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ㆍ대선 앞두고 '주도권' 전쟁… 친박-비박 갈등 속 '전면전' 조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 청와대를 방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김 전쟁' 핵심은 당 주도권… '친박·청와대-비박' 충돌
내년 총선 좌우할 '공천 문제'에 김무성 '안심번호제' 승부수
친박·청와대 안심번호제 반대… 김무성 공격에' 朴心'배후론
김무성 '우선 추천제'로 후퇴하면서 비박·중도 일방 지지 유보
'박-김 전쟁' 2R 본격화… 검찰 고강도 사정설에 정치권 긴장

'9ㆍ28 무대의 반란'으로 일컬어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승부수는 '절반의 성공'이란 평가와 함께 현재 휴전 상태에 있다.

당 주류의 리더이자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인 김 대표는 9월 28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공동 제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안심번호제)로 정국의 중심에 섰다. 공천룰에 대한 논란을 떠나 김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했고 대권 행보에도 힘이 실리는 듯했다. 당 안팎에선 "무대(무성 대장) 답다"는 얘기가 회자됐다. 미래권력인 김 대표가 현재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박근혜-김무성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실 김 대표가 꺼낸 안심번호제는 내년 4월 총선과 동시에 대권을 향한 '승부수'와 다름없다. 총선 공천에서 청와대 입김을 차단하고 총선에서 승리하면 '김무성 대세론'이 형성돼 대권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초기 김 대표의 승부수는 통하는 듯했다. 친박(친 박근혜)의 반발과 청와대의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당 주류인 비박(비박근혜)의 옹호와 지지 여론에 힘입어 김 대표는 뚝심있게 나아갔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공천제도’등에 대해 언쟁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뜻(朴心)이 실린 경고음이 커지고 친박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김 대표는 한발 물러섰다. 친박의 잇따른 공세에 김 대표가 공천 원칙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자 비박ㆍ중도계의 시선이 흔들렸다. 일방적으로 김 대표를 지지하는 데서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정가 안팎에선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朴-金 전쟁' 이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2라운드 전쟁 때는 처음과는 달리 박 대통령 측에서 공세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대표의 대권행보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박-김 전쟁' 2라운드의 전후를 짚어봤다.

'박-김 전쟁' 1라운드 배경과 과정

9월 28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부산 롯데호텔에서 전격 회동한 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발표했을 때 여권 일각에선 이를 '9ㆍ28 서울수복'에 빚대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하게 당을 장악(탈환)하고 대권 행보도 북진(北進)처럼 힘있게 추진해 갈 것이라는 전망에서였다.

사실 여야 대표가 실시하기로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여야의 유력한 잠룡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안심번호제는 탄력받을 수 있다. 나아가 당을 확실하게 자기세력화해 대선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런 안심번호제는 여당 김무성 대표와 야당 문재인 대표가 연대 전선을 편 것으로 '반(反) 박근혜' 프레임으로 연결돼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선 총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대선에서는 박 대통령을 넘어서려는 것이고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을 무력화해 대권 재도전의 목표를 이루려 한다.

김 대표는 안심번호제로 총선 공천에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현역이나 지난 총선에서 공천 학살로 피해를 본 지명도 높은 친이ㆍ비박 인사들이 총선을 통해 20대 국회에 대거 입성하게 되면 김 대표에겐 큰 힘, 큰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이들은 '김무성 대세론'의 기반을 이루고 김 대표의 대권가도에 힘을 싣게 된다.

이는 박 대통령을 위협하는 요인이고 '레임덕(권력 누수)'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청와대와 친박이 안심번호제를 반대하고 김 대표를 공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친박과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제7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달 30일을 전후해 전면전에 나섰다. '박-김 전쟁'의 1라운드가 본격화한 것이다. 친박의 한 중진 의원은 "안심번호제는 총선 전 박 대통령의 손발을 묶어 놓고 총선 후엔 박 대통령을 무시하고 대권행보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박 대통령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으로 국내에 부재 중인 상황에서, 야당 대표와 전격적으로 안심번호제에 합의한 것에 분노했다.

지난달 29일 김 대표가 소집한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범 친박계인 김태호ㆍ이인제 최고위원 등이 사실상 '보이콧'했다. 다음날 30일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안심번호제의 5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의총에서 김 대표는 "당 대표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며 청와대에 경고장을 던지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의총 직후엔 "전략공천은 없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김 대표는 참석이 예정됐던 '국군의 날' 기념식과 부산국제영화제에 불참하며 강수를 이어갔다. 박 대통령에게 굽히지 않고 '대놓고' 한 판 붙어보자는 식이었다. 이는 지난해 10월 상하이발 개헌 언급과 올해 5월 유승민 파동 때 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인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김 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강대강(强對强)으로 치닫던 '박-김 전쟁'은 김 대표 측과 청와대 간에 물밑 교섭을 통해 김 대표가 안심번호제를 100% 고집하지 않고 청와대도 '낙하산 공천' 의지가 없다는 쪽으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김 대표로서는 궁극적인 대권을 위해 일단 '살아있는 권력'과 타협한 모습이고 박 대통령 역시 당청 갈등에서 벗어나 국정 현안인 4대 개혁, 통일 문제 등에 전력하기 위해 한발 물러난 것이다. 따라서 '박-김 전쟁'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둔 셈이다.

'김무성 위기' 해법은 무엇?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 친박을 대표하는 서청원 최고위원과 김무성 대표 간에 얼굴을 붉히고 고성이 오가는 등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공천제도'를 놓고 발언을 하던 중 서 최고위원이 "김 대표가 언론플레이를 너무 자주 한다"고 말하자 김 대표는 즉각 "그런 이야기 그만하라"고 반발했다. 이에 아랑곳 않고 서 최고위원은 "앞으로 조심하라. 그렇게 하면 점점 어려워진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당 대변인이 서둘러 회의를 비공개 전환하고 나서야 양측은 설전을 멈췄다.

이날 청와대는 민경욱 대변인과 박종준 경호실 차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했으며, 나머지 참모들의 총선출마는 없다고 발표했다. 당내, 당청 간 공천 갈등을 그만 멈추자는 취지였다. 박 대통령은 이미 '휴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에선 '확전'을 선포한 것이다.

이런 '엇박자'는 친박뿐만 아니라 비박에서도 나타났다. 비박은 김무성 대표가 더 강하게 청와대ㆍ친박을 압박해줄 것을 기대하는데 김 대표는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총선이 걸린 공천룰에 대해 김 대표와 측근들은 "과거와 같은 전략공천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비박계와 중도 의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김 대표가 처음에는 100% 오픈프라이머리에서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로, 다시 우선 추천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사실상 전략공천을 일부 수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비박계 한 의원은 "김 대표가 주류였던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을 꺾고 대표에 당선 된 것도 '공천권을 휘두르지 않겠다'는 공약 때문인데, 이를 제대로 지킬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 김학용 비서실장은 "우선 추천 지역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하는 것"이라며 "전략공천은 없다, 공천권을 특정한 권력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두 원칙은 분명히 살아 있고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비박계와 중도 의원으로부터 예전 같은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인상이다. 비박계 수도권의 한 의원은 "비박계 의원들 대다수는 여전히 김 대표를 도울 의사를 갖고 있지만, 문제는 김 대표가 이들에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비박을 중심으로 김 대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 일각에선 김 대표가 흐트러진 당심을 모으고 비박계를 결집하기 위해 친박과 청와대를 향해 '강수'를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의 최대 원군은 비박계를 중심으로 한 당심인데 이것부터 잡아야 한다"며 "친박ㆍ청와대와의 파워게임도 당심이 가장 큰 배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박계 영남 중진 의원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마음(朴心)을 얻기가 쉽지 않은 만큼 당을 확실히 장악하고 다수 의원들의 지지를 얻는 게 급선무"라며 "당과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 박 대통령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 박 대통령과의 갈등이 불가피한 만큼 '이길 수 있는 무기', 즉 당심과 여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김 전쟁' 2라운드 점화되나

친박은 김무성 대표가 공천룰과 관련해 후퇴 움직임을 보이자 적극 공세를 펴고 있다. 김 대표가 수용한 '우선 추천제'와 관련해 사실상 전략공천을 수용한 것이라며 김 대표와 비박을 압박하고 있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우선추천 지역은 어디든지 될 수도, 안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어느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김 대표가 강조한 '전략공천은 없다'는 발언은 '공수표'라는 지적이다.

친박은 내년 총선에서 최대한 의석을 확보하는 한편, 대선에서는 주도권을 쥐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김 대표 측은 청와대 중심의 전략공천을 최대한 막고 총선에서 비박 의원을 압도적으로 당선시켜 '김무성 대세론'으로 차기 대선을 밀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김 대표가 충돌할 수박에 없다고 본다. 그 시발점은 총선이고 점차 격화되는 친박ㆍ비박 간 공천룰 다툼은 '박-김 전쟁' 2라운드의 막이 올랐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박 대통령 또한 내년 총선이 차기 대선과 직결되고 대선이 임기 후반 국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당내 친박ㆍ비박 힘겨루기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김 대표와의 관계설정도 신경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김 전쟁' 2라운드의 최대 충돌 지점은 '당 주도권'이다. 당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총선은 물론 대선의 향방이 달라진다.

김 대표 측은 '당심'과 '여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 의원들 사이에선 자신들이 직접 뽑은 김 대표마저 제2의 유승민으로 만들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고 여권에서 김 대표 만한 대선 후보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박 대통령이 집권당 대표처럼 지나치게 간섭하는데 의원들의 불만이 높고 박 대통령을 믿고 설쳐대는 친박 의원들도 성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김 대표가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1년 가까이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라는 평이다. 대선 여론조사 결과가 비박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동인이라고 김 대표 측은 강조한다.

반면 친박은 당심과 여론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장 공천 문제만 해도 김 대표가 소신을 꺽고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박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본다. 대선 후보 지지율과 관련해서도 수도권의 한 친박 의원은 "김 대표가 여러 후보 중 1위이지만 야권 후보를 종합하면 큰 차이로 뒤진다"며 오히려 '불안한 후보'라고 평했다. 친박은 공공연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해 김 대표에 맞불을 놓으면서 당선 가능성을 강조한다. 실제 중도 의원과 비박 의원 중에도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에 관심이 많다. 영남의 한 중도 의원은 "반 총장이 출마할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출마 메시지만 전해져도 대선은 물론 총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살아있는 현재권력'인 박 대통령의 존재는 '박-김 전쟁' 2라운드에서 최대 무기다. 박 대통령은 총선과 대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박 대통령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하지만 30%에 가까운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고 외교ㆍ경제ㆍ국방ㆍ통일에 중점을 둔 국정은 지지율을 상승시킬 것으로 예상돼 총선과 대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 주도권'과 관련, 친박 내부에선 내년 총선을 비대위 체제로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김 대표의 퇴진을 전제로 하는데 의석 수는 친박이 열세이나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어 가능한 시나리오다. 8명 최고위원 가운데 김 대표와 황진하 사무총장을 제외한 서청원·이정현·김을동·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과 원유철 원내대표는 친박 또는 범친박으로 분류된다. (범)친박 최고위원들이 당무를 거부하거나 동반 사퇴를 선언할 경우 김 대표 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친박계 중진인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여의도 컴백이 가까워지면서 비대위 출범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최근 '마약 사위' 문제로 김 대표가 곤혹을 치룬 것과 같은 일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박-김 전쟁'이 격화되면 이른바 '김무성 파일' 또는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대표 측이나 비박 인사와 관련한 비리ㆍ의혹들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포스코 수사를 비롯해 이명박 정권 때 비리ㆍ의혹 수사가 확대되면서 친이 비박 정치인들이 거론되는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올해 말 검찰총장 교체와 내년 총선과 맞물려 고강도 사정 태풍이 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비리 정치인도 주요 타깃으로 알려지고 몇몇 실명이 거론되면서 정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야권은 물론 김 대표 측이나 비박 인사들이 사정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박-김 전쟁' 2라운드에서 김 대표 측과 비박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