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등 주요사정기관, 정·재계 검은 자금 조사 착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조사…대기업 회장, 임원 등 40여 명 거론돼

정계-대기업 ‘검은 거래’ 은밀히 내사…사정 타깃 소문 무성

최근 노태우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사정기관 조사가 추진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명단을 이달 초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노씨는 지난 2012년 5월18일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3개의 회사를 설립해 주주 겸 이사에 취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3개 회사 모두 1달러 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인 것으로 확인됐다. 3개 회사 이름은 원 아시아 인터내셔널(One Asia international), 지씨아이 아시아(GCI Asia) 루제스 인터내셔널(Luxes internatinoal)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번 자료 가운데 ‘Korea’로 검색된 파일은 모두 1만5000여 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 이름 195명이 확인됐다.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이 밝혀지면서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페이퍼컴퍼니 등에 대한 사정기관의 조사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KOREA 주소지 주인 찾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이 일부 공개되면서 재계는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재계에서는 “총선 이후 재계 비리 수사가 다시 본격화 될 것”이라고 불안 섞인 소리가 나온다. 재벌 총수를 비롯한 다수의 재계 핵심 인사 이름이 거론되면서 재계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페이퍼컴퍼니 명단’이라는 제목의 정보지가 떠돌고 있다. 사설정보지 형태로 떠돌고 있는 내용물에는 주요 대기업 회장과 전 대표, 임원 등 재계 주요 인사 40여 명의 실명과 소속, 직함 등이 실명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내용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 조세회피지역 페이퍼컴퍼니가 문제됐을 때도 등장했던 이름이 섞여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K모 전 A트래블 한국지사장, 김모 전 D산업 회장, 김모 K시스템즈 전 대표, 이모 I사 회장 등이 그들이다. 이들 외 대부분의 이들이 사기업이나 공기업 또는 기관 핵심 관계자들이다.

페이퍼컴퍼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과 해당인사들은 침묵을 지키거나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조세회피처 명단에 오른 한국인을 대상으로 외국환거래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조만간 그 사실여부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정기관이 페이퍼컴퍼니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는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재산을 빼돌렸다면 182명의 한국인 리스트를 폭로한 바 있다. 이에 이번에 그들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될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뉴스타파 측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가 비자금 관리 등을 이유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3곳을 설립했다고 폭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한국인들과 관련, 금융당국이 외국환 거래법 위반 여부 전면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페이퍼 컴퍼니 설립 혐의가 있는 한국 주소 등록자 195명의 위법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금감원은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제로 베이스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라며 “사전 신고 대상인지 여부에 초점을 두고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사실 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착수까지는 아니고 살펴보고 있는 단계다. 금감원은 이들이 밝힌 195명 넘는 한국인 명단을 확보해 외국환 거래법에 근거한 사전 신고 대상인지를 살피고, 위반한 경우에는 행정 처분을 조치할 방침이다.

외국환 거래법에 따르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경우 원칙적으로는 감독 당국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다. 다만 해외에서 2년 이상 체류한 비거주자나, 영업 활동을 하면 신고 의무가 면제되는 경우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 국내에서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게 되면 신고 대상이지만 예외도 있다”며 “지난해 조세피난처 관련 신고 의무를 위반한 사례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 핵심대상은 검은 자금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내부자료를 두고 일부에서 검찰이 전면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융소비자원은 지난 5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가경제를 흔든 권력ㆍ지도층의 금융범죄 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를 위해서는 검찰이 중심이 된 전면수사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지난 2010년 위키리스크가 발표한 조세피난처 관련 한국인 계좌에 대한 시장의 의문에 대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조사결과가 없다는 것은 국세청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금소원은 “국세청이 지금까지 조사한 모든 내역을 공개하고, 검찰과 공동으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수사 체계를 구성하는 종합 컨트롤 타워 역할에 나서야 한다”며 “페이퍼컴퍼니와 관련해 금융사와 법률회사, 금융관련자, 기업관계자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했다.

금소원 관계자는 “청와대와 국회 역시 불법적이고 후진적인 조세피난처에 대한 청문회와 입법 조치 등 신속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며 “이같은 가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금융소비자단체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찰 등 사정기관은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조세피난처 고객 명단이 유출된 것과 관련, 이미 사전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금융당국 등과 페이퍼컴퍼니 관련 회사 또는 인사들을 어떻게 조사할 것인지 조율하고 있다는 소리도 드린다.

우선 금융감독원은 혐의자들의 사실관계가 확인되는대로 외국환 거래법 위반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금감원은 지난 5일 ‘모색 폰세카’와 관련한 국내 혐의자 약 200명에 대해 원본자료 확인 등을 거쳐 사실관계가 명확해지는 대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혐의자들의 세금탈루 등이 의심되는 만큼 국세청 등 유관기관과도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세운 것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이나 재산 등을 외국환 거래법의 기준에 따라 신고하지 않거나, 각종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면 문제가 된다.

앞서 금감원은 2013년 5월에도 조세피난처를 통한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자에 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대상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 이수영 OCI 회장 등이 포함됐다.

재계에서는 195명의 명단이 발표된 후 국세청 등 세정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주소지를 가진 195명에 대한 세무조사 가능성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장남인 재헌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3곳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것이 알려진 가운데 국세청도 사태추이를 살피기 위해 기초자료를 수집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이 관련 내용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리스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혐의가 드러날 경우 세무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182명의 명단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무조사를 받은 사람은 48명에 불과했다.

국세청은 단지 이름이 해당 문건에 올라 있다고 해서 무조건 조사하는 것은 아니다. 적법성을 따진 뒤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을 경우 본격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지시할 가능성이 있다”며 혐의가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일단 고강도 조사가 진행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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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재벌들의 비밀금고 조세피난처란?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피난처 명단을 공개해 조세피난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데 의견이 엇갈린다.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세당국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은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서거나 외국 기업과 합작 사업을 벌이면서 기업 설립과 청산 절차가 간편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조세 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국내 20대 그룹 중 10여개 이상은 조세 피난처에 250개 자회사를 설립했다. 대부분 적법 절차를 거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금융거래, 자산 내역을 신고한 후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조세 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기업과 부유층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고, 탈세(脫稅)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경우다.

세청 관계자는 “조세관련 해서 국제협약이 맺어져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국적인이 전 세계 어느곳에 회사를 설립해도 한국 국세청에서 요청하면 해당국가에서 조세자료를 협조하도록 돼 있다”며 “이번에 이름이 드러난 이들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조세자료를 협조받아 조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탈세로 볼 수는 없다”며 “어떤 성격의 사업을 하고 어떤 돈이 오갔는지 분명히 현지에서 협조받은 자료를 확인한 뒤에야 탈세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세피난처란 법인의 실제발생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부분에 대하여 조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그 법인의 부담세액이 당해 실제발생소득의 100분의 15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말한다.

조세피난처는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나 돈세탁 등 자금거래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비자금 조성과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조세피난처는 바하마ㆍ버뮤다제도 등의 카리브해 연안과 중남미의 국가들 그리고 케이멘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보통 저세율국(Low tax Havens), 택스 파라다이스(tax paradise, 완전 조세회피 무세지역), 택스 셸터(tax shelter, 국외 소득 면세국), 택스 리조트(tax resort, 특정 법인 또는 사업소득 면세국)로 구분된다.

저세율국은 세율이 낮고 비교적 많은 나라와 조세조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배당에 대한 원천과세가 없다. 대표적인 국가는 바레인, 모나코, 싱가포르 등이다.

택스 파라다이스는 면세국.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고 조세계약을 체결하고 있지 않으며 회사설립이 간단하다. 택스 셸터는 국외소득에 과세하지 않는 국가다. 홍콩, 라이베리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택스 리조트는 특정한 형태의 회사 또는 사업활동에 특별한 세제상의 우대조치를 취하는 국가. 아일랜드, 그리스,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이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