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AIIB 한국 역할론' 지원?표면상 한미동맹 강화, 대북 전략 공조실제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제어에 초점

2013년 5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때의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DB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14∼18일로 예정된 방미 일정을 10일 전격 연기했다. 외교에 앞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따른 국민 안전을 우선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날 "박 대통령은 메르스 조기 종식 등 국민 안전을 챙기기 위해 방미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그동안 박 대통령은 국내 경제활성화와 우리 경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주요국을 방문하는 순방외교를 해왔다"며 "그러나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방미일정을 연기하고 국내에서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다루기로 했던 의제들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청와에 따르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양국 간 정무ㆍ경제 협력, 북핵 등 대북 공조, 한미동맹 강화 등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국제금융과 국제 정보관계자들 사이에선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로 한 '진짜 이유'가 다른 데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미동맹과 공조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겠지만 실제 정상회담의 핵심은 한국의'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역할론'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AIIB에서 한국의 지분율 상승 등 위상이 높아지게 되면 한국은 물론, 남북관계,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방미 연기로 모든 게 순연됐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전력해온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변화의 모멘텀도 미뤄지게 됐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방미하려는 '진짜 이유'가 나오는 배경과 그 실체를 추적했다.

한미정상회담 의제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계획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발표를 통해 알려졌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6월 14일부터 18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1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방미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월 오바마 대통령의 올해 자국 국가안보전략을 설명하면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정상의 방미를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밝힌 바 있다. 당시 라이스 보좌관은 방미 초청 배경으로 "미국에 있어 사활적인 아시아 지역과의 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미국의 방미 초청에 부응해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그간의 제반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 정세 변화,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도전에 대해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기 위한 한미동맹의 역할 및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회담에서는 ▦정무ㆍ경제 등 양자 차원에서의 협력 제고 방안 ▦동아시아 및 세계 주요 정세 평가 ▦북핵 문제 등 대북 공조 ▦동북아 국가 간 협력 ▦글로벌 보건안보, 에너지ㆍ기후변화, 개발협력, 사이버, 우주 분야 등 한미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박 대통령 방미 핵심은 'AIIB' ?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배경은 전술한 의제에서 나타나듯 안보 차원의 한미동맹 강화와 동북아질서 재편에 따른 협력 모색 등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러한 부분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지겠지만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방미하는 '진짜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시대와 동북아질서 재편에 따른 한미 간 협력체계 구축이 핵심인 것은 맞지만 그 방점이 안보ㆍ군사 가 아닌 '경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방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관한 내용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국제금융 관계자는 "국제 정치나 경제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AIIB의 등장은 국제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를 중국이 주도하는 것에 대해 미국은 경계를 하고 있다"면서 "한국과의 공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대아시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게 미국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방미는 본래 9월로 예정돼 있었는데 AIIB 때문에 6월로 앞당겨졌다"며 "그것은 AIIB 회원국들이 6월에 운영 규정에 서명하고 연내 출범이 예정된 것과 관련있다"고 설명했다.

AIIB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 (ADB)등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의 주도로 설립되는 은행으로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현재 전 세계 57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은 불참한 상태다.

AIIB 지분율은 중국이 25∼30%로 가장 높으며, 한국은 3.5%의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 인도, 러시아, 독일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AIIB의 각국 분담금은 중국이 약 297억 달러로 가장 많고, 인도 84억 달러, 러시아 65억 달러, 독일 45억 달러, 한국 37억 달러 순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AIIB 역할론과 위상 변화

중국 주도로 설립되는 AIIB는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의 대항마로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를 견제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미국으로선 달러화 약세에다 AIIB의 등장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추락이 불가피하다. 영국, 독일 등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IIB에 참여한 것은 미국의 약화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국제금융계에서는 AIIB 등장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과도한 지배력과 영향력 행사를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본래 중국이 AIIB 자본금 1,000억 달러 가운데 절반을 분담(지분율 50%)하려는 계획이 대폭 수정됐다는 후문이다.

또한 AIIB의 향후 역할과 관련해 한국의 지분율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AIIB가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출범한 가운데 북한이 인프라 구축의 최우선 대상국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북핵 문제의 국제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러시아가 뒤늦게 AIIB에 참여한데는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특히 북한의 인프라 구축이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3국 연계 프로젝트와 맞물릴 경우 AIIB의 지원이 우선적으로 집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즉, 북한 인프라 구축이 북한에 머물지 않고 경원선(서울-원산)을 통해 남한-북한-러시아로 이어지는 교통망이 열리고 낙후된 극동지역을 3국이 공동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AIIB의 자금이 적극 활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주창한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내용과도 상당 부분 중첩된다. 유라시아이니셔티브는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이 밝힌 것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부분 중 하나는 남북한과 러시아 3국의 연결이다.

AIIB에서 한국의 역할 증대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줄일 수 있고, 점차 중요성이 높아가고 있는 동북아(극동)에서 중국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은 한국을 비롯한 미국, 러시아 입장에선 경계할 만한 현상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어떻게 운영되는가 하는 것은 군사ㆍ안보 이상으로 주변국에 중요한 문제다. 이는 한미정상회담에서 AIIB내 한국 역할론이 논의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때문에 메르스 사태로 박 대통령의 방미가 연기된 것은 '큰 선물'을 획득할 수도 있는 기회가 미뤄졌다는 점에서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