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격리병원 직접 가 메르스 상황 살펴계속되는 확산에 정부 부실 대응에 지지도 또 휘청

‘성완종 리스트’ 등 각종 사건으로 정가가 어수선한 가운데 전혀 생각지 못한 사태로 박근혜 정부가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를 조짐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초기 메르스 진압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어 메르스가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크게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상황을 점검하고 의료진과 환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해 눈길을 끌었다. 메르스의 전염력이나 전파성에 대해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음에도 이 같은 행보를 한 것은 범국민적으로 불안감이 상당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강력조치 내놓을까

박 대통령은 이날 예정된 통일준비위원회 회의를 연기하고 국립중앙의료원 방문을 결정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메르스 대응에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부 부처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처를 촉구하려는 것으로 분석한다.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 최일선 현장인 국립중앙의료원(국가지정 격리병원)을 방문해 운영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의료진과 민간 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메르스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며 “현재 청와대 안팎에서는 지금과 같은 확산속도가 계속될 경우에 대해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부에서는 국가재난사태선포와 같은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메르스의 확산과 함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정부에 대한 비난여론이다. 이미 곳곳에서 정부의 늑장대응과 메르스 관련 세부내용 미공개 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심지어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며 자체적으로 메르스에 대응하자는 국민모임까지 만들어지고 있어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이 긴장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늑장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물론 정부 부처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접하는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냉랭하다. 동시에 이번 메르스 사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국무총리가 부재한 상황에서 권한대행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유럽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빈축을 사고 있다. 또 보건업무를 총괄하는 황우여 부총리도 사태수습에 역부족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박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메르스 사태 수습에 체계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정부부처와 공무원들에게 자극이 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상황이어서 사후약방문이라는 말도 적지 않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이미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는 메르스 감염자는 ‘불특정 다수’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말하자면 추정불가이기 때문에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고 확산 속도를 늦추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 주변에서 “메르스 환자가 더 늘어나고 하루하루 사망자도 더 늘어날 경우 군경에 의한 강력한 통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 ‘연가시’ 등과 같이 국가재난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소리다.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권만 해도 한국인들에 대해 입국통제를 할 수도 있다. 보건위생에 까다로운 일본뿐만 아니라 사스공포를 겪은 중국도 한국인에 대한 입국통제와 자국민에 대한 한국출국 통제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중국은 메르스 예방차원에서 이 같은 조치들을 심각하게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준 비상조치 가동?

청와대는 일단 경찰력을 동원해 메르스 통제를 추진 중이다. 이에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메르스 의심 환자가 주거지 이탈을 계속해서 시도할 경우 경찰이 의료시설에 강제격리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의 메르스 격리대상자 관리 관련 경찰 현장대응 매뉴얼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 보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매뉴얼에 따르면 자가 격리 대상자가 계속 주거지에서 나가려고 시도할 경우 우선 보건소 관계자가 경고·설득을 하도록 했다.

격리 대상자가 이에 불응하면 경찰이 보건 관계자와 함께 해당 격리 대상자를 의료시설에 강제격리한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연락이 안 된다고 보건당국이 알려오면, 경찰이 위치추적으로 대상자 소재를 확인하고 보건소 관계자와 함께 귀가 조처를 한다. 복귀를 거부하면 즉시강제 권한을 발동해 해당 복귀 대상자를 강제로 주거지로 이동하게 한다.

스스로 복귀할 의사를 밝혔다 하더라도 경찰은 격리 대상자의 복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해당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 경우 유치장에 구금해야 해 전염병 전파 차단이라는 취지에 어긋나 즉시강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모니터링을 거부하면 경찰이 육안이나 유선상으로 주거지에 있는지를 확인, 보건소 측에 알려주기로 했다. 주거지에 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 강제로 문을 열어 확인할 수도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격리조치에 응하지 않는 메르스 의심 환자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하라고 일선 경찰서에 재차 강조했다.

강 청장은 또 “공공질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불필요한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유언비어에 엄정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현재 유언비어 관련 27건의 고소ㆍ신고 등을 접수해 이 중 2건의 피의자를 검거하고 25건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대상별로 보면 대부분이 병원(19건)이고, 학교 2건, 학원 1건, 기타 5건이다.

이외에도 경찰은 공공기관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경기 안양시 보건소에서 작성한 메르스 의심자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 등 5명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다.

경기 안양만안경찰서는 지난 5일 메르스 의심자 개인정보가 담긴 문건을 유출한 안양 모 도서관 직원 A씨 등 5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3일 안양시 공무원으로부터 감염 의심자 문건을 파일로 넘겨받아 자신의 컴퓨터 화면에 띄운 뒤 이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지인에게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4명은 A씨에게 파일을 넘겨줬거나, A씨로부터 사진을 넘겨받아 또다른 지인에게 퍼트렸다.

‘안양시 메르스 감염 의심자 11명’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11명의 성씨, 나이, 성별, 거주하는 동, 접촉경위, 경과, 조치내역 등이 쓰여 있으나, 성명이 정확히 기재되진 않아 대상자를 특정할 수는 없게 돼 있다.

이 밖에 김무성 대표는 지난 4일 메르스 치료를 담당하는 서울 시내 한 국공립 의료기관을 방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박 대통령보다 앞선 행보가 주목을 끈다.

김 대표는 당 메르스 비상대책특위의 이명수 위원장, 문정림·박인숙 의원, 권은희 대변인만 동행한 채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비공개로 방문했다.

권 대변인은 “김 대표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며 “병원에서는 어려운 여건이지만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정부 여당에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