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운호 리스트’ 법조로비 의혹에 ‘휘청’… 기업수사 초강공모드 관측

특수부도 로비 대상 포함됐나 파문 확산에 기업사정 불투명

김수남 총장의 결단 향방에 기업 촉각 … 위기 정면돌파, 기업 강력 수사

장기수사 기진맥진 ‘포스코’ 다시 수사선상 오르나

법조브로커 집중 단속 예고에 결탁한 ‘내부자들’ 초긴장

수사망 걸리는 법조인사와 브로커 무조건 강력처벌

총선 이후 대대적인 사정정국을 연출하던 검찰의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예고되는 사건이 발생해 사정기관 주변에서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불거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변호사 폭행사건이 법조로비 의혹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법원과 검찰 등 법조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법조계는 일단 정 대표가 판사, 검사 등 법조계 인사들에 로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부정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의심 어린 시선은 쉽게 거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는 정 대표의 법조계 로비 의혹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정 대표 로비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은 정 대표의 해외 도박 등 여러 혐의를 축소수사 했다는 의혹과 더불어 일부 정황까지 포착되고 있어 경우에 따라 김수남 검찰 총장의 책임론까지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검찰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던 정ㆍ관ㆍ재계 전방위 부패사정의 향방이다. 일각에서는 정 대표의 로비의혹을 가리키는 이른바 ‘정운호 리스트’가 법조게이트로 비화될 경우 검찰의 사정시나리오는 상당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내부 심상치 않은 조짐

검찰은 올해 특별수사와 관련해 공공적폐, 재정ㆍ경제 사건, 전문 직역의 숨은 비리에 주력하기로 지난 2월경 결정했다. 검찰이 대검 중앙수사부의 후신으로 만든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기업수사에 대한 관측이 무성하다. 기업비리와 연결된 정경유착형 비리척결이 사정 1순위라는 분석에 특별한 이견이 없다.

근거는 검찰수뇌부가 이 부분에 대해 전반적으로 의견을 모았다는데 있다. 앞서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지난 2월 29일 전국 특별수사 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올해 수사 방향과 대상, 수사역량 강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이때 검찰이 꼽은 중점 수사 대상은 공공분야 구조적 비리와 재정·경제분야 고질적 비리, 전문 직역 숨은 비리의 세 가지다. 이 중 공공분야 구조적 비리와 관련해 검찰은 공기업의 분식회계나 비자금 조성 등 자금유용 행위, 대형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금품을 주고받거나 국책사업의 사업비를 부당하게 늘리는 행위를 수사하기로 했다.

또한 공무원의 뇌물 수수나 지방 공무원이 지역 토착세력과 유착하는 공직비리 사건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재정ㆍ경제 분야의 고질적 비리로는 기업주와 임직원의 횡령ㆍ배임을 포함한 기업 재산범죄, 시세조종·미공개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 교란 행위, 입찰담합과 같은 ‘민간 부문의 기업 경쟁력 저해 행위’를 꼽고 있다.

검찰은 국가보조금 부정수급, 각종 기금과 정부보증제도 부당이용, 조세포탈 범죄 역시 수사하기로 했다. 정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자료상의 허위세금계산서 발급·수수행위,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재산 국외도피, 역외탈세 등도 엄단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교육과 법조, 언론, 방위사업 등 전문 직역군 비리 역시 찾아내기로 했다. 교육분야는 교원과 교직원 채용·승진, 입학과 학위취득 등 입시비리, 학교·재단의 교비집행 관련 비리, 납품 시설공사 관련 금품수수 등이 대표적 범죄다.

법조와 언론 분야는 민ㆍ형사 사건 및 인ㆍ허가 관련 브로커, 무자격 법률사무 취급, 폭로기사 무마 명목 금품 갈취 및 광고·협찬금 강요 등이 중점 수사 대상이다. 방위사업은 납품과정의 편의제공 대가 금품수수, 시험성적서 등 위ㆍ변조, 군사기밀 탐지 등이 주요 척결대상 비리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이날 회의 기조에 맞춰 본격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기업이 검찰 안팎에서 유력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수남 총장은 “그동안 검찰의 부정부패 척결 노력에도 공공·민간 부문에서 부정부패가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라며 “모든 특별수사 사건은 부장검사가 주임검사로서 수사 초기부터 공판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하는 등 급변하는 사회현실에 발맞춰 특별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김 총장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해 검찰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누가 정 대표 로비 의혹 유탄에 맞을지 모르는 탓이다. 특히 위기감이 상승하고 있는 곳이 김 총장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특수부라는 점에서 검찰의 분위기는 더 침울하다.

‘정운호 리스트’ 어디까지 번지나

최근 발생한 정 대표의 변호사 폭행사건으로 말미암아 급작스럽게 수면위로 부상한 ‘정운호 법조로비’ 의혹에 법조계, 특히 검찰은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검찰 특수부는 해외도박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인 정 대표의 여러 혐의를 수사했고, 이후에도 추가로 문제될 수 있는 다른 위법행위가 있는지 여부를 캐기 위해 감옥에 있는 정 대표를 불러 다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검찰은 정 대표의 위법행위를 조사하기보다 정 대표와 관련된 다른 재계인사들에 대한 조사를 위해 참고인으로 정 대표를 불러 조사하는데 그쳤다. 이는 정 대표의 다른 문제를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검찰과 정 대표 측이 모종의 합의한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무게를 더하는 부분으로 꼽힌다.

심지어 검찰 특수부는 정 대표를 불러 조사한 부분에 대해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했다. “그래야 내부적으로 사건을 재단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검찰은 “정 대표와 모종의 빅딜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이미 수감 중인 정 대표와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중이다. 핵심은 정 대표에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변호사가 정 대표로부터 받은 거액의 수임료를 대체 어디에 사용했는지 그 용처 추적에 있다.

일부에서는 정운호 리스트가 법조비리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수사가능성에 회의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검찰과 고위인사가 연루된 의혹에서 핵심이 되는 수상한 자금용처 추적은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정 대표의 자금을 로비에 운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가 전관 출신 변호사라는 점에서 ‘내부자’인 그들이 자금운용 전에 자금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철저히 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변호사들이 수임료의 일부를 로비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만큼 그들은 비밀자금이 뒤탈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을 제대로 해낼 줄 알아야 유능한 변호사라는 말이 법조계에 통용되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더구나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연루된 법조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수사 및 사법처리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정 대표의 로비 과정에서 ‘브로커’ 노릇을 했다는 건설업자 이모씨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는 이씨의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신병 확보에 나섰을 뿐, 정 회장의 로비 의혹과 관련된 법조인들에 대한 수사 방침은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사건 알선 등의 명목으로 9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검찰의 수사 방침이 알려지자 종적을 감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제기된 문제는 ▦부장판사 출신 최모 변호사의 고액 수임료(20억원) 논란 및 ‘전화변론’ 의혹 ▦검사장 출신 홍모 변호사의 수사 영향력 행사 의혹 ▦재판 단계에서 이씨를 접촉한 현직 임모 부장판사의 처신 논란 등이다.

정 대표 사건이 확산되면서 김수남 검찰 총장의 조치와 향후 검찰 수사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김수남 총장이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는 쉽게 추진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섣불리 내부 정화를 추진하다가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 검찰 전체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부패사정 계획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일단 이번 사건은 장기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최대한 축소한 뒤 부패사정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인사조치 등을 취하는 식으로 조용히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업수사 위축될 수도

그러나 총선으로 야권의 힘이 커진데다 야권이 검찰의 강도 높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어서 쉽게 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달 29일 “사법부는 ‘정운호 사건’으로 나타나는 전관예우나 사회정의를 위반하는 사법부의 행보에 대해 명확하고 철저한 조사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비대위 회의에서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정 회장의 사법부의 전관예우 같은 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정부는 (좋지 않은) 경제상황으로 서민들의 짜증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정운호 사건과) 옥시 (문제) 등으로 더욱 생활에 찌드는 서민계층의 불만이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이걸 지켜야할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이러한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도가 돼,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철저한 조사와 대처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어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9월부터 실시될 ‘김영란법’과 관련해서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우려한다”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정운호 사건' 같은 게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김영란법이 갖고 있는 향응방지법 등 입법취지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검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어떤 식으로든 이번 의혹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 부패사정을 진행할 경우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해 반부패부의 활동이 ‘그들만의 축제’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검찰은 최근 대형사건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기업이 포스코다. 검찰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얼마 전 포스코에 대한 수사 끝났지만 최근 새로운 첩보가 접수돼 사실관계를 확인 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자세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포스코와 하청업체들 간의 비리 첩보”라면서 “지방사업뿐만 아니라 해외사업을 통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여러 비리가 저질러 진 것으로 구체적 제보진술과 자료가 입수됐다.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좀 있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최근 검찰이 건설업체들을 겨냥한 점을 들어 포스코건설 부분을 검찰이 수사하려는 것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검찰은 총선 직후부터 본격적인 대기업 비리 수사에 착수하며 고강도 사정 수사를 예고했다.

불과 며칠 사이 검찰은 여러 건의 압수수색과 공개수사를 시작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1일 수십억원대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국세청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75)과 부영주택 법인 등을 고발한 사건을 특수1부(이원석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또 평창 동계올림픽 기반시설 구축사업인 ‘원주-강릉 고속철도 공사’ 사업에서 입찰 담합을 한 혐의로 현대건설ㆍ한진중공업·두산중공업·KCC건설 등 건설사 4곳을 수사하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십억여원대의 조세포탈 혐의를 받고 있는 이계호(58) STC라이프 대표에 대해서도 관련 수사가 진행중이다. STC는 줄기세포 관련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 대표가 10억여원의 회사 돈을 횡령해 유용하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규모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지난달 20일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른 의사들의 면허증을 빌려 불법으로 줄기세포 치료 병원을 운영한 혐의(위료법 위반)도 적용됐다. 횡령 자금의 사용처가 확인될 경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될 수 없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