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낙점인사 논란 이번 선거도 다시 반복될 듯석연치 않은 향군회 선거관리규정 변경 모호한 조항 논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건물 전경과 조남풍 전 재향군인회 회장(작은 사진). 사진=연합
4ㆍ13 총선 이틀 후에 치러지는 재향군인회장 선거를 놓고 여러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해 말 조남풍 재향군인회 회장(77)이 구속되면서 향군회 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향군회장 선거에 청와대와 여권이 물밑으로 힘을 쓰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아울러 청와대의 뜻을 보훈처가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벌써부터 향군회장 선거가 진흙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향군회 조직의 고질적 문제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며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선거에 ‘청와대 낙점 인사’ ‘VIP와 교감한 인사’ 등의 논란을 일체 배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향군회 내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보훈처와 향군회가 긴밀하게 선거관련 내용을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무게가 실린다.

선거관리 규정 변경 수상한 정황

재향군인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용옥 육군 부회장, 이진삼 전 합참의장, 신상태 서울 향군회장, 김진호 예비역 육군대장(왼쪽부터).
향군회는 선거와 함께 조남풍 전 회장 구속사태 후폭풍 수습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검찰은 향군회의 보궐 선거가 끝나더라도 향군회의 추가 비리 조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향군회는 이를 지혜롭게 극복할 차기 회장 선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조 전 회장의 낙마로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향군회는 선거 과정에서 흔히 불거지는 부정선거 논란, 후보 자격 논란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이번 선거가 별 탈 없이 치러져야만 ‘개혁’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향군회 선거관리규정 변경안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로 인해 향군회 주변에서는 “청와대 특정 후보를 위해 보훈처를 통해 향군회를 움직이고 있다”거나 “핵심 실세의 추천을 받은 A후보를 위해 사전작업이 이뤄졌다” 등의 여러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향군회는 선거를 치르기 전에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출범시켜 깨끗한 선거를 다짐하고 있다. 향군회는 조직의 정상화를 위해 1월 28일 비대위를 정식으로 구성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향군회 비대위는 향군회가 처한 지금의 상황을 감독기관이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정상화될 수 없다는 향군 안팎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비대위는 보훈처 차장을 위원장으로 법률ㆍ회계ㆍ경영 및 향군 내외부 전문가 등 10명의 위원과 5명 내외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향군인회 선거관리규정 변경안. 원안에 적혀 있는 항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비대위는 향군의 각종 수익사업과 인사관리, 선거제도, 감독권 등 근본적 개혁방안을 마련해 향군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향군회는 대내외적으로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최근 변경된 ‘향군회 선거관리규정 변경안’을 살펴보면 그 안에 모호한 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이 특정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들 거의 대부분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향군회의 ‘입후보 자격’조항 강화 및 변경(제 17조)를 살펴보면 향군회는 현행 제12조(각급회 임원의 피선거권)항목에 이렇게 적고 있다.

「각급회 임원에 대한 피선거권이 없는 자는 다음과 같다. 1.~3.(생략) 4. 각급회의 임원선거에 입후보자 또는 임직원이 규정 제 48조 (1) (2)에 의거 처분을 받고 차기 개선총회 또는 차기 보궐선거에 입후보 하려는 자.」

이 현행 제12조 4호 조항은 피선거권 제한에 대한 ‘과잉금지원칙’위반에 해당되는 강제조항으로 간주돼 논쟁과 소송 유발로 삭제됐다.

그리고 그 대신 빈칸에 채워진 변경안에는 적혀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제17조(각급회자의 입후보자격), 1. 생략 2.정관 제 4조의 재향군인회 사업목적 수행을 위한 국가안보관이 투철하고 사회적으로 신망이 있는 자. 3~5 생략. 6. 재향군인회 정관과 규정을 성실히 준수해 온 자.」라고 적시돼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조항 왜?

현재 출마자들 중 특정 두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 향군회 선관위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고 사유는 사전선거운동을 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변경안에 따르면 제17조 4항이 문제가 된다. 이 조항에 따르면 경고조치를 받은 이들은 모두 정관과 규정을 성실히 준수해온 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마를 제한할 수도 있다.

이에 경고조치를 받은 후보들은 변경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단지 경고를 받은 것으로 후보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관계자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문의한 결과 신설조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률적 해석에 따르면 우선 각급회 회장 입후보자격은 정관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선거관리규정에 중복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관 제 37조 (각급회자의 입후보자격)을 보면 (1)각급회장 입후보할 자는 ~덕망이 있고 회 참여의식이 강한 자라야 한다고 적혀 있다.

둘째로 현행 12조 4항이 법원에 의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결돼 사문화 된 조항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문화된 조항은 삭제함이 당연하다.

셋째로 사문화된 조항을 폐기하면서 6항(재향군인회 정관을 성실히 준수해 온 자)을 신설함은 또 다른 과잉금지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향군인회 정관 규정을 성실히 준수해온 자에 대해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 대단히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넷째, 보훈처의 재향군인회 통제의 한 방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사전에 보훈처와 관계 등을 고려해 자격심사에서 배제시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결론적으로 이 같은 항목은 특정 후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넣은 항목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향군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향군회 안팎에서는 보훈처가 이 같은 항목을 첨가하도록 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보훈처는 해당 항목에 대해 “향군회가 자체적으로 공정한 선거를 위해 정한 부분을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향군회 내부에서 “이미 선거관련 집행부에서 이 조항을 근거로 다른 후보들의 후보자격을 박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이 같은 치밀한 계획은 청와대가 낙점하고 여권이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후보를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음모론도 파다하다.

이에 대해 향군회장 후보들은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는 조항이지만 일단 향군회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자세다.

한 후보는 “선거에 나선 사람으로서 선거 관련 규정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나서면 향군회 내부가 시끄러워 질 수 있다”며 “일단 안정이 시급한 향군회인 만큼 되도록 큰 소리 나지 않게 선거를 치렀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외부영향력 차단 둘러싼 신경전

향군회 일부에서는 선거규정변경 논란이 일자 공정선거를 위해 선거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관에서 정한 기한대로 선거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두 개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향군회는 최근 선거일을 4월 중순으로 잡아놓기는 했지만 이조차 확실치 않다. 나중에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향군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월 13일 조 전 회장이 해임된 이후 신임회장 선출에 대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이 관계자는 선거 지연의 배경에 대해 “향군회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출범과 함께 보궐선거를 위한 임시총회 소집이 지연됐기 때문에 선거날짜 확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부적으로 최대한 빨리 의견을 일치시켜 차질 없이 선거를 치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향군회장직무대행으로 이번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박용옥 육군 부회장(74)은 내부적으로 선거 날짜를 놓고 논란이 일자 정관에 의해 3월에 열려야 할 보궐선거 일정을 4월로 미루고 지난 10일 정관 변경안에 대한 임시전국총회를 소집했다.

향군 정관에는 ‘회장직이 공석일 경우 60일 이내에 신임회장이 선출돼야 하고 선거 예정일 한달 전 임시총회를 열어 선거일정 등을 공표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정관에 따르면 선거 예정일은 오는 3월 13일이고 임시총회는 지난 2월 13일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향군회 내부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 부회장이 회장직무대행직을 남용한다”는 지적과 함께 ‘청와대 낙점설’을 문제 삼으며 특정후보에게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일정을 늦추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향군회 일부에서는 “조 전 회장이 해임돼 정관이 발효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으로 정관을 멋대로 변경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상적인 선거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박 부회장과 관련, “박 부회장은 조 전 회장이 구속되기 전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최근의 독단적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향군회 내분은 더 심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조 전 회장은 5억1000만원의 배임수재 및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해 12월 18일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부장검사 조종태)에 따르면 조 전 회장은 지난 9월 의료재단을 운영하는 조모씨(69)로부터 중국제대군인회와의 관광교류 사업 청탁의 대가로 4억원을 받아챙긴 혐의를 받는다. 조씨는 사업 추진을 청탁하며 조 회장의 선거자금 채무를 대신 갚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조 전 회장은 또 지난 4월부터 6월 사이 재향군인 상조회 대표 이모씨(64) 등 향군 산하기관 관계자들에게서 기관장 선임의 대가로 1억1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조 전 회장에 대해 지난 선거에서 선거권을 가진 대의원들에게 10억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은 조 전 회장에게 금품을 제공한 이씨와 조씨, 향군상조회 강남지사장 박모씨(69)를 배임증재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겼다.

앞서 재향군인회 직원들은 국가보훈처에 비리 의혹을 진정했고 보훈처는 특별감사를 진행한 결과 각종 의혹이 상당부분 사실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노조 등으로 구성된 ‘재향군인회 정상화 모임’은 조 전 회장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조 전 회장은 결국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