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정권재창출 위해 비박계 적출 ‘사생결단’… ‘제 2의 분당사태’ 올 수도

친박 당권장악 위해 무리수 강행…비박 탈당 땐 朴정부 ‘흔들’

여권 내홍 해법 청와대 손 안에 …정계개편 현실화될 수도

친박 핵심 당권장악 위해 최종 협상안 마련에 집중

새누리당 내홍이 정점을 찍으면서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두 계파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내홍이 점차 진정추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한 길 들어간 수면아래 분위기는 심각한 수위를 넘어선 듯 보인다. 최근에는 양 계파 사이에서 각자의 길로 가자는 극단적인 외침까지 들리면서 급기야 분당론도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다.

분당론이 연기만 조금 피우다 말지 장작을 활활 태울지는 아직 섣불리 예견하기 힘든 상황이다. 친박-친이 간의 해묵은 갈등이 점점 곪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여권 내부에서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 고름이 터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분당사태 시나리오도

새누리당이 내홍에 휩싸이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친박 패권주의가 새누리당을 둘로 쪼갤 수 있다”며 “이대로 갈등이 깊어질 경우 친노패권주의로 사실당 분당 사태를 맞았던 더불어민주당과 비슷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친박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승리한 이후 당내 최대 계파가 되면서 정국을 주도하는 듯 했으나 당권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반쪽 정권이 됐다”며 “총선 이후 친박계가 당권장악을 하고 이를 통해 차기 정권재창출을 도모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무수히 떠돌았는데 이것이 현실화 된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친박계는 19대 국회 때 친박계 황우여 의원이 당 대표를 맡은 데 이어 이완구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맡는가 하면 이한구, 최경환 의원 등이 원내지도부를 장악하는 등 당권을 일부 손에 넣은 듯 보였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했고 그나마 새누리당이 얻은 122석 가운데 친박계와 비박계가 6대4 비율을 형성하면서 당권장악은 쉽지 않은 구도가 됐다. 총선 참패를 수습할 새 지도부를 출범시키지도 못한 채 내홍에 휩싸인 이유가 여기 있다. 당권을 노리는 힘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다 보니 구심점이 없어 서로 물고 뜯는 형국으로 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친박계가 비박(비박근혜)계 위주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와 김용태 혁신위원장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당 쇄신은 더 복잡한 길로 들어서게 됐다.

새누리당은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당헌ㆍ당규 개정안을 마련한 뒤 전국위원회에서 이를 통과시키려 했지만 상임전국위가 예정됐던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정족수는 채워지지 않았다.

상임전국위는 전국위 의장과 부의장,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시ㆍ도당 위원장 등 52명으로 구성되는데 20여명만 참석했다. 이날 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에 임명하고 혁신위 독립성 보장을 위한 당헌ㆍ당규 개정안 등을 통과시키려던 전국위원회도 열리지 못했다. 비대위원 임명안을 처리하기 위한 상임전국위 역시 무산됐다.

총선 참패 이후 한 달 넘게 지속된 지도부 공백 사태는 이제 여당의 공멸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혁신위원장에 내정됐던 김용태 의원은 상임전국위 무산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고, 정 원내대표 역시 비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임전국위 참석자인 상임위원장 중에선 정두언 의원만 참석했다. 친박계 정우택 정희수 홍문종 의원 등은 불참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위원 상당수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비박계는 친박의 조직적 방해 행위로 보고 있다.

당내부에서는 “친박이 조직적으로 회의를 보이콧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일부는 갑자기 연락이 안 됐고 일부는 여의도 근처에 와서 회의장엔 안 들어오고 맴돌았다”는 의혹도 나온다.

여권 주변에서는 내홍사태가 ‘비박계 탈당’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비박계 행동에 최대 걸림돌이었던 총선이 끝났기 때문에 비박계가 집단행동을 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이날 전국위 무산에는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와 혁신위가 출범할 경우 총선 공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친박계들의 조직적 반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친박계가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혁신위 구성을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향후 이번 사태는 새누리당 내분의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사의 관측도 나온다.

총선 참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당을 쇄신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던 정 원내대표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면서 최악의 계파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권장악 위한 친박 무리수

친박계가 비대위와 혁신위 출범을 막으려 했던 데에는 총선 책임론이 집중될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김용태 혁신위원장이 주도해 혁신위가 꾸려지고 비박 중심의 비대위가 출범하면 총선 참패의 원인 규명과 당내 계파청산 논의가 첫 번째로 다뤄질 게 분명한 상황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이같은 문제가 이슈화하면 친박의 당권 장악도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이미 김성태 의원은 친박계의 2선 후퇴가 총선의 민의라고 주장해왔다. 여기에다 실권을 가진 혁신 비대위가 수평적 당청관계와 국정운영 기조 변경을 요구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울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도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걱정도 포함돼 있다.

결국 비박계가 당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친박계가 이날 각계에서 쏟아질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전국위 보이콧이란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여권 주변에선 “친박이 결국 뜻이 맞지 않는 동지보다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친박 내부적으로 비박계가 분당을 추진한다 해도 이를 막기 위해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잠정결론 내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여권의 정계개편론을 놓고 온갖 분석과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분당론에서부터 중도신당 창당론, 호남과 부산ㆍ경남 연대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19일 ‘창당’ 가능성을 공개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신당 창당 가능성과 관련해 “후배들이 나라를 잘 끌고 갈 걸로 판단되면 조언하는 수준에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결단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어느 쪽으로 갈지는 두세 달 정도 고민해보다가 10월쯤 정리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 의장은 “제3의 정치결사체가 필요하다”고 밝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장의 싱크탱크 격인 ‘새 한국의 비전’이 오는 26일 발족한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도 전날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이날 일본 게이오대 강연에서 “한국 정치는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로 갈지, 아니면 다당 연립으로 갈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대선주자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개헌론’도 꺼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대표도 지난 18일 “비박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새판 짜기’ 의지를 보이는 발언들이 잇따르고 있어 향후 새누리당이 정치적 왕따현상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비박계가 국민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 비노ㆍ중도 그룹과 결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친박계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고리로 한 충청과 TK(대구ㆍ경북) 중심당 구상을 내놓고 있는 데 대해 호남ㆍPK(부산ㆍ경남) 연대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새누리당 비주류인 비박계가 탈당해 별도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다. 야권과 연합전선을 구축할 경우 정치적으로 존재감을 잃을 수 있어서다.

또 비박계 독자세력화가 정 의장의 ‘제3 정치결사체’ 구상과 맞물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집권세력인 친박계가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중도ㆍ개혁 목소리가 반영되는 신당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계개편론이 현실화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비박계의 탈당이 당장 실행되기에는 비박계 탈당을 이끌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계 개편 ‘방아쇠’ = 청와대

정치권 일부에서는 새누리당의 내홍에 기름을 끼얹은 ‘상임전국위원회 무산’ 사건 배후를 놓고 여러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핵심 세력이 배후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친박계 초ㆍ재선 의원 및 당선자 20명이 정 원내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회 구상에 공개적인 반기를 들고 나서자 여야권 내부에서 “ ‘반(反) 정진석 비대위’ 기류를 주도한 의원 20명 뒷배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같다”는 추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를 주도한 이들로 꼽히는 친박 핵심은 최경환, 서청원 의원 등이 있다. 반기를 든 20명 대부분이 두 의원의 지역 기반인 영남과 충청권 출신이고, 최측근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여권 내부에서는 다른 뒷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새누리당 내부 누군가 그런 상황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 “더구나 가까운 사람을 동원하는 게 지금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정 원내대표가 최 의원과 서 의원을 통해 내분 수습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도 두 의원이 뒷배라고 하기엔 어색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정 원내대표는 최근 중진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추대된 비대위원장직을 유지하며 당내 갈등을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당 비상대책위원과 혁신위원장 인선을 둘러싼 당내 논란의 해법 모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정 원내대표는 비슷한 시기에 당과 원구성 협상에 착수키로 하면서 친박계 일각에서 제기된 원내대표직 사퇴론도 일축했다.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청와대는 정계개편론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상상황’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정국의 추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정계개편은 대선 밑작업 실패와 이에 따른 박근혜정부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현재 새누리당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박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흔드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 투쟁과 정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일부 새누리당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정치권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정계개편론과 관련해 친박과 비박계로 분열돼 있는 새누리당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전략을 시뮬레이션하고 야권협조 방안을 짜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단 몇 명의 비박계 의원이라도 탈당해 국민의당 또는 중도적 성향의 야권 의원들과 결탁할 경우 청와대는 상당한 내상을 입게 될 것”이라며 “예컨대 탈당파에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 등 거물급이 포함된다면 친박 주도 새누리당은 2당에서 3당으로 밀려나는 것은 둘째치고 동력을 완전 상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정계개편은 청와대 레임덕의 시작이자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도 있어 청와대가 지금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리 만무하다는 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