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업·포스코 수사 '빈 수레' 비난에 검찰 '출구 전략' 꿈틀

메르스 파문 소강국면 "황교안 총리 검찰에 메시지" 소문 돌아
향후 사정정국 비박·야권·기업비리 중 기업 비자금 우선 수사 예고
"전 정권 연결된 특혜 또는 비리 사정 대상" 일부 대기업 사정임박

정치권과 사정기관 주변에서 황교안 총리 주도의 사정정국을 두고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검찰 등 사정기관이 포스코ㆍ경남기업과 더불어 전 정권 때 이뤄진 여러 사업에 대한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들 사업과 관련해 특혜설이 불거졌던 기업들이 사정대상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청와대가 개혁을 필수과제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황 총리도 청와대의 이러한 뜻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향후 사정정국의 도래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가 추진해오던 부정부패척결 작업은 '성완종 리스트'와 더불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파문으로 여권과 청와대가 혼란에 빠지면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일단락됐고 메르스 파문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청와대와 사정기관에서 '사정 2라운드'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검찰은 추가 사정작업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장기화된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피로가 누적된 탓이다. 그렇다고 쉬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검찰 수사를 놓고 곳곳에서 비난여론이 커지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해 "빈껍데기만 주워들었을 뿐 알맹이는 다 놓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심지어 검찰의 수사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포스코 수사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는 포스코 수사의 장기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핵심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일부 잔챙이들만 잡아들이고 있다는 비판과 더불어 큰 사건 수사 때마다 압수수색 등 변죽만 울려놓고 빈손만 내밀기 일쑤인 검찰을 못 믿겠다는 여론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청와대와 검찰이 출구 전략을 짜고 있다는 말이 나도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현재 청와대와 검찰 공히 국민적 신뢰가 바닥권이다. 청와대가 추진한 국가개혁작업에서 검찰이 제대로 성과를 보이지 못한 탓에 여론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저점을 찍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 총리가 취임한 직후 박 대통령은 "향후 국가개혁작업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청와대의 절박한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황 총리는 검찰 조직을 정비함과 동시에 사정작업 지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진퇴양난 된 포스코 수사

포스코 비리 수사가 어디까지 갈지 정ㆍ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동양종합건설(이하 동양종건)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동양종건 배모 전 대표 소환해 조사한다.

검찰의 포스코 수사는 포스코건설 정동화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탄력을 잃는 듯했다. 이에 검찰은 보강조사를 통해 동양종건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동양종건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경우 포스코 수사의 불씨도 살아날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포스코 윗선의 비리를 밝힐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포스코는 역대 정권의 핵심 실세들이 운영에 깊게 관여해 왔기 때문에 윗선의 비리가 드러날 경우 이명박 정부 핵심 실세들의 연루 여부도 드러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이르면 오는 20일 안으로 배 전 대표를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3일 포스코의 인도사업 여러 건을 수주한 뒤 회사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횡령ㆍ배임 등)로 동양종건 포항 본사와 대구ㆍ울산ㆍ경기 성남 등지의 계열사, 배 전 대표의 집무실과 자택 등 6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또 같은 날 오후 성진지오텍 고가인수와 동양종건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포스코의 비리를 포착하고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3월 포스코건설 비자금 등 포스코와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검찰이 포스코본사를 직접 압수수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했어야 할 작업이 한참 늦어진 느낌"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종건에 대한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주춤했던 검찰수사도 새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포스코건설 비자금과 달리 성진지오텍 고가인수와 동양종건 비리의 경우 포스코, 그리고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과 직접 연관이 있다.

검찰이 정 전 회장이 직접 연루된 사안에 대해 조사에 나선 만큼 정 전 회장에 대한 소환도 멀지 않았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 수사와 관련 검찰 주변에 "검찰 수사가 벽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포스코에 대한 수사가 4개월째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진행상황과 지금까지의 결과물이 부실한 탓이다.

검찰은 하부조직에서부터 수위를 높여가는 이른바 '저인망식' 수사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핵심을 향해 다가가지 못하는 '겉핥기식' 수사만 반복하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건의 핵심이 정 전 회장임에도 그를 직접 겨냥하지 않고 주변만 맴도는 인상을 줘왔다. 뿐만 아니라 수사 초기부터 수사기밀이 포스코에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정 전 회장에 대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접근계획 조차 수립돼 있지 않았다.

이에 일부에서는 "환부만 도려내는 속전속결식 수사도 제대로 안 되는데다 수사의 장기화로 포스코의 기업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형국"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경제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포스코 비리를 캐내기 위해 포스코를 비롯한 그 계열사와 거래한 주변 관계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협력업체들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들추고 있어 소규모 업체들의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검찰이 계륵을 들고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어린 시각을 보낸다. 말하자면 결국 수사는 포스코 비리와 관련된 여권 인사들을 조사하는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단 잡고보자식의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소리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포스코 수사를 결국 정 전 회장과 전 정권 핵심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로 실추된 신뢰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검찰이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포스코에 대한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운 것도 그 같은 배경에서다. 포스코 수사마저 결과물이 미진할 경우 향후 국가개혁작업이 사실상 무산될 것이 자명한 까닭이다.

기업수사 확대 임박설 증폭

검찰의 대기업 비리 수사의 칼날이 롯데와 신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에 재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유통업계 전반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롯데쇼핑과 신세계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과 업계에서는 이미 수사가 시작됐다는 말이 무성하다.

사정기관 소식통에 따르면 신세계와 롯데 등 일부 기업이 검찰의 비자금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 정권 수혜기업으로 알려진 롯데에 강도 높은 사정이 이뤄질지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김영기)는 2011~2012년 롯데쇼핑 본사에서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시네마의 사업본부로 사용처가 불분명한 거액의 자금이 흘러간 사실을 확인하고 자금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 조사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롯데의 계좌흐름에 대해 사용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기면서 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롯데쇼핑이 직원의 계좌를 거쳐 현금화한 후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고, 롯데쇼핑 임직원들의 계좌내역을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롯데쇼핑 본사 및 각 사업본부의 자금 담당 임직원 5명을 소환해 문제의 자금을 주고받은 이유와 사용처를 조사했다.

이에 대해 롯데측은 "검찰이 이 부분을 조사했지만 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모든 것을 검찰에 충분히 소명했고 올 초 FIU에서 검찰에 사용처 확인을 의뢰한 내용에 대해 이동 자금은 신입사원 면접비 지급, 부서 회식비, 교통비 등 업무 활동비로 정당한 목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명했다.

계열사간 자금의 유입 및 유출된 사실이 없고 비자금 조성 의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에 대한 수사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고 추가 의심사항에 대해 곧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어서 롯데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도 신세계 총수 일가의 계좌를 추적하는 등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는 그룹 계열사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물품 거래 대신 현금화해 총수 일가 계좌에 일부 입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1차로 70억 원 가량에서 비정상적인 흐름을 찾아냈고 이 중 상당 부분이 총수 일가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 측의 설명도 롯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세계 측은 "3~4년간 경조사비와 격려금, 현금성 경비 명목으로 60~7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비자금과는 무관하다"며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다 소명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와 검찰은 롯데와 신세계가 유통업계 등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수사를 조심스럽게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사정이 장기 불황으로 침체된 유통 시장에 더 큰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 탓이다.

신세계에 대한 수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무성하다. 이마트가 신세계그룹에서 분할된 뒤 처음으로 세무조사를 받았다.

신세계 관계자는 "서울지방국세청이 현재 이마트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했다"면서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 최근 기업을 상대로 한 통상적인 세무조사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 주체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인 점이 주목을 끈다. 조사 4국은 탈세ㆍ비자금 등 비리 여부를 살피기 위한 조사국인 점을 감안하면 통상적인 세무조사는 아닐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마트 조사에서 조사 4국 수십명이 나와 회계ㆍ세무 관련 자료를 챙겨갔다. 이는 전례에 비춰 탈세나 계열사 부당지원, 비자금 조성 등과 관련된 혐의를 확인하는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작년 말과 올해 초 신세계는 검찰로부터 미심쩍은 금융거래에 대한 조사를 받고 해명한 적이 있는데 이 조사의 연장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시 검찰은 신세계가 그룹 계열사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수표를 물품거래에 정상적으로 쓰지 않고 현금화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게 대림산업과 GS건설이 하도급 업체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포스코건설과 거래 회사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대림산업과 GS건설의 비자금 조성 자료 등을 확보했으며 포스코 비리 수사를 마치는 대로 두 건설사의 비리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최근 포스코건설 하도급 업체인 흥우산업 사무실과 임직원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흥우산업이 포스코건설뿐 아니라 대림산업·GS건설과도 하도급 거래를 하면서 대기업들의 비자금 조성을 도와준 내역 등이 담긴 자료를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흥우산업이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고속도로 건설 공사에 하도급업체로 참여해 4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준 혐의로 흥우산업 부사장 우모(58)씨를 구속기소했었다. 당시 흥우산업이 하도급 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포스코건설 임원들에게 수억원의 뒷돈을 준 혐의도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검찰은 흥우산업이 포스코건설 비리처럼 국내외에서 벌어진 공사의 대금을 부풀려 받았다가 나중에 되돌려주는 수법으로 대림산업과 GS건설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고, 이들 기업 임원들에게 뒷돈을 상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정당국은 흥우산업이 관여한 대림산업과 GS건설의 비자금 규모가 포스코건설 비자금 40억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대림산업 측은 "흥우산업이 여러 차례 우리 쪽 공사를 한 것은 맞지만 비자금 조성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GS건설 관계자도 "비자금은 전혀 알지 못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