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수소탄 실험에 확성기 방송, 중국 역할 강조… '현실인식 문제' 도마에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군이 최전방 11곳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난 8일 육군 장병들이 경기 중부전선에 설치된 대북확성기 위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대국민담화에서 '중국 역할론', 대북 확성기 방송 필요성 주장
중국, 북한 제재에 소극적… 대북 영향력 확대 통한 실질 지배 노려
대북 확성기 방송 효과 의문… 북측 군ㆍ주민 남한 사정 알고 있어
남북관계 경색 지속될 판… 北, 5월 노동당대회서 중국과 손잡을 수도
박 대통령 인식전환, 대북 '결단' 필요… 민간ㆍ경제로 활로 모색

북한이 수소탄 실험을 감행한데 대해 세계적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정부의 대북 대응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한ㆍ미ㆍ일 공조 강화와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대북 압박에 나설 것을 주장하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북 압박 전략에 대해 과시용 전시 성격이 강해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중국 역할론'과 곧바로 재개한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일각에선 근시안적이고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심하게는 박근혜 정부가 북한 수소탄 실험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응조차 '오판'과 다름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대국민 담화에서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이러한 지적과 비판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이고,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이 이전과 달리 강력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대응에 대해 여러 해석과 비판이 제기되면서 일각에선 임기 후반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역할론' 의 함정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국제 공조를 통합 대북 압박을 주장하면서 특히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13일 기자회견을 병행한 대국민 담화에서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촉구한 대목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은 그동안 누차에 걸쳐 북핵불용 의지를 공언해왔다"면서 "그런 강력한 의지가 실제 필요한 조치로 연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5번째, 6번째 추가 핵실험을 막을 수 없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공개 담화를 통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외교적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중국이 그동안 공언해온 '북핵 불용'을 행동으로 보일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위해서는 핵심 열쇠를 쥔 중국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호소와 우회적 압박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초기에는 비교적 강력한 비판을 하다 이후 '냉정'과 '합당한 대응', '대화를 통한 해결'을 거론하며 기존의 대북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기본적인 대북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은 "중국이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일관되게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전력하는 것은 북한핵이 아니라 '한반도 현상유지'"라면서 "북한을 압박해 한반도에 급격한 변화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기대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실효성 있는 대북 제재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은 중국이 대북 제재에 나서지 않는 '실질적 이유'를 오랜 경험적 시각에서 전해 왔다. 소식통은 "북한이 소형 수소탄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장차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다"면서 "이제 어느 나라도 북한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북한이 신년초에 수소탄 실험을 한 것은 김정은 체제 안정 및 과시라는 측면도 있지만 북한의 미래를 결정할 5월 노동당 대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북한은 수소탄 실험 이후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반응을 보면서 그들의 미래 방향을 설정할 가능성이 크고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기보다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의 미래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는 중국이 김정은 체제 이후 사실상 북한 경제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당과 군의 요직에 친중파를 대거 진출시킨 것과도 관련 있다고 소식통은 알려 왔다.

소식통은 이번 수소탄 실험은 북한내 일부 세력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부추겨 실시한 측면이 있으며, 이후 전 세계가 대북 압박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됐다고 평했다. 그는 "전 세계가 북한 제재에 나서도 중국은 발을 뺄 가능성이 있고, 겉으론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물밑으론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수소탄 실험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과 중국이다"고 단언했다. 다시말해 수소탄 실험에 따른 중국의 대북 제재는 미미하거나 외부 포장용에 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북한 제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주장한 '중국 역할론'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시사한다. 동시에 박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기대가 '오판'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간과한 것

정부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에 대한 1차적인 대응으로서 지난 8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에 앞서 정부 내에서는 대북 확성기 재개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안보 부처 주무 장관들은 확성기 재개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여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에서 "8ㆍ25 합의 도출과 남북당국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을 이끌어 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은 진실의 힘"이라며 "앞으로 정부는 우리 국민들의 안위를 철저히 지키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이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 "진실의 힘"운운한 것은 지난해 8월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 이후 8ㆍ25 합의 도출과 남북당국회담 등 일련의 과정에 확성기 방송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DMZ(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우리측 부사관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방부는 10일 사고 원인이 북한의 살상용 목함지뢰 때문이라고 발표하고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심리방송을 재개했다.

이에 북한은 20일 오후 4시를 전후해 대북 확성기 부대가 있는 경기도 연천군 야산에 고사포 1발과 평곡사포 3발을 추가 발사했다. 그리고 약 1시간 뒤 북한군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내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통첩했다.

이후 박 대통령이 강력한 대응에 나섰고, 북한 또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았지만 21일 오후 4시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대화를 제의해 왔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예고한 시점을 불과 한 시간가량 앞두고 지난해 12월 말 사망한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의 통지문으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접촉을 제안했다.

이후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 대 남측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이 참석하는 고위급 접촉 등을 통해 8ㆍ25 공동 합의문을 이끌어냈다. 같은 날 남북 양측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한 때부터 8ㆍ25 합의에 이른 과정을 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행동에 나설 정도로 매우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국내외 북한 전문가 중 상당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에 그다지 효과가 없거나 미미하다고 평가한다. 휴전선 일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탈북자는 "대북 방송에서 말하는 북한과 남한의 실상에 대해 접경 지역 군과 주민들은 다른 방편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별반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체제에서 주민 감시가 느슨해지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는 등 주민의 힘이 커지면서 남한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지난해 8월 초에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과 8ㆍ25 공동 합의문에 이른 과정에 대북 확성기 방송이 큰 계기가 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전해왔다.

소식통은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북한이 전시 상태 직전까지 갔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가장 큰 이유를 '중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은 증시 폭락으로 상징되는 경제불안 속에서 전승절 7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한반도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박근혜 대통령도 전승절 행사에 불참하게 돼 중국으로선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을 우려해 북한에 도발 중지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은 크게 두 차례 북한에 압력을 행사했다. 첫 번째는 김 제1위원장이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 없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남한을 위협했을 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두 번째는 김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때로 시진핑을 포함한 중국 수뇌부가 격로해 대북 행동을 포함한 중국의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돼 북한이 군사행동 대신 대화 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핵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북한의 포격도발 이틀만인 21일 저녁 우리 측 수석대표인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현 상황과 관련해 건설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서도 간접적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이 확성기 방송 재개에 큰 의의를 부여한데는 북한이 대화로 돌아서고 북한 최고위급 인사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나와 8ㆍ25 공동합의를 이끌어낸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당시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 대화를 통해 요구할 사안과 필요성이 있어 최고위급 인사가 나섰다"고 했다. 소식통은 "남북고위급회담의 핵심은 작고한 김양건 비서였다"고 말했다. 김 비서는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대에 동석한 인물이다. 김 비서는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남한에 그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북측 대표로 나왔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남측에 요구한 것은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약속한 대규모 북한지원으로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7ㆍ4 남북공동성명(1972년 7월 4일) 과정에서 약속한 대북지원과도 관련 있다고 했다. 북한은 박정희 대통령 때 시작해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행하지 못한 대규모 북한지원 약속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킬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 왔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자 남한에 대해 불만이 팽배해 있던 상황에서 지뢰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다시말해 지난해 지뢰 폭발사건 이후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과도하게 반응한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북한 수뇌부의 인식을 드러냄과 동시에 남측과 '대화'를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 확성기 방송의 대북 효과 때문이 아니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실제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데 대해 지난해 8월과 같은 군사행동은하지 않고 대남 전단 살포나 비난 방송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박 대통령이 강조한 확성기 방송의 '진실의 힘'은 사실과 다른, 오판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인식 전환' 요구돼

박 대통령은 6일 북한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강력 대응하기로 한 이래 강경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경색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유효하다고 했지만 현실에서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이처럼 남북이 '강 대 강'으로 대치 상황이 길어질 경우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한반도 평화' '남북통일'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는 거리를 두고 민간관계를 통한 대북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북한 현실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고 있고 이번 수소탄 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중국 의존도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남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만큼 민간 차원의, 경제를 중심으로 북한과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북한 소식통은 "남북 지도자나 정치가 나서면 충돌하게 되므로 민간 차원의 비정치적 영역에서 남북이 교류하는 것이 최선이고 '경제'가 북한의 최대 현안인 만큼 그것을 매개로 경색국면의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번 4차 핵실험이 박근혜 정부에 분명 '위기'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중국에 더 이상 기울어 남북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 전에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그들의 미래 방향을 정하는 5월 노동당 대회 이전에 박 대통령이 북한을 끌어들일 확실한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한 카드의 핵심 키워드는 '민간' '경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