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로비스트 이규태 외 더 있다"합수단 수사 거물급 비리 척결 한계 부딪혀정·관·재계 얽힌 해외자금추적 못해 '빈 총'만

방위산업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방위산업 비리 정부 합동수사단이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비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 다른 로비스트들에 대한 추가 수사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이 과거 김대중 정부 무기중개상 조풍언씨와 관련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래전부터 로비스트가 방산시장을 장악해 온 것 아니냐며 강도 높은 전방위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조씨와 가까웠다는 점을 들어 방산 로비스트가 여야를 막론하고 무차별 정ㆍ관계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조씨는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 최고의 무기 브로커로 알려졌다. 특히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모든 무기도입 사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로비스트의 깊은 뿌리와 그늘

조씨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대단히 치밀하고 노련한 사람이다. 그는 워낙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뀐 이후 방산비리 수사에서도 위법 사실 추적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조씨는 무기도입 분야에 관한 한 업계에서는 '천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 분야에서 그만한 자질을 가진 자는 전무후무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에이전트를 내세워 일을 처리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업이 끝나면 회사를 정리해 버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정보기관 소식통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는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 제품을 도입하는 사업에 관여했다. 또한 조씨는 감시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1,000억 안팎 규모의 사업을 주로 취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과 관련해 조씨는 러시아제 대 전차 유도미사일 도입사업과 차기 전투기 도입사업에서 이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배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씨는 일종의 소개 커미션만 챙기고 실질적인 사업은 이 회장이 맡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말하자면 조씨는 로비스트 역할 업무에만 충실했고 이 회장이 사업을 통해 수익을 분배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이 회장이 러시아제 무기도입사업뿐만 아니라 고철 및 비금속 수입 사업을 독점한 부분이 꼽힌다. 이 부분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대체 이 회장이 어떻게 무기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의 사업을 독점할 수 있었는지를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이러한 일들은 이 회장 뒤에 조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조씨의 영역이 아닌 부분도 많고 조씨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원칙을 가진 인물이어서 이 회장의 다양한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정기관의 한 인사는 "방산비리를 통한 정치권 비자금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조풍언 커넥션부터 먼저 밝히는 것도 방법"이라며 "조씨와 이 회장 그리고 조씨와 DJ 집사로 알려진 이수동과의 커넥션 고리가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차기 잠수함 건조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조씨가 개입한 의혹도 제기된 바 있어 "이 회장이 잠수함 사업 비리와 관련해 정권 핵심과 연결된 것 아니냐"는 소문도 무성하다.

조씨는 미국제 무기와 이스라엘 무기 도입 사업에 관여했는데, 그가 1,000억 안팎 규모의 사업을 주로 취급한 것은 정부 감시가 미흡하다는 게 그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김영삼 정권 시절 '불곰사업(러시아 경협 차관을 무기로 대신 상환받은 사업)에도 개입했는데, 이때는 일광공영을 내세워 러시아제 대전차 미사일 '메티스-M', 고철 및 비금속 수입 사업을 독점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회장이나 조씨 외에 현 정권과도 맞닿아 있는 다른 방산 로비스트가 더 있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무성하다. 그만큼 방산 로비스트의 그늘이 역대 정부에 걸쳐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정치권과 사정기관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MB정권이 연루된 방산비리는 최대한 줄이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방산비리를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이 같은 추측의 근거로 '왜 하필 이규태냐'는 물음을 들 수 있다.

현재 합수단은 MB정부 방산비리와 관계된 의혹을 사고 있는 당시 여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나 방산비리 첩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조사를 하지 않고 있는데 반해 김대중ㆍ 노무현 정부 시절 비리는 집중적으로 캐고 있어 그 같은 추정에 힘이 실린다.

여권 핵심부 안도의 한숨 왜?

방산비리 정부합수단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법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과 솔브레인 임원 조모씨, SK C&C 권모 상무에 대해 최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솔브레인이 SK C&C로부터 500억 원대의 공군 전자전 훈련사업(EWTS) 연구개발 용역을 재하청받으면서 비용을 부풀려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예비역 공군 준장인 조씨는 이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 회장과 조씨, 권씨 주변을 수사 중이라고 한다. 군과 정관계 로비 정황도 수사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지난 15년 동안 일어난 방산비리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사정기관 소식통의 설명이다.

DJ 시절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논란 끝에 보잉의 F-15K가 선정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보잉사와 로비스트 그리고 권력핵심 사이에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긴 의혹이 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추진된 차세대 전투기 사업(F-X 사업)이었다.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부정부패척결작업'이 MB정부로 향하고 있다고 관측하지만 실제로는 야권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F-X 사업 당시 DJ의 차남 김홍업씨, 천용택 전 국방장관(국정원장 역임) 등 여러 명의 '측근'이 개입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때 권노갑 전 민주당 대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당시 문광부 장관)은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을 지지했는데 이 역시 중간에 로비스트의 역할 때문이었다는 소문이 당시에 돌았다.

다시 말해 이 회장에 대한 수사는 야권과 연결된 방산비리 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사정기관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또 정치권 일부에서는 현재 여권과 연결된 방산비리 로비스트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이명박정부 때 미국과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수입 사업을 추진함과 동시에 국내에서는 무기 국산화 사업을 위해 역시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인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A씨와 마찬가지로 이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인인 B씨가 방산사업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과 무기구입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권실세 L씨와 로비스트 K씨 그리고 무기상 D씨 등도 MB정부 방산비리 핵심으로 꼽힌다.

하지만 청와대는 물론 합수부는 이 부분에 대해 수사검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일단 핵심 로비스트의 자금이 주로 해외를 통해 이뤄졌고 A씨와 B시 등은 여권 핵심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청와대 역시 수사를 지시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L씨와 K씨는 해외에서 은밀한 만남을 갖고 당시 정부의 무기구입을 추진했던 것으로 사정당국은 파악하고 있는데, 이를 추적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단순 첩보수준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합수단은 '번개사업'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번개사업은 '연평도 포격' 이후 이명박정부 시절 대통령 특명으로 추진된 사업이며, 당시 개발업체로 한화와 LIG넥스원이 선정됐다. 이후 감사원이 해당 사업에 대한 감사를 벌였고 부실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단거리 탄도탄 발사 시험 등을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훗날 이 전 대통령이 참석하는 시연 행사마저도 무산되는 등 부실 및 비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던 사업이다. 특히 번개사업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당시 국방부장관으로 있을 때 직접 승인한 사업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합수단은 현무미사일 개발과 관한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합수단에서 수사 중인 방산 비리 관련 사업은 김병관 전 국방부장관 내정자 및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고위급 인사들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대검찰청 반부패부를 중심으로 감사원, 국세청, 관세청, 경찰, 군 검찰부, 기무사령부 등 관계 기관 수사 인력 105명으로 구성된 합수단의 이번 방산비리 수사는 쉽지만은 않게 됐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방산의 특성상 쉽지 않은 수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