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진전 위해 방러 바람직"北 김정은 참석 가능성 낮아… 남북 정상회담 없을 듯中 시진핑도 김정은 나오면 참석 안해… 러, 北 제재할 수도박 대통령-푸틴 정상회담 남·북·러 3국 공동발전에 기여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러 단독정상회담에서 환담하고 있다.
中 시진핑도 김정은 나오면 참석 안해…러, 北 참석 막을 수도
러시아, 박 대통령 참석 바라… 남ㆍ북ㆍ러 3국 공동발전 방안 기대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9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전승 70주년 기념행사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에서도 박 대통령의 행사 참석을 놓고 견해가 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불참'쪽으로 기운 듯하다. 지난 2일 정부 고위당국자는 러시아 전승행사에서 남북 정상의 만남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김정은을 만났을 때 과연 실질적 대화가 가능하겠느냐"며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대통령의 행사 참석은 남북관계만 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고려하는 동시에 대통령이 러시아에 가서 어떤 성과를 얻을지 따져보면 방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불참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만남을 꼽는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이 대(對)러시아 제재 및 압박을 강화하며 고립화 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미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찾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조우해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눌 경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박왕자씨 피격사건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에 대해 북측에 면죄부를 주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반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러시아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한 만큼 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국제사회에서 한미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평화 안정과 북한 비핵화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가 동북아 다자대화협력의 워킹그룹 의장을 맡고 있고 한러 간 협력관계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행사에 가는 것이 한반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을 이행하는 데 있어 행사 참석은 도움이 되면 됐지 손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방러와 관련한 현재까지의 논의를 살펴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인한 남북 정상의 만남, 한미동맹이나 미국과의 관계가 논란의 요체로 비쳐진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가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국제관계 대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모스크바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 김정은이 참석하다면 중국, 한국 등이 불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럴 경우 러시아도 북한의 참석에 부정적이다"고 전해왔다. 그는 지난 1월 28일 러시아 크렘린궁이 '김 제1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해 왔다'고 밝힌 것에 대해 "그것은 북한의 입장이지 러시아가 그것을 수용할지는 알 수 없다"며 "러시아로서는 전체적인 것을 판단해 러시아에 유리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참석으로 인해 손해를 본다면 오히려 김정은의 참석을 막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의 베이징 소식통 역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러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 앞서 러시아를 먼저 방문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며 "북한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러시아를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에 간다면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 행사에 불참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2013년 12월 장성택을 처형한 것에 대해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을 더욱 불신임하게 됐으며, 특히 중국 지도부는 "김정은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대로했다고 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국제무대 데뷔나 다름없는 러시아 전승행사 참석이 이뤄진다면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행 발걸음을 돌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전승행사 참석으로 인해 중국과 한국이라는 중요 상대국이 불참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모스크바 속식통은 "러시아가 북한에게서 얻을 것이 거의 없는 반면 중국과 한국에 대해선 사정이 다르다"면서 "특히 러시아는 극동에서 중국을 경계하면서 한국과 연계하고 북한을 끌어들여 낙후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바라고 있어 어느 때보다 박 대통령의 참석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 행사에 참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도 불가능한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 박 대통령이 밝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행사에 참석한다면 한러 관계가 한단계 더 진전되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행사 참석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부분은 한미관계를 비롯한 서방과의 공조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 주도로 서방국가들은 대(對)러시아 제재를 가하고 있다. 때문에 청와대와 외교부 주류는 한미동맹과 서방과의 공조 차원에서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행사 참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반면 국제관계 전문가들 중엔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과도하게, 또는 잘못 의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미국을 대하는 것과 다르게 미국은 한국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핵이고, 중국에 대한 견제 역시 중요하지만 한미동맹만이 최고의 카드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최근 미국은 북한핵과 관련, 대대적인 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북한에 영향력 있는 중국을 통한 북핵 억제 전략이 사실상 오판이란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새로운 대북(핵) 정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핵을 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배경삼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 유리한 외교전을 펼치면서 북한을 중국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음모'를 간파한데 따른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최근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러시아를 방문해 고위 당국자들과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한미동맹을 틀어지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은 북핵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의 방러가 오히려 북핵 문제에 한국이 주체적으로 관여할 수 있고 러시아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국제 정보관계자는 "한국 정부에 미국 유학파 출신이 많고 이해관계자들이 국정에 참여하는 것이 한미동맹을 왜곡시키고 한국의 이익을 방해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뼈있는 말을 전했다.

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와 3ㆍ1절 기념행사에서 남북관계의 신기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철도 연결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 실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 전승행사 참석에 대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야하는 국내외적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