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 확 바꾼다"… '신당설' 꿈틀비리 정황 친박·비박 모두에 실망대선 겨냥 여야 뛰어넘는 신당 모색설

9일 청와대 회의를 주재하러 가는 박 대통령 모습.
'유승민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당청 간 불협화음은 당분간 잦아들 전망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 나아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고, 언제든 재점화할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국정운영에 동력을 얻고 대통령이라는 '현재권력'의 힘을 보여주었지만 적잖은 내상도 입었다는 분석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 과정이 당청 간 정치싸움으로 비쳐지고 대통령이 '전제적 권력'을 사용한 듯한 인상을 주면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점이다. 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론에 일희일비 않고 종래 추진해온 정치권 개혁을 '유승민 사태'를 계기로 앞당겨 실행할 것으로 전해진다. 그 범주는 단순히 당청관계, 대(對)국회 차원이 아니라 정치판을 새롭게 짜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몇몇 인사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정치권 개혁 구상은 오래전에 마련됐고, 그 실행 방안을 고민해오던 터에 국회법 개정 논란이 속도를 내게 했다는 전언이다.

이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권 개혁에 나서기로 한 것은 여야, 친박(친박근혜)ㆍ비박을 막론하고 상당수 정치인이 비리(부도덕)에 연루된 정황을 확인한 게 결정적 배경이 됐다고 한다. '유승민 사태'는 차후 문제이고,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거론한 것도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게 측근 인사의 설명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정치권 개혁은 정치판을 확 바꿀 정도의 큰 폭이 될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이 과정에 비리 정치인은 예외없이 처벌하고, 박 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창당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다는 정치권 개혁의 밑그림을 추적했다.

"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야"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에게 둬야 함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를 위해 국회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중략)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각오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 2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배경을 밝히면서 국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새누리당과 유승민 원내대표까지 강하게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국회와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를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국익을 저버리고 대신 자기의 정치철학과 논리에 이용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전례없이 화를 낸 가장 큰 이유는 '배신의 정치' 행태였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사사로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정치라고 박 대통령은 못박았다.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배신의 정치'라는 다소 과격한 용어를 사용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에 따르면 '배신의 정치'의 대표적인 예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재원 등에 대해 정치인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사욕을 꾀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오랫동안 '친박'을 자처하며 신뢰를 쌓아온 인사까지 사욕을 부린 것을 확인하고 충격과 함께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을 질타한 것은 그러한 구태정치를 향한 것이지 유승민 원내대표 개인을 지적한 게 아니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 있는 정치인은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에 따라 사정정국이 예고되는 셈이다. 최근 검ㆍ경의 강도 높은 정재계 사정은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는 게 측근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박 대통령 실망한 것은 '정치권 사욕'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과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둬 온 국정을 든다면 '복지'와 '남북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국정에는 상당한 예산과 재원이 소요된다.

박 대통령은 2010년 12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박근혜식 복지국가론'을 주창하면서 사실상 차기 대통령 출정식을 가졌다. 이후 '복지'는 차기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정부 국정의 핵심이 됐다. 박 대통령은 복지재원 확충과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공약으로 '지하자금 양성화'를 내세웠다. 1992년 출범한 문민정부 이후 여러 정부에서 야심 차게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초한 것을 이행하겠다는 담대한 공약이었다. 실제 '지하자금 양성화'가 현실화되면 '증세 없는 복지'도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 원내대표는 올해 2월 첫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지적하는 등 현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급기야 유 원내대표가 5월 29일 청와대가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 연금 개혁안과 함께 통과시키면서 박 대통령을 크게 진노케 했다는 후문이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복지 재원을 상당 부분 마련했고 계속 충원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은 시기를 조절해 그 같은 사실을 공표하고 복지공약을 실천할 계획이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복지 재원과 충원 과정을 알게 된 정치권 인사들이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할 '재원'에 사욕을 부리면서 복지 이행도 미뤄졌다는 것이다. 한 측근 인사는 "그 중에는 친박 중진들도 포함돼 있어 박 대통령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또한 박 대통령이 역점을 둬온 최우선 국정과제다. 박 대통령은 작년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를 주창하고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실행하고 있으며, 스스로 통일준비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남북통일에 전력하고 있다. 또한 남북통일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도 상당한 준비를 해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인사들이 이 부분에도 사욕을 드러내 박 대통령이 크게 분노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전력하고 있는 복지ㆍ남북통일 등의 국정에 정치권 인사들이 사심을 내면서 그들과 결별하고 임기 후반기를 새로운 정치세력과 함께할 것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박 대통령이 정치판을 새롭게 짜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박 대통령 탈당설, 신당창당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탈당ㆍ신당설' 현실화 되나

박 대통령의 탈당, 또는 신당 창당과 관련해 정치권에선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론 2003년 노무현정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위세력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이 창당됐던 사례가 있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탈당ㆍ신당설'시나리오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친박계가 연쇄 탈당을 통해 신당을 만들고, 박 대통령이 신당에 결합하는 것으로 그려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권 분열을 감수하는 것은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만한 사안이고, 친박계 내에 마땅한 차기 대권 주자가 없어 구심점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당장 내년이 총선인 것도 결행에 걸림돌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탈당 운운하는 것은 모두 소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탈당, 또는 신당 창당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오로지 '국민'을 생각하고 정치권의 부패를 일소하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고 신망있는 인사들로 신당 창당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황교안 총리 취임과 함께 정재계에 강도 높은 사정을 추진하는 것이 탈당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여야를 가지리 않고 사정을 실효성 있게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신당 구심점과 관련해선 차기 대선과 연계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사들이 우선적으로거론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황교안 총리, 청렴한 중진 정치인, 시민단체 지도자 등이다.

'유승민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