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사정 시나리오' 놓고 고민… 정·관·재계 포함 친박 핵심도 조준先개혁사정 後사태수습 방안 논의 중 소문힘 실린 친이계 개혁드라이브 놓고 미묘한 분위기박 대통령-황교안 의견차 갈등 변수 전망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달 24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휴임에도 출근한 황 후보자는 이곳에서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총리 후보자를 내정한 이후 '사정정국 2라운드'를 놓고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향후 박근혜정부 핵심 라인 개편을 둘러싼 전망과 분석도 적지 않다.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서는 황 후보자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할 경우 총리임명 직후부터 대대적인 전방위 개혁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가 경남기업 수사로 강한 역풍을 맞은 만큼 신중하고 소극적인 개혁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총리 인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황 후보자가 강도 높은 개혁을 한목소리로 예고한 이상 변죽만 울리다 끝나는 개혁은 지양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정치권에서는 개혁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분석이다. 당이 친이계에 힘이 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정국주도를 위한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과감한 전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공안검찰 출신인 황 후보자를 총리로 내정한 것은 이런 배경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야권과 친이계의 반발이다. 청와대가 황교안호를 띄워 추진하는 사정정국의 핵심은 전 정권 비리 의혹 해소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터지기 전 검찰 수사는 이명박 정권의 자원외교, 해외투자, 방산비리 등에 집중됐다. 모두 정치권-기업 유착형 비리 의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와대는 황교안호를 통해 그동안 해 오던 전 정권 비리 의혹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강도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친이계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 간의 전례없는 갈등이 예상된다

황교안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4월 16일 본회의장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오전 대정부질문을 마친 뒤 악수하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연합뉴스
역풍에 당한 청와대의 선택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구조개편, 공공기관 개혁 등 국가개혁 작업을 놓고 방향과 여러 변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청와대는 황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아 총리에 정식 취임하면 사정기관을 통한 정치개혁, 부정부패 척결 등을 총괄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연금개혁과 노동시장 개편을 담당하고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교육 및 사회 개혁을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청와대는 황 후보자가 내각을 총괄하는 중심역할을 하고 최 경제부총리와 황 사회부총리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형성하는 '3각 공조' 체제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또 신임 정무수석은 중진의 국회의원 출신을 우선순위에 두고 인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여야 정치권과의 대화와 소통에 능숙한 인물을 물색하고 있다. 국가개혁 작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와 검찰 등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6월에서 8월 사이에 개혁작업 광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는 총리 임명 직후 약 3개월 정도가 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에 청와대는 이 시기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그야말로 국가개혁의 성패를 결정하는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개혁 작업 과정에서 또 다시 '성완종 리스트'와 같은 역풍을 맞는 등 변수가 발생할 경우 박근혜정부는 정국주도권 회복 시나리오는 그것으로 끝난다. 뿐만 아니라 레임덕 현상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청문회에서 황 후보자가 인준을 통과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개혁과 관련된 대국민 선언을 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역풍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청와대 소식에 밝은 한 소식통은 "총리 인준 직후 박 대통령이 직접 개혁의 필요성과 더불어 성역없는 개혁을 추진할 것이고 제살을 깎는 아픔이 온다 해도 감당할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개혁이라거나 친이계를 겨냥한 표적사정 등의 논란을 불식시키는 것임과 동시에 개혁작업과 관련,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사정정국 앞두고 친이계 미묘한 분위기

박근혜 정부가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면서 사정정국을 예고한 가운데 친이계 내부에 동요가 감지되고 있다. 사정의 칼날이 친이계 내부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박 대통령은 부정부패 척결 관계기관회의를 열고 공공과 민생, 경제ㆍ금융 등 3대 분야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작업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사정(司正) 정국을 예고했다. 범위도 포스코건설에서부터 동부ㆍ신세계 등으로 넓혀가고 있고 특히 포스코 등은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성완종 파문'으로 미뤄왔던 '사ㆍ자ㆍ방(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산업)' 의혹 수사도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져 MB정권 관계자들과 친이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실제 검찰은 지난 3월부터 러시아 캄차카 반도 석유 탐사 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원외교 관련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번 달에는 한국석유공사와 메릴린치 서울지점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하베스트 부실 인수'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메릴린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검찰은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와 메릴린치의 검은 커넥션 의혹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KIC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 등에 투자해 2조 원에 가까운 투자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메릴린치 투자가 결정된 것을 눈여겨 보고 있다. KIC는 2008년 2월 투자 결정에 앞서 2007년 말경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를 해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인수위 경제1분과에는 KIC를 잘 알고 있는 강만수 간사와 KIC 법 제정을 주도했던 최중경 전문위원이 포진해 있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MB와의 '특별한 관계'가 있는 회사가 중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전 KIC 투자운용본부장이었던 구안 옹(Guan Ong)씨를 주목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국회부회장의 아들 지형씨가 헤지펀드 회사인 블루 라이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Blue Rice Investment Management)에 몸담고 있는데, 국내에서 'BRIM'으로 통하는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로 구안 옹씨다.

검찰 안팎에서는 메릴린치에 대한 수사가 결국 MB정권 핵심 인물을 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사정작업을 통해 비리를 척결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려 친이계에 쏠리고 있는 당내 힘의 균형을 맞추고 내년 총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야는 개혁 작업에 정면으로 반발하지는 못하지만 뒤로는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친이계는 사정의 칼날이 전 정권으로 쏠리고 있는데 대해 대책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의 한 인사는 "현 정부가 노골적으로 친이계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니냐"고 반문하며 "청와대의 개혁은 정치적 명분이고 실은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한 파워게임이다. 뜻하지 않게 드러난 성완종 리스트를 보더라도 친박계 역시 개혁 대상인데 스스로 그런 길을 갈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개혁 작업 이후 유탄을 맞은 친이계 인사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하는 논의와 더불어 유탄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 소식통은 이 인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 대통령이 이번 개혁 작업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최대한 청소할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친이계 인사들은 사정정국과 관련해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있는 기획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야권도 황교안 카드에 반발

야권 역시 박 대통령의 황교안 총리 카드에 긴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것과 관련해 4월 22일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황 후보자는 야당에서 해임건의안을 두 번이나 냈던 사람이다. 장관으로도 부적격인데 총리라니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대여 강경파인 우원식 의원을 간사로 하는 황 내정자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황 내정자를 낙마시키는 데 전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이 황 내정자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데는 향후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정정국과 관련있다. 즉 황 내정자가 총리가 되면 여야 정치권에 강력한 사정 바람이 불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 박 대통령은 4ㆍ29 재보선 하루 전인 28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성완종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됐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금이 우리 정치에서 부패의 고리를 끊고 부패를 청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번 기회에 정쟁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사를 바로 잡아 국민을 위하는 정치로 바꾸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완종 전 회장의 두 차례에 걸친 특별사면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의 비리를 청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의 사면은 노무현정부 때의 일이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어서 성 전 회장 사면과 관련해 여권의 공격을 받아왔다. 황 내정자가 총리가 되면 사정정국에서 성 전 회장 사면 문제가 또 다시 쟁점이 될 수 있어 야권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거론되고 있는 각종 대형 비리에 정치권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것도 야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가령 호남을 기반으로 한 건설사인 중흥건설 수사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호남 의원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야권이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총리 후보 카드에 반발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사정정국 지휘할 황의 파트너는?

박 대통령이 차기 총리 후보로 황교안 법무장관을 발탁하면서 후임 법무장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 주변에선 황 후보자 발탁에 대비해 법무장관 후보군을 2실~3명으로 압축해 놓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황 내정자 발표 당시에는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15기)이 유력하게 회자됐다. 호남 출신으로 지역 안배와 청문회 통과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총리 후보 발표 당시 15분 지연된 것이 '소병철 내정설'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다른 인물이 후임 법무장관으로 부상했다. 안창호 헌법재판관(14기)으로 충청 출신에다 여권과도 코드가 맞아 현재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그외 노환균 전 법무연수원장(14기)도 하마평에 올랐다.

최근에는 김수민 국정원 2차장도 거론되고 있다. 김 차장은 부산 출신으로 경기고와 성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사법연수원 12기로 과거 검찰 내 '공안통'으로 꼽혔던 인사다. 김진태 검찰총장보다 두 기수 여서 검찰총장을 지휘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황 총리 후보자의 대학·사시 선배인데다 국정원 후속 인사가 부담이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 출신인 황 후보자가 총리가 될 경우 검찰 총장이 교체될 가능성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황 후보자에 대해 잘 아는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황 후보자는 검찰총장 후보로 꼽는 인물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정작업을 위해 강성으로 알려진 현 총장을 다른 인물로 교체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