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수사 비리 연루 여·야 인사 4명 정조준… 정치권 '사정 광풍' 분다청와대, 정준양 전 회장 수사 등 기업비리 고강도 수사 주문 내막박근혜 대통령 "정·관·재계 개혁, 중국 시진핑 주석보다 더 세게 해야"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종착역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관련 수사는 1~2주 내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자원개발 비리 의혹 수사와 관련된 증거를 폐기·인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남기업 박준호 전 상무, 이용기 홍보부장 등 성 전회장 최측근 2명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일단 리스트와 관련해 직접 연결된 부분에 한해서는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외 경남기업 등 기업비리에 연루돼 있거나 경남기업 비리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일단 불씨는 계속 살아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이헌숙 부장판사 심리로 지난 24일 진행된 박 전 상무 등에 대한 세번째 공판에서 검찰 측은 "경남기업 관련 의혹 사건 수사를 통해 (정치권 금품 로비 등) 비자금 조성ㆍ사용 과정에 대한 박 전 상무 등의 관여 여부를 분명히 판단할 수 있는 시점 이후에 (구형)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시간을 1~2주 정도만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경남기업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며 "박 전 상무 등을 포함한 경남기업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가 계속 이뤄지고 있으며 입건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이 지난 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완종 리스트 새 불씨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여야 진영에서 2명씩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수사'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여권 주류와 비주류 각 1명씩 야권 2명 등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또 공교롭게도 검찰은 리스트 속에 있는 인사, 리스트에 없는 인사, 각 3명씩 조사를 하고 있어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향후 검찰이 정치권에 대한 수사 확대를 의식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수사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는 이야기다.

검찰 안팎에서는 리스트에 거명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조사를 끝으로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수사팀은 계속 성완종 리스트를 따라가고 있다. 검찰은 리스트 속 남은 인사와 경남기업 비리 관련 혐의자들에 대해 계속 조사할 계획이다. 또 서면조사로는 의혹 해소가 어려운 경우 추가로 소환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성완종 리스트에 직접 언급된 인사들과 그에 따른 의혹들은 일단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렇게 되면 리스트 속 8인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 그리고 경남기업 관계자 진술을 바탕으로 수사한 새누리당 대선캠프 관계자 김모(54)씨 등 3인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가 끝나게 된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공동대표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하기로 한데 대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최근 검찰이 경남기업 비리 의혹과 관련해 야권 인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검찰이 정치권 수사를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검찰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특별사면 관련 청탁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73)를 소환해 조사했다.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은 지난 24일 오전 노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25일 새벽까지 15시간에 걸쳐 조사했다. 수사팀은 노씨가 2007년 12월 31일 확정된 새해 특사 명단에 성 전 회장이 포함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고향 지인인 김모(60) 전 경남기업 상무를 통해 금품을 수수했는지를 조사했다.

검찰은 노씨를 2007년 말 특별사면 대가로 성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등)로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사팀은 특히 노씨가 현금뿐 아니라 경남기업 하청업체를 통해 수억원의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노씨가 업체 선정에 관여했는지, 이들 업체의 대표들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지를 집중 조사했다. 수사팀은 이들 업체가 최근까지 경남기업과 하청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노씨의 알선수재 혐의도 공소시효(7년)가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2년 5월 당시 공유수면 매립 허가 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창원지검에 출석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노씨 측 정재성 변호사는 "김씨의 소개로 성 전 회장을 두세 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청탁을 받거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사업상 특혜를 보거나 경남기업의 하청업체 선정에 관여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2012년 총선 때 성 전 회장에게 1,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불거진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도 검찰 조사 대상이다. 해외 출장 중인 이 의원은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기로 했다. 이 의원은 돈 받은 사실이 절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금품 수수 의혹 당사자인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검찰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의원은 2013년 5월 당 대표 경선 때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의원 측은 "검찰의 부당한 소환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당 지도부의 방침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다음 시나리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일단락을 내리고 정치권에 대한 비리 수사는 기존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야권으로 수사가 옮겨붙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검찰이 야권 인사들에 대한 내사를 이미 상당부분 진행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검찰의 출구전략 카드가 마땅치 않은 점도 정치권 수사 확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검찰이 명확하게 수사의 마무리를 선언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대검은 수사 결과발표와 함께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계획을 바탕으로 고민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의 반발이 적지 않아 아직 밝혀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수사는 계속한다는 입장을 내세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러나 두 달 가까이 달려온 수사팀에 쌓인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어 숨고르기를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검찰 화력이 집중돼 다른 부분에 대한 수사는 거의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이에 7월 휴가철 이후 정치권 수사와 기업수사를 병행할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선 중간수사결과 발표일자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부에선 이번 주 내에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이 조사 중인 부분이 아직 남아 있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경우에 따라 검찰이 수사결과발표를 더 미룰 수 있다는 말도 없지 않다.

수사팀은 리스트 의혹과 별개로 성 전 회장의 2007년 특별사면과정에 관여한 박성수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서면답변서를 제출 받아 분석 중이다.

2007년 12월 1차 사면대상자 명단에 없던 성 전 회장이 발표 직전 포함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누구였는지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수사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수사가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1일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수사가 매우 미흡하다고 규정, 특별검사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친박게이트대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책위 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따른 불법대선자금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 추진에 본격 나설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병헌 의원은 "이번 사건은 헌정사상 초유인 것은 물론 전 세계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통령 측근 실세들이 무더기로 연루된 사건"이라며 "그러나 검찰에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전 의원은 "검찰은 정치적 부담이 덜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만 포토라인에 앞세우는 것만 집중했다"면서 "그러나 불법대선자금 핵심에 대해서는 깃털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서둘러 수사를 끝내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해철 의원도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이번 수사에 명운 걸겠다는 검찰의 말에 일말의 기대를 갖고 지켜봤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였다"며 "검찰은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주고 증거 조작행위에도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 등 철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관영 의원은 "대통령이 처음부터 이번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얘기할 때 이미 수사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지난 4월 28일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특검 규모와 수사기간을 대폭 늘린 특검법을 발의한 바 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의 불법 자금 2억원을 수사하는 검찰이 2억원이 여당 관계자에게 전달된 시기도 특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에게서 수억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핵심인물을 집중 조사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본격적인 정치권 비리 수사에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불안 섞인 전망도 무성하다.

특히 검찰 안팎에서 '부정부패척결'이라는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정치권 인사들의 비리 의혹 수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엇보다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정치권 비리 수사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만큼 발판은 이미 마련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여권인사보다 야권 인사들의 비리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미 검찰이 2명 정도의 야권 인사 비리를 내사했으면 상당한 정황증거도 확보했다는 것이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야권 중진인 A씨와 친노계 인사 B씨다. 이들은 모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의혹과 불법 정치자금 조성 등의 의혹을 사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포스코 비리 등 기업비리와 관련된 인사들도 검찰이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굴지 대기업인 R사와 S사 비리 정황을 포착한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은 내사를 통해 여야권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이들에 대한 수사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인사들은 불만을 토로하면서 검찰 수사의 향배를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을 보강하고 정치인 수사 전담팀을 구성해 리스트에 오른 나머지 6명의 정치인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정치권 수사 확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인사들 중에도 포스코 KT 한전 MBC 등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이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 사정기관 주변에 무성하다.

특히 지난 정권의 핵심인사인 H씨 K씨 Y씨 L씨 등이 조사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 중 적으도 2명 이상은 소환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수사진을 재편성 하고 성 전 회장의 메모지에 이름을 올린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당시 박근혜 캠프의 핵심인사인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조사와 동시에 친이계 인사 C의원, D의원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주목을 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