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서청원 "당 미래, 지뢰 밟았다"… '비박' 지도부의 협상 태도 비판'성완종 리스트' 국면에서 위축됐던 친박계 위상 확보 위한 '반격' 관측도친박ㆍ비박 세몰이 모임 가져…내년 4월 총선, 차기 대선 앞두고 힘겨루기 가열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 그룹과 비박(비박근혜) 진영 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 불거진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타결을 계기로 한동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친박-비박 간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4ㆍ29 재보선 압승으로 위축됐던 친박 진영이 김무성 체제를 향해 대대적 반격에 나선 양상이다.

친박 진영은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차가 박근혜정부뿐만 아니라 친박 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내년 4월 총선이라는 최대 현안이 있는 만큼 김 대표 체제의 독주를 방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작심한 듯 “우리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기로 했는데 안 했을 경우 ‘앞으로 당 운영과 당 미래에 지뢰를 밟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며 비박계 중심으로 구성된 지도부를 겨냥해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서 최고위원은 또한 비박 지도부가 야당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지도부를 질타했다. 그는 “지난주 목요일 최고위원회를 최종적으로 열어 문제를 같이 논의하자고 했는데, 우리도 언론을 보고 알았다”면서 “아쉽다. 왜 최고위원회가 합의체로 운영되느냐. 앞으로 이런 것을 더 신경 써주기 바란다”며 비박 지도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이어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데 합의한 점을 거론하면서 “비록 실무선에서 합의했다고 해도 50%까지 인상한 부분은 매끄럽지 못했다”면서 “사회적 기구와 특위를 만들겠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국민에게 큰 재앙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앞으로 뻔히 보인다. (여야 관계와 국회 운영이) 굉장히 어두워질 전망”이라며 “소득대체율 50% 인상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대해 당과 원내 대책에서 뼈아프게 진행해 나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서 최고위원은 공개 회의 후 15분가량 진행된 비공개 회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거듭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공개된 새누리당 자체안을 만드는 작업을 주도했던 친박계 중진인 이한구 의원도 이날 오전 한 라디오에 출연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 “실망스러운 결과이며 장기적으로 더 나빠지게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이 의원은 특히 국민연금 합의에 대해 “국민연금은 이해관계자가 훨씬 많아 치밀한 연구를 전제로 개혁을 시작해야 하는데 토론 과정도 없이 결과물만 내놓은 셈”이라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여야가 약간 정신을 놓았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친박 진영의 공세에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어려운 과제를 국회와 정부, 공무원단체,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모두 참여해서 최초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 것에 의의를 둔다. 이번 합의로 다른 개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자신감도 갖게 됐으니 책임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끝까지 잘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적 연금과 관련된 것은 최고위원들과 상의 없이 우리 나름대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국민적 재정 부담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것도 공무원연금 개혁과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된다”며 최고위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지막엔 시간이 촉박해 한계가 있었다”며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국민연금 제도 변경은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게 대원칙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 점에 대해서는 여야 생각이 다를 수 없고 중요한 것은 여야 모두 국민에 대한 월권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해서 사회적 논의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친박계의 공세에 대해 김 대표 등 비박 지도부의 주도권이 강해지는 당내 상황과 관련 친박 의원들의 불안감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친박 진영은 ‘성완종 리스트’ 여파로 한껏 위축됐던 친박계 분위기를 이번 연금 개혁 논란을 계기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연금 제도 변경은 국민 동의가 먼저”라며 친박 진영과 맥을 같이하는 언급을 한 것과 맞물려 주목을 끌었다.

한편, 친박계와 비박 인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 최근 잇따라 행사를 열면서 일각에선 양측이 세결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새누리당의 쇄신파 계보를 잇는 인사들은 4월 12일 대거 모여 보수 정당의 미래 전략을 논의했다. 국회 사랑재에서 가진 행사에는 정병국 정두언 안홍준 김성태 박민식 정문헌 황영철 이이재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택기 정태근 진수희 전 의원, 김창호 전 국회 공보수석 등 여권의 원·내외 인사 30여 명이 참여했다.

비박계 인사들이 주도하는 이번 모임은 이미 한 달 전 계획됐지만 공교롭게도 최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금품 제공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 열리면서 여러가지 정치적 해석이 따라붙고 있다.

일각에선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이 대부분 친박계 핵심인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메가톤급 부패 스캔들’로 규정한 만큼 친박의 위기 속에서 비박계가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친박계 연구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과 한국경제 활성화’란 주제로 강연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총괄간사를 비롯해 20여명의 여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4ㆍ29 재보선 이후 김무성 체제가 더욱 굳건해지면서 친박계는 위기감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 중진인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등이 당을 떠나 있는 것도 친박계의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당청 관계에 목소리를 내면서 친박계도 결속을 도모하는 양상이다. 반면 비박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양상이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김무성-유승민 체제가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비박계 한 중진은 “현재 당에서 친박ㆍ비박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내년 총선이 최대 현안인 상황에서 김 대표 체제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며 “단 김 대표와 박 대통령 간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충돌을 우려할 뿐이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성완종 파문’이 어떻게 수습되고, 박 대통령의 국정 평가에 따라 친박과 비박 간 힘겨루기 양상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