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성과 따라 비상하거나 추락 할 수도… 명분·실리 얻는 해법 있어야

유엔의 고위 소식통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번 주내에 북한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프레스 콘퍼런스에 참석한 반 사무총장. 연합뉴스
박 대통령-반 총장 교감설 흘러 나와… '반기문 대망론' 힘 실려
남북관계 개선 여부 따라 박 대통령·반 총장 동반 상승하거나 추락
북한, 박 대통령 남북관계 조급함·반 총장 대권욕 이용설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유엔은 18일(현지시간) 반기문 사무총장의 북한 평양 방문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나아가 유엔 고위 소식통은 "반 총장이 방북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이며, 현 시점에서는 '복수의 날짜'(dates)를 놓고 일정을 조율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로써 반 총장의 방북은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이제 관심사는 반 총장의 방북 일정과 의제, 김정은 국방위윈회 제1위원장과의 만남 및 방북효과 등에 모아지고 있다.

반 총장은 이번 방북으로 유엔 총장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반 총장의 북한 방문을 두고 '득보다 실'이 큰 '패착'이란 분석도 있다. 반 총장이 '방북'에 연연해 북한이 의도한 바에 끌려다의닐 경우 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5일 터키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G20 정상회의 단체 기념촬영장으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 총장은 유엔의 수장이면서 차기 한국 대선의 유력한 후보라는 점에서 이번 방북이 갖는 함의는 매우 크다. 하지만 방북 효과는 미지수다.

반 총장의 방북이 그의 앞날에 순풍으로 작용할지, 반대로 역풍이 될지 짚어봤다.

반 총장 방북은 언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무엇보다 방북 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 대변인은 " '복수의 날짜'(dates)를 놓고 일정을 조율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11월설, 12월설, 심지어 신년설 등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IS 국제 테러 문제가 주요 변수라는데는 견해를 같이했다.

때문에 중국 신화사 통신이 보도한 이달 23일 방북설은 매우 유동적이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국제 테러 문제라는 현안이 중차대 하더라도 반 총장의 방북은 너무 늦출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은 늦어도 12월 이전에 내년 국가 정책을 수립한다. 그런 과정에 반기문 총장의 방북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12월 중순 이전에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북한은 내년 5월 열리는 노동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무언가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이 또한 12월 이전에 결정돼야 한다"며 반 총장이 12월 내 방북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11월말이나 12월 중순 이전에 반 총장이 방북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반 총장 방북 배경은 무엇인가

반기문 총장의 방북은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 유엔총장으로 20여 년만의 방북이라는 점이 있지만 한국인 총장으로 방북인데다 그가 차기 국내 대선의 유력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반 총장의 방북이 유엔의 독자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조율을 거쳐 진행되는 것인가에 따라 의미의 진폭은 전혀 다르다.

유엔 관계자들과 청와대 관계자들, 그리고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반 총장의 방북에 박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취임 초부터 가장 역점을 두었던 남북관계 발전이 임기 후반에 들어서도 지지부진한 것에 직간접으로 우려를 나타내며 무언가 성과를 내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 8월 경원선 복원식에 직접 참석한 것이나 남북 당국자회담, 이산가족상봉, 북한 나진ㆍ선봉을 활용한 러시아산 석탄 국내 반입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반 총장 또한 내년 임기말을 남겨놓고 가장 큰 성과로 북한 방문을 꼽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반 총장은 개성 방문을 시도했다 무산된 터라 이번 방북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박 대통령과 반 총장 모두 남북관계에서 중요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누가 먼저 '방북'에 관한 얘기를 꺼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 총장과 관련해서는 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0차 유엔총회에 참석중인 리수용 북한 외무상을 접견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반 총장의 방북과 북한핵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게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유엔 총회 참석 때 반 총장과 남북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반 총장 방북 얘기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반 총장의 방북을 타진한 것은 아니고 가능성을 열어 둔 정도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 반 총장의 방북에 힘이 실린 것은 8ㆍ25 남북 합의 이후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주춤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전언이다. 남북한은 지난 8월25일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이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정부는 8.25 합의 이후 남북 당국회담 개최를 위해 예비접촉을 하자고 9월에 두 차례 그리고 10월 말 한 차례 각각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반 총장의 방북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총장 또한 방북의 계기를 마련하려던 차에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해듣고 방북에 적극 나섰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북한 사정도 한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하면서 '장마당' 시장경제가 확산되고 자력갱생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은 유엔이나 남한의 지원을 통해 자력갱생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계산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 5월 노동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북한의 국가정책 방향 제시와도 맞물려 있어 북한 입장에선 반 총장의 방북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반기문 방북 '명암' 갈려

반 총장의 방북을 놓고 찬반 논란은 거의 없는 가운데 방북 효과에 대해선 견해가 갈리고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반 총장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고 북한이 개방 경제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지난 8월 지뢰도발과 같은 남북 긴장 국면을 억제할 수 있고 남북이 대화를 지속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의 방북이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에 큰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한다. 반 총장이 대권과 관련한 정치적 행보가 없는데도 차기 대선주자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방북은 반 총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권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의 방북과 관련해 그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차기 대선에 희망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반 총장은 차기 대선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상당한 야망을 갖고 있다는 게 지인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비록 무산됐지만 지난 5월 반 총장이 개성방문에 나선 것도 반 총장의 대권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의 방북 의사를 넌지시 타진했을 때 반 총장이 적극적으로 나선 측면이 있다"며 반 총정의 대권 의지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더욱이 이번 반 총장의 방북이 박 대통령의 '특사' 성격을 띠면서 현재권력(박근혜 대통영)과 잠재 미래권력(반기문 총장)의 합작품이란 해석도 나온다. 반 총장 입장에선 차기 대선에 나설 경우 가장 강력한 우군을 얻는 셈이다.

반면 반 총장의 방북이 낙관적이고 긍정적이지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즉, 반 총장이 방북 후 미비하거나 아무런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반 총장의 방북이 유엔이나 남북관계보다 북한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경우 반 총장이 유엔에서는 물론 남북관계에서도 힘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반 총장은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는 2013년 12월 김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에 등을 돌렸다. 김 제1위원장의 중국과 러시아 방문이 번번히 무산된 것이나 지난 10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방북한 첫 외국 정상인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평양을 찾았지만 김 제1위원장을 민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의 방북은 유엔의 수장이 김 제1위원장을 인정하는 모양새여서 국제적 시선은 냉랭하다. 특히 미국은 이번 반 총장의 방북을 상당히 못마땅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북한이 핵과 인권에 관한 유엔 결의를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사전 장치 없이 방북하는 것이 유엔 총장으로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따라서 국내외 전문가들은 반 총장이 방북 전에 ▦북한핵 ▦북한 인권 ▦유엔 지원 조건 등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반 총장이 유엔의 수장으로 당당하게 방북하게 되는데 그러한 사전 조치 없이 방북할 경우 '을(乙)' 취급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반 총장이 북한이 던진 낚시에 걸린 꼴이 됐다"며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북한은 국내외 주요 인물에 대해 분석을 하게 되면 오로지 그에 대한 연구만 하는 팀(인물)이 있는데 북한에서 반 총장은 특별한 연구 대상이고 이번 반 총장의 방북은 북한팀의 연구성과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반 총장의 방북을 꾀해 오다 지난 13일 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자 긴급히 낚시를 드리웠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13일 아시아태평양 뉴스통신사기구(OANA) 소속 회원사 등 8개 뉴스통신사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형식의 남북 간 대화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북한은 박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을 접하고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조급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이 방북 의사를 밝히기 이전에 반 총장과 박 대통령 간에 모종의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북한은 파악했다고 소식통은 알려왔다. 그리고 "반 총장의 방북은 반 총장 측에서 유엔 북한 대사나 리수용 외무상 쪽을 통해 먼저 북한에 타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 때문인지 반 총장의 방북은 예고 없이,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인 유엔 총장의 방북이라는 빅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는 반 총장의 방북에 그다지 큰 기대를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 총장의 방북이 미리 공개돼 효과가 반감됐고, 반 총장이 북한을 위해 제시할 카드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반 총장 방북 후 유엔이나 한국 정부가 대북 사업을 추진할 경우 국내외적으로 '뒷거래' 의혹과 함께 제동을 걸려는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때문에 반 총장의 방북이 남북관계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론 보지 않는다.

한편,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상식을 깨고 북한에 다가간다면 예상외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시말해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이 방북의 명분과 실리를 얻고 북한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카드를 활용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 총장 입장에선 개인이 아닌 유엔 총장으로 방북의 명분을 분명히 하고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하면 북한도 크게 호응할 것이고 국제사회도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정치와 민간, 또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남북이 교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반 총장 방북 이후 큰 선물과 같은 '지원'이 아닌 말 그대로 자력갱생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는 식이다. 그럴려면 정부보다 민간 차원에서,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장애'가 적은 해외동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소식통은 조언했다.

반 총장의 방북은 유엔 총장의 직함과 함께 개인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정치적으로 차기 한국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반 총장의 방북은 그의 역할과 행보에 따라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달 수 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반 총장의 방북 행보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