 배신감마저 드러내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회고록 출간이 자원외교와 4대강 국정조사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4대강 문제만큼은 정부가 당과 협의해 최대한 막아준 부분도 있다. 그런데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MB 정치 회고록 내면 핵폭탄

청와대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북한문제에 대한 'MB의 폭로'다. 하태경 의원은 남북관계 비화 공개에 대해 "MB가 회고록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뭘 요구했는지 시시콜콜 밝힌 것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책 출판은 반드시 철회돼야 하고 책 안의 기밀 성격 내용은 더 이상 유포돼서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이 같은 반응에 정치권에서 "회고록은 청와대의 대북프로젝트를 겨냥해 나온 것이고 청와대는 이 부분에 매우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친박진영은 대응 카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향후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측을 강도 높게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뒤통수를 친 MB를 위해 굳이 방어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와 친박계가 친이계와 사실상 거리를 두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친박계가 친이계에 등을 돌리는 것도 모자라 칼을 겨눌 경우 당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전·현 정권의 불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 친박계 핵심인사들이 잇따라 MB의 회고록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친이-친박 간의 대립은 이미 본격화 된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6일 남북 간 비사를 담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류 장관은 이날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특강에서 "사실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회고록을 쓰셨는데, 그 뒤에 있는 내용 제가 다 알고 있다"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 알고 있다고 해서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통일부 내에서는 남북간 비선접촉 내용이 구체적으로 들어간 회고록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께서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공식적인 입장 외에는 말을 아껴왔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강도 높은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친박계가 이미 주도권을 상당부분 친이계에 빼앗긴 이상 사자방 조사를 놓고 친이계를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청와대를 비롯한 친박계가 친이계에 대응할 카드를 꺼낼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점점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청와대와 친박계 내부에서 구체적인 대응공략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사자방 조사 협조가 '제살 깎아 내리기'라는 관점에서 해석도 가능하지만 현 정부가 MB정부에 아킬레스건을 잡혀 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주목을 끈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인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이던 시절 이른바 '박근혜 X파일'을 이 후보 측이 손에 쥐고 있다는 말이 무성했다. 이후 MB정부 막바지였던 2011년 말부터 2012년 사이 국정원 주변에서는 이 파일에 대한 소문이 적지 않았다.

그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다. "국정원이 박 대통령(당시 국회의원)에 대한 여러 첩보와 동향 등을 수집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정보수집 전담팀을 운영했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전직 국정원 인사가 일부 내용을 증언하기도 해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주간한국>이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에서 박 대통령의 정보를 수집했으며 이 부분을 담당한 이는 H 국정원 과장이다. H과장은 국정원의 사실상 실세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명박 정부 내내 박근혜 X파일을 만든 핵심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생산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다만 그의 지시에 의해 국정원 정보 수집팀이 움직였으며 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자 그는 소리소문 없이 모습을 감췄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현재 그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아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정원의 한 소식통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직후 "H씨는 국정원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며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라고 말했다.

MB가 '사자방' 국정조사라는 위기에 몰렸음에도 세력결집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자신감의 배경에 이 같은 사안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MB의 카드가 청와대가 내놓을 수 있는 그 어떤 카드보다 강력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