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확 바꿀 '비책' 가시화…사정정국, 남북관계 대변화, 복지 현실화…탈당 카드도“구태정치 바꿔야”…국익보다 개인 앞세우는 정치(인) 손봐여야 불문하고 비리 연루 정치인 엄벌…사정정국 본격화 예상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충돌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당청 간 불신의 골이 깊게 패인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헤게모니를 두고 계파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면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당청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사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논란은 잠재된 친박(친박근혜)-비박 간 파워게임을 앞당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차기 대선의 바로미터가 될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양측의 대립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당내 기류는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 국정과 직결된다. 당 헤게모니를 친박-비박 중 어느 쪽이 거머쥐느냐에 따라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장을 장악하고 있는 비박계가 당을 이끌고 내년 총선에서 선전할 경우 박 대통령의 레임덕(집권말 권력누수 현상)은 기정사실화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친박계가 박 대통령과 함께 당청을 주도하면 임기 후반 국정이 순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어긋난 당 행보와 야권의 공세, 추락한 여론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성패도 달려 있다. 박 대통령은 국정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정치환경을 바꾸는 가운데 ‘복지 공약’ 현실화, 남북관계 새로운 전기 마련 등 임기 후반기를 ‘새로운 변화’를 모토로 강력하게 추진해 갈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를 맞고 있는 박 대통령이 내놓을 비장의 ‘승부수’를 추적했다.

"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야"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에게 둬야 함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회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중략)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각오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2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배경을 밝히면서 국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새누리당과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강하게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국회와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를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국익을 저버리고 대신 자기의 정치철학과 논리에 이용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전례없이 화를 낸 가장 큰 이유는 ‘배신의 정치’ 행태였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사사로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라고 박 대통령은 못박았다.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배신의 정치’라는 다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에 따르면 ‘배신의 정치’ 중 가장 큰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재원에 대해 정치인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사익을 꾀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친박’을 자처하며 신뢰를 쌓은 인사까지 사욕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충격과 함께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질타한 것은 그러한 구태정치를 향한 것이지 유승민 원내대표 개인을 지적한 게 아니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 있는 정치인은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에 따라 사정정국이 예고되는 셈이다. 실제 ‘성완종 수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그간 미뤄왔던 ‘사자방(4대강ㆍ자원외교ㆍ방위산업)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은 그러한 방증이다.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사자방 비리 의혹에 정ㆍ관ㆍ재계 인사들이 연루된 정황이 있어 사정정국이 본격화될 경우 정치권에 한바탕 폭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검찰을 포함한 사정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비리에 연루된 기업,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 등을 진행하고 있어 사정정국의 파고는 이전과 다르게 특히 정치권을 강타할 것으로 관측된다.

'복지 공약' 현실화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회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비판은 매우 직설적이었다. 한마디로 ‘돌직구’였다. 그러한 데는 박 대통과 유 원내대표와의 굴곡진 인연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은 2004년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을 때 초선인 유승민 의원을 대표 비서실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이후 2005년 유 의원이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구 동구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박 대통령은 그를 적극 도와 당선시킴으로써 유 의원이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데 일조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유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으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원조친박’의 핵심 인사가 됐다.

하지만 경선 패배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1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뒤 유 의원은 박 비대위원장의 행보를 공개 비판하는가 하면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도 반대하면서 ‘친박 핵심그룹’에서 멀어졌다.

유 원내대표는 올해 2월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지적하는 등 현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급기야 유 원내대표가 5월 29일 청와대가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 연금 개혁안과 함께 통과시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울 상황까지 치달았다.

박 대통령의 지인에 따르면 유 원내대표의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발언은 박 대통령을 크게 진노케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국정의 핵심으로 삼고 있고, ‘복지’를 북한에 까지 확대 실시하려는 복안을 갖고 있는데 유 원내대표가 실체를 모르고 정치적 공세를 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를 위한 재원을 순차적으로 현실화해 나가고 있는데 유 원내대표가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이 박 대통령 측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2010년 12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박근혜식 복지국가론’을 주창했다. 당시 행사는 사실상 박 대통령의 차기 대통령 출정식과 다름없었고, 이후 ‘복지’는 차기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고, 박근혜정부 국정의 핵심이 됐다. 박 대통령은 복지재원 확충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공약으로 ‘지하자금 양성화’를 내세웠다. 1992년 출범한 문민정부 이후 여러 정부에서 야심 차게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초한 것을 이행하겠다는 담대한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출범 초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ㆍ1552조원)의 24% 수준인 372조원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지하경제의 6% 정도만 양성화해도 매년 1조6,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 ‘지하자금 양성화’를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고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최근 사정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해 문제있는 재계와 개인 들에게 사정 압박을 높이는 것은 ‘지하자금 양성화’와도 관련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복지’와 ‘지하자금 양성화’를 현실화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국정의 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북관계 새로운 전기 마련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남북관계라는 게 청와대와 측근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도 상당 부분 박 대통의 뜻이 담겨 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이 이 여사 측을 통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따르면 이 여사 방북을 전후해 남북 교류의 걸림돌이 됐던 5ㆍ24 대북제재조치가 해제될 가능성이 높고, 이후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관측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소식통들 사이에도 나오고 있어 올해 중반부터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가까이는 경원선을 매개로 남북 교류가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에서도 남한의 뜻을 읽고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전해왔다.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는 국내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남북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면 박 대통령은 국정은 물론, 당청관계, 대야관계에도 주도권을 쥐게 될 수 있어 위기의 박근혜정부에 하나의 돌파구가 된다.

박 대통령 탈당 현실화될까

당청관계가 악화되면서 일각에선 박 대통령 탈당설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탈당 이후 친박 의원들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이 같은 시나리오들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친박 의원들 사이에는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영남권의 한 친박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새누리당은 더 이상 여당이 아니라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탈당을 결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친박계인 이장우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의 탈당설과 관련,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런 결정도 할 수 있다”면서 “원인을 제공했던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게 원활한 당청 관계를 위해 좋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대통령의 탈당설과 관련해 당청관계보다는 오래 묵은 정치판과 정치시스템을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실제 실현될 수 있는 시나리오라는 분석도 있다. 당에서 자유로와야 여야를 불문하고 사정과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박 대통령은 국회에 실망해 질타하는 발언을 했듯 탈당을 감행해 정치를 바꾸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측근은 전했다

만일 박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이 동반 탈당항 경우 여권발 정계개편이라는 핵폭풍이 불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탈당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떨어지며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정치권에 실망한 박 대통령이 ‘탈당’이라는 뜻밖의 카드를 꺼낼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위기의 박근혜정부에 하나의 돌파구가 된다면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