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리스크'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중요 시기 북한 자극해 남북관계 악화 빌미'본연 역할론 vs 통일 걸림돌'상반된 평가

국정원은 지난 13일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불경죄로 총살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안내실 모습.
지난 13일 국내는 물론, 세계의 눈은 국정원발 '현영철 처형'소식에 쏠렸다. 이날 국정원은 북한 내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부장관에 해당)이 지난달 30일께 반역죄로 처형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13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현 인민무력부장이 지난달 24~25일 열린 군 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이 적발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대꾸하고 불이행했으며,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부분 등이 '불경', '불충'으로 지적돼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브리핑했다. 또한 현 인민무력부장이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포로 공개 처형됐다는 정보도 전했다.

'성완종 파문'에 따른 후폭풍이 블랙홀처럼 대부분의 뉴스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현영철 처형' 소식은 일거에 국민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세계 언론도 이 소식을 긴급타전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 대북 인식은 크게 악화됐다. 국정원이 공개한 내용은 언론을 통해 '고사포로 공개 처형' '가족 앞에서 고사총 처형' 등이 강조돼 국민에게 김정은 제1위원장의 잔인함을 각인시키면서 남북관계 진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에 앞서 국정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서만 15명의 고위 관리를 처형하는 등 공포·강압정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정은은 이유가 통하지 않고 무조건 관철을 시키는 통치 스타일을 보이고, 이견을 제시하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해 본보기 처형으로 대응한다"고 보고해 김 제1위원장의 공포정치를 부각시켰다.

지난 13일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김광림 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새정치민주연합신경민 의원이 북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설 등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국정원이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북한의 상황을 공개한 시점은 공교롭게도물밑에서 남북 간 접촉이 진행되거나 남북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려는 때였다.

이번 '현영철 처형'공개만 해도 지난 4월 현 인민무력부장이 러시아를 다녀 온 뒤 러시아를 매개로 남북이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접촉이 시도되고 있었다. 박 대통령 또한 경색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5ㆍ24 조치(천안함 폭침사건에 따른 대북 제재 조치) 해제를 신중하게 검토 중인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현영철 처형'소식이 공개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게 됐다. 대북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선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을 실천하는데 부담을 가질수 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국정원이 밝힌 북한 고위관리 15명 처형 공개도 유사하다. 지난달 중순 국내에선 남북관계 진전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재원'과 관련해 논의가 한창이었고, 국제금융기관에서도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면 금융지원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도 국제금융기관의 움직임을 전해듣고 대남 공세를 자제하면서 유화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이 당초 20일까지이던 개성공단 3월분 임금 납부를 24일까지 유예한다고 우리 측에 통보한 것은 상징적인 예다.

이처럼 남북 간에 훈풍이 확산될 조짐을 보인 가운데 국정원이 29일 공개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북한 고위관리 15명 처형 소식은 북한을 자극했고, 대남 비난을 재개하는 빌미가 됐다. 당연히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같은 성격의 2013년 '장성택 실각' 소식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국정원은 그해 12월 3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최근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장성택 실각설'을 꺼냈다.

당시 장성택(김정은 고모부)이 북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비춰 '장성택 실각설' 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시민들은 북한 급변 사태에 깜짝 놀랐고, 준 전시상태처럼 뉴스마다 북한 소식을 쏟아내면서 모든 이슈가 묻혀버렸다. 세계는 '장성택 실각'을 긴급히 타전했고 일부 국가에서는 방송 중간 중간 북한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이로써 '장성택 실각'은 기정사실처럼 됐다.

그러나 국정원이 '실각설'을 발표한 3일 장성택 신변에는 이상이 없었다. 장성택은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해 10시간 가량의 비판토론에 나섰다. 당시 그의 왼쪽 가슴에 선명한 김일성 배지는 장성택이 그때까지 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장성택 실각' 보고에 따른 파장이 커지자 국정원은 실각 배경을 거론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장성택의 비리와 염문, 북한에서 반역죄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쏟아냈다. 이후 장성택은 연행된 뒤 12일 처형됐다.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을 공개한 날은 대선 댓글 공작과 화교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이 드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때다. 또한 여야가 국정원 개혁특위에 합의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장성택 실각' 정보보고로 국정원은 극적으로 회생했다.

반면 남북관계는 수렁으로 떨어졌고, '통일'의 가장 큰 가교가 될 북측 인물이 사라졌다. 더욱이 장성택은 그해 9월 남북관계 및 국제시회에서 가장 걸림돌이 돼 온 북한핵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 방안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물거품이 됐다.

국정원이 남북관계와 통일이라는 '국익'을 고려했다면 '장성택 실각(설)' 보고는 매우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후에도 남북관계 발전 및 통일과는 엇박자 나는 행보를 보였고, 향후에도 같은 입장을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정원의 그러한 행보에 대해 "본연의 임무"라는 견해가 있지만 "통일에 걸림돌"이라는 반론도 상당하다.

문제는 국정원이 앞으로도 남북관계와 통일이라는 이슈에 대해 같은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취임 초부터 남북관계와 통일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선 국정원의 행보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을 포함한 남북관계에 국정의 방점을 둘 수 있는 시기는 집권 3년차인 올 해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