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법 위반ㆍ뇌물 수수ㆍ증거 은닉 혐의박 의원 자수서 제출로 수사 급물살분양사 I사·前 경기도 의원·박 의원 동생 연루I사 최고 고객 D건설…수사 대상 오를 수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된 민주당의 사무총장, 원내대표를 지낸 3선 중진 박기춘(59·경기 남양주시을) 의원이 검찰의 사정권에 올랐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 수수, 증거 은닉 혐의다. 박 의원은 혐의의 상당 부분을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증언과 물증이 박 의원에게 불리하게 옥죄고 있다.

<주간한국>은 지난 제2581호(6월 16일자 발행) ‘검찰 분양대행·폐기물업체 압수수색 내막’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의원이 분양대행업체로부터 수차례 금품을 수수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당시 기사에서 야당 중진 A의원은 다름아닌 박 의원이다.

검찰은 9일 분양대행업체 I사 김모(44) 대표로부터 “박 의원을 국회에서 수차례 만나 금품을 줬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20일 박 의원의 뇌물 은닉을 도왔던 정모(51) 전 경기도 의원이 구속기소 되자 같은 날 박 의원은 검찰에 혐의를 인정했다.

박 의원에게 수년간 4억원을 헌납한 I사 김대표, 현금 전달자인 박 의원 동생 박모씨, 증거 은닉에 가담한 정 전 의원, 정치적 외압 의혹을 받는 대기업 D건설 등을 둘러싼 박 의원과의 관계를 살펴봤다.

박기춘 의원, 자수서 제출

박기춘 의원은 20일 “(김 대표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를 대체로 시인한다”는 내용의 자수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다만 김 대표로부터 받은 시계 7점과 가방 2점 그리고 현금 2억원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파악한 4억원보다 적은 액수를 주장하고 있다.

박 의원이 혐의를 인정한 것은 자수를 통해 감형받고자 하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박 의원은 지난달 5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본인 사무실에서 친분이 있는 정 전 의원에게 시계와 가방을 되돌려주라며 증거 인멸을 시도했으나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박 의원이 정 전 의원에게 “지문을 지우고 계속 보관해 온 것처럼 해달라”고 말한 단서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김 대표로부터 받은 현금 2억원도 정 전 의원에게 5,000만원을 빌려 1억9,000만원을 급하게 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김 대표는 지난달 20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박 의원의 수족 노릇을 하다시피한정 전 의원은 20일 증거 은닉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박 의원의 동생인 박씨는 10일 참고인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박 의원의 혐의가 모두 밝혀지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 및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뒷돈ㆍ뇌물ㆍ외압 의혹에 선 박기춘

검찰에 따르면 박 의원과 김 대표의 뇌물 수수 관계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가 2007년 인터넷카페를 통해 미분양아파트 분양대행업을 시작했을 당시 박 의원이 지역 현안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2008년 I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분양대행업에 뛰어들었다. 직원 2명의 작은 회사로 시작한 I사는 단기간에 대형사로 발전했다. 2008년 박 의원의 지역구인 남양주에서 진접지구 미분양 아파트 분양 대행을 맡으며 규모를 키웠고 2011년 D건설의 분양을 수주하며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의원과 박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히 박씨는 I사의 임원으로서 수주 알선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왔다. 박씨는 관련 업계에서 유명인사로 통한다. 이미 2010년과 지난해 남양주 택지 개발과 부지매입허가 로비로 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검찰은 지난달 2일 I사와 김 대표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그 결과 김 대표가 회삿돈 45억원을 횡령했고 일부를 박 의원 형제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했다. 같은 날 박씨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이어 박씨의 딸 계좌에서 김 대표 명의로 2억5,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정 전 의원은 1994년 박 의원과 제4대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후 제5대 경기도의회에서도 연이어 함께 일하며 박 의원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인 박씨와도 돈독한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의 ‘박 형제 사랑’은 수사 과정 중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정 전 의원은 지난달 9일 박 의원을 대신해 서울 송파구에서 박 의원이 김 대표로부터 받은 시계와 현금 1억9,000만원을 담은 루이비통 가방을 김 대표에게 되돌려줬다.

지난달 13일에는 박 의원이 김 대표에게 받은 것으로 보이는 안마의자를 자신의 집에 숨겼다. 뿐만 아니라 자택에 보관 중이던 서류를 없애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해당 문서에는 김 대표와 박씨의 현금 거래 내역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I사-D건설의 불편한 관계

I사는 2011년 12월 D건설이 시공하는 부산의 고급 주거시설의 분양대행을 수주받으며 D건설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D건설과의 거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최근까지 5,000여 세대의 분양대행권을 수주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I사와 D건설의 관계에 박 의원의 외압이 작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의원은 2008년 건설교통위원회(현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를 시작으로 국토위 위원, 현재 국토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내 건설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20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I사는 수사와 관련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I사의 홍보 담당자는 “검찰 수사 부분이라 말씀 드릴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D건설 또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D건설 측은 “I사를 (대행업체로) 쓴 적은 있지만 D건설에서 선정한 분양대행사 중 하나일 뿐”이라며 “D건설은 박기춘 의원과는 전혀 관계없다. I사와 박 의원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윤소영 기자 ysy@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