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중심의 실질적 민치주의 - 정부ㆍ당, 여야 상생정치에 적합

지난 8월 25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후반은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와 중국 순방의 외교 성과 등에 힘입어 안정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지지율도 50%를 넘어 취임 초 허니문 랠리(Honeymoon Rally)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계속된다면 여당 구도의 안정된 정권이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당청 관계가 친박, 비박의 벽을 넘은 대승적 자세 정립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일회성 이벤트나 몇몇 업적으로 인기에 편승하기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국민의 대망에 부응하면서 거국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역사적 국정을 수행해야 함은 물론 나아가 확고하고 지속 가능한 민주정치 시스템과 제도적 정치 개혁이 안착돼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 전반은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형 악재가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박 대통령 임기 전반 한국 사회에서는 ‘소통(communication)’과 ‘리더십(leadership)’ 이 화두처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는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과정과 관련이 있지만 실은 구조적으로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과 역할이 집중된 현 통치구조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가 국민통합과 사회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이 또한 한국의 권력구조와 직결돼 있다.

‘승자독식’(Winners take all), 패자완멸(The defeated lose all) 의 현 대통령제에서 여야는 ‘사생결단’의 대결로 가는 ‘반대원칙 논리’가 불가피하다. 민주정치는 타협의 예술이요, 현대 민주정치는 정당정치가 그의 꽃인데 우리정치는 그 양대 요소를 불가능케 하고 있다.

한국 정치권에서 개정 국회법, 연금법, 노동개혁법 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보인 이면에는 법에 대한 견해차도 있지만 여론을 자당에 유리하게 형성해 궁극적으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기반 마련이라는 ‘권력투쟁’의 측면이 우선적으로 작용한 것도 현실적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성공한 나라는 그의 창시국인 미국 뿐이다. 여타 국가는 ‘대통령 왕정제’라 해야 할 것이다.

한국만 해도 ‘청와궁(BLUE PALACE)’ 에 의한 ‘세련된 절대군주제(Sophisticated Absolute Monarchism)’ 양상을 보여 왔다.

한국에서 청와대 중심의 통치는 4ㆍ19 직후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시대를 제외하고 이승만 대통령 시대를 기원으로 박정희 시대 18년, 노태후 시대까지 장장 34년간 청와궁 통치가 강화돼 왔다.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문민 정부 시대가 계속됐지만 현재까지 청와궁 정치가 연장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정부(각료)는 ‘시녀’와 다름없어 청와궁의 ‘훈령’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고, ‘대통령 제왕 왕궁’(Presidential Palace) 통치 아래 인사, 재정, 금융, 구속, 기소, 석방, 그리고 사실상의 입법권 까지 3권 통합의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정치는 현재와 같은 대통령제에서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승자독식의 정치는 군소정당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나 타협을 민주정치의 원리로 수용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자주 보는 우리식 대통령중심제도의 당연현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당(창와궁 둘러리)은 절대 대통령에 부응해야 하고 야당은 무조건의 반대속성으로 대결해 현대정치의 필수조건인 정당정치는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대통령제, 미국 대통령제(중심제)는 본래 1787년 미국 탄생과 함께 (인류)정치문명에 처음 출현한 'PRESIDENTIAL SYSTEM OF GOVERMENT'를 일컫는 것으로 '국무의회의장제' 혹은 '국무회의 수반제' 등으로 번역됐어야 했다. 즉 그와같은 민주주의 어휘였어야 '왕정제도'를 배척한 '공화제도'를 충실히 표현하는 의역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 문헌에 잘못된 기원으로 '대통령'이라는 비민주적 어휘를 사용함으로 인해 속칭 '나랏님', 심지어 '대통령 통치'라는 단어와 그 개념까지 우리땅에 토착된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대로부터 닉슨 대통령 때까지 ‘백악관 중심정치’ 가 일시 활발했을뿐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로 부터는 정부(각료)의 정상정치를 회복해 내각책임제를 방불케 하는 ‘의회정치’를 행하고 있다. 정치의 핵심인 ‘인사’와 ‘재정’을 의회주도로 행하고 있는 미국이기에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의 귀감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의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행정부의 수반권마저 독점해 입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가 하면, 일단 당선되면 헌법상 명기된 임기가 보장되며, 국민은 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현실적으로 물을 수가 없게 된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확정돼 있고 상호간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상호 견제와 균형’(Checks & Balance)을 유지해야 하지만 대통령을 상대로는 제구실을 못하기가 일쑤다.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소추(Impeachment)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이 불가능하며, 여대야소에서는 생각조차 못한다.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곤 하며, 그 반대로 여대야소가 되면 국회는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해 그의 독주, 횡포가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국회와 정부가 공동연대책임은 고사하고 국가운영의 효율을 위해 절실한 기능상의 협력관계가 대립 항존의 체제로 변해 국정이 마비되거나 아니면 제왕적 독제대통령제가 돼 민주주의는 질식하고 만다. 이러한 전례는 우리의 역사에서, 또 후진국 대통령제에서 수없이 목도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각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은 직선이든 간선이든 국가수반이라는 권좌만 가지고 있어 권한 행사의 ‘과잉성(권력전횡)’이 크게 제약돼 있다. 내각책임제는 행정부와 입법부(과반수의 여당이나 연립당)가 ‘상호절대협력관계’에 있게 되며 두 부처의 공동책임 협력체제로 돼 있어 제도의 기능과 효율 양면으로 장점을 갖고 있다. 더욱이 현대사회에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대표하는 군소정당들도 연립의 다수국회나 연립내각에 동참해 소수의 주권도 대변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선진국 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내각책임제는 과거 치명적 결점인 불신임안의 개인적 남발을 제거하고 ‘연서 발의제’ 도입 등으로 거의 완벽하게 보완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는 소위 ‘건설적 내각제’를 채택해 불신임안을 제기할 경우 동시에 새 정권의 총리를 지명토록 하는 등 오늘날 민주정치의 2대 요소인 ‘안정성’과 ‘효율적 기능성’ 모두를 보장하고 있다. 즉 국민이 항시 참여 감독해 국회를 통한 정부에 대한 책임통제를 함으로써 정부는 국회의 연장권(공동체)이 된다. 즉 (직선 혹은 간선) 대통령과 (간선)총리의 분권제가 균형을 이루면서 국정을 수행한다.

또한 내각책임제는 ‘신축성’과 ‘융통성’(민주주의 윤활유)이 있어 이원집정제 및 ‘분권제’ 등이 파생하고 입헌민주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국부’, 나라 살림의 총책인 총리는 ‘국모’격이 된다. 그 기본적 차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국민 앞에 ‘정부행위’의 “책임제”와 “무책임제”로 귀결된다.

즉 대통령제는 사실상 ‘대통령 무책임제’ 가 되며 내각책임제는 ‘국회/정부 책임제’가 된다

다시말해 국회와 정부는 국민 앞에 공동책임을 지게 되며 국민은 ‘불신임안 가동’과 이에 따른 ‘국회 해체’ 및 ‘재선투표권’이라는 ‘회초리’로 늘 감시감독하며 직간접으로 동참하는 명실공히 ‘주권재민’의 참여민주주의, 즉 ‘민치주의’가 실현된다.

현 한국제도(대통령중심제) 아래서는 국민과 정부, 정권이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별거ㆍ 이혼’ 상태인데 반해 의원내각제(내각책임제)에서는 국민과 정부, 정권의 관계가 항상 ‘동거 관계’가 된다.

민치주의의 종단인 내각책임제에 높은 문화와 경제 수준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상식이다. 남미 브라질에서도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해 내각책임제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원인이 수준 미달이었던 국민의 정치 민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정치 민도와 민주주의 쟁취 과정을 통찰해 보면 내각제가 충분히 가능하다. 수천년을 걸쳐온 군주주의와 관치문화에 푹 젖은 국민정서가 짙게 깔렸다 하지만 격동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초고속 첨단 산업문화를 이룩해온 높은 교육 수준의 민족으로 오늘날 서구문명이 성공리에 향유하고 있는 내각책임제를 이제 도입할만한 민주문화민도에 도달했다고 믿는다.

<김홍기 박사 프로필>

법학박사, 변호사

상파울로 샌프란시스코 법대졸업 - 상파울로 주립대 법학대학원 박사 (정치법/ 국가경제법)

러시아연방 사하공화국 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세계한인변호사협회 명예회장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자문위원

세계한인정치인 협의회 고문

UN-NGO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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