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 북한 문제 해결에 러시아 역할 기대… 러, ‘北 카드’로 ‘킹메이커’될 수도

‘반기문-푸틴 회동’ 다양한 해석 나와 … 소식통 “대화 핵심은 ‘북한’”

반 총장, 북한 문제 해결로 남북관계 변화 가져오면 차기 대선 지배할 수도

러시아, 북한 영향력 상당… ‘킹메이커’역할 가능

반기문ㆍ푸틴 극동에 관심 많아… ‘극동러시아개발은행’ 남ㆍ북ㆍ러 발전 토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러시아에서 개최된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한 뒤였다.

반기문 총장은 이날 기조연설을 한 뒤 푸틴 대통령과 별도 회담을 했다. 이 양자회담에서는 시리아 사태, 중동평화, 기후변화 문제, 한반도 정세 등 국제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와 국제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반기문-푸틴 회담’의 진짜 알맹이는 다른데 있다고 한다. 외부에 공개된 내용은 장식용이고 두 지도자의 ‘밀담’ 이 요체로 ‘북한’이 핵심 주제였다는 전언이다.

이들은 반기문 총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 자체가 ‘밀담’을 위한 것이고 북한과 2017년 대선에 관한 얘기가 심도있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반 총장은 북한 문제 해결을 통해 대권에 다가가려 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 반대 급부를 전제로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중엔 차기 대선에서 북한이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고 반 총장이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이룬다면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한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정치ㆍ군사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킹메이커론’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북한의 도발적 동향이나 반 총장이 남북 문제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점, 그리고 러시아가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 등은 반 총장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 총장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이 지닌 함의와 ‘밀담’의 주된 내용을 추적했다.

반기문 총장 러시아행의 비밀

반기문 사무총장이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6일(현지시간) 개막한 '제20회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별도 회담을 했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경제포럼은 각국 정부, 재계 인사들이 새롭게 제기된 경제ㆍ사회 문제와 이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고 지속적인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모임으로 1997년부터 개최돼 오고 있다.

올해 포럼에 외국 정상으론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국가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 아프리카 기니 공화국의 알파 콩데 대통령 정도만이 참석했다. 국제기구 수장으로는 반 총장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초대됐다.

행사에 초청된 각국 정부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반 총장이 가장 두드러진 것을 알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중 반 총장에게 러시아 국가훈장인 ‘우호훈장’을 직접 수여하기도 했다. 우호훈장(‘오르덴 드루즈뷔’)은 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격의 훈장으로 국가 간 우호와 협력 증진에 기여한 인사에게 수여된다.

때문에 국제 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의 주인공이 반 총장이고, 푸틴 대통령이 반 총장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는 말도 나왔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과 러시아 관계자들은 이번 행사에 반 총장을 초청한 것은 푸틴 대통령의 고도의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즉,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유엔총장이자 한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반 총장을 도와주고 향후 한.러 관계를 발전시켜가려는 복안이다.

반 총장 역시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북한에 관여하고 차기 대선에도 활용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을 위해 기꺼이 응했다는 전언이다.

다시말해 반 총장과 푸틴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 두 지도자의 회동이 성사됐고, 그 이해관계에 북한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한 동북아 전문가는 “러시아 발전에 극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매개로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에 영향력을 행사해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미국에 효율적으로 맞서려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에서 북한과 더불어 한국이 중요하고 반기문 총장이 한국인으로 차기 대통령으로도 거론되고 있어 푸틴 대통령으로선 특별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정치평론가들도 반 총장이 유엔의 수장으로 임기 중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다면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세계에서 한국의 역할 등에서 반 총장의 장점이 부각될 수 있고 실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차기 대선을 지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반 총장이 ‘통일대통령’의 적임자로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 총장의 러시아행에 북한과 차기 대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양새다.

반 총장 대권 행보와 북한의 화답

지난 5월 말 반기문 총장의 방한은 국내외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확 달라진 모습은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을 술렁이게 했다. 반 총장은 그동안 차기 대선에 ‘침묵’과 ‘거리두기’로 일관했다. 그런 반 총장이 태도를 돌변해 대놓고 대선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반 총장은 5월 25일 제주롯데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임원진과의 간담회에서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 “지금까지는 유엔 패스포트(여권)를 갖고 있었지만, (총장 임기가 끝나는)내년 1월1일이 오면 이제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고민과 결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대통령을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자생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제가 인생을 헛되게 살진 않았고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있는 것이란 생각에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대권 도전 의사를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물론, 출마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 총장의 방한 중 주목받은 또 다른 행보는 ‘북한’에 관한 부분이다. 반 총장은 북한과의 대화와 인도적 지원 문제를 언급해 대북 제재와 압박에 집중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온도 차를 보였다.

반 총장은 방한 이틀째인 5월 26일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향한 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면서 “저는 북한에 더 이상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는 방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에서 갈등이 고조되면 동북아, 그 너머 지역까지 어둠의 그림자가 깔릴 수 있다”면서 “저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이 드러내놓고 북한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반 총장이 북한을 중요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압박 전술과 다르게 북한에 접근해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대선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반 총장은 개성 방문을 시도했고, 공공연하게 임기 중 방북할 것을 밝히는 등 북한 관련 성괴를 내려는 행보를 보였다.

이런 반 총장의 행보에 화답하듯 북한은 우리 정부 대신 대화 상대를 바꾸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북한 대남단체인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은 17일 담화를 통해 “박근혜가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고 앙탈을 부린다면 굳이 대화를 청할 생각이 없다”면서 “박근혜가 아니더라도 우리와 손잡고 나갈 대화의 상대는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과 일부 북한 전문가는 북한의 대화에 응하지 않는 박근혜 정권을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다시 말해 북한은 필요에 따라 또 다시 대화를 제의해 올 것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정통한 북한 소식통은 그와 상반된 견해를 전해왔다. 북한이 박근혜 정부와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북한은 남북 간 민족문제는 제껴두고 ‘비핵화’만 외치는 박근혜정부에 실망을 넘어 분개하고 있다”며 “앞으로 정부나 정치 차원의 남북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살길이 같은 민족(남한)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여겨왔는데 이제 그런 생각을 접은 것 같다”묘 “대신 유엔과 같은 다른 상대를 통해 새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의 북한 전문가도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지해도 ‘민족’을 중시해 남한과 함께가기를 기대했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북한의 대남 태도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북한이 말한 ‘새로운 대화 상대’와 관련해선 유엔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베이징 소식통은 “북한은 박근혜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보고 있다”며 “세계 기구이며 중립적인 유엔이 남한보다 나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해왔다.

그는 북한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반기문 총장과 여러 차례 만나 남북한 문제는 물론, 북한 현안을 놓고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북한이 우리 정부 대신 유엔에 비중을 둔다면 반기문 총장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될 수 있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라는 점에서 그가 북한의 변화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면 국내 대선판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광폭 행보, 반 총장 미소짓나

푸틴 대통령 시대 러시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극동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다. 러시아 역대 지도자들이 유럽에 몰두하는 국정을 펴온 것과 달리 푸틴 대통령은 극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해왔다. 그가 대통령에 재선된 2012년 5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대회를 모스크바가 아닌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한 것이나 동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저유가 지속에 따른 경제난과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압박으로 곤경에 처했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유렵 국가들은 최근 러시아 제재를 1년 연장하는 결의를 해 더욱 러시아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최근 광폭 행보를 하며 러시아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하다. 그런 러시아의 변화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게 북한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반 총장을 초청해 만난 것이나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에 공동 대응하려는 계획 등이 ‘북한’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반 총장과의 회동에서 남북한 문제, 동북아 현안들에 대해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미국에 공동 대응하는 데 있어 북한 카드를 활용할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을 묵인ㆍ방조하면서 북한을 앞세워 미국을 상대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4차 핵실험에서 지극히 작은 규모이지만 수소탄 실험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시험 발사한 무수단 미사일은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미국이 두려워할 만한 가공할 무기들이다.

이를 전제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직접 미국을 상대하기보다 북한을 앞세워 파워게임을 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미국의 압박은 피하면서 북한 카드로 미국에 공세를 취하는 형태다. 정통한 북한과 중국 소식통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회담에서 리수용 부위원장은 북한의 미사일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며 중국 측에 기술적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경제 지원도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 북한이 그런 요청을 했는지, 그리고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실패를 거듭하던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23일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확보할 정도로 성공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은 미국에 맞대응할 유용한 수단이다. 특히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정치ㆍ군사적으로 오랜 유대관계를 이어오고 있어 북한에 대한 영향력에서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정은 시대에 노동당이 군(軍)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지만 북한에서 군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특히 하전사 이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믿음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반기문 총장이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2014년 10월 당시 최룡해 당 비서,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사망) 등 실세 3인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파격적인 행보에 반기문 총장의 역할이 있었다. 러시아와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같은 해 9월 27일 리수용 당시 외무상은 반기문 총장과 면담 후 30일 러시아로 달려갔다. 리 외무상은 반기문 총장으로부터 “국제금융을 통한 북한 대변화에 한국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0월 1일 리수용 외무상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만나 반 총장의 말을 확인하고 평양으로 긴급 타전했다. 그리고 ‘한국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해 실세 3인방이 한국을 찾았다.

당시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북한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지만 ‘국제금융을 통한 북한 대변화에 한국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정은 아직 유효하다.

반 총장이 언급했다는 ‘국제금융’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설 ‘극동러시아개발은행’으로 러시아 극동 개발과 남ㆍ북ㆍ러 3국의 공동발전을 위해 설립되며 북한의 대변화를이끌 수 있는 물적(재정적) 토대이다.

지난 16일 반 총장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러시아 극동지역 발전과 극동러시아개발은행에 관한 얘기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다시 말해 반 총장은 극동 발전과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그랜드플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러시아 입장에선 반 총장이 차기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가장 많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반 총장을 초청해 별도의 회담을 한 데는 그러한 심모원려의 전략이 깔려 있다. 반 총장으로서도 북한을 변화시키는데 러시아가 일정한 역할을 해준다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

반 총장과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매개로 ‘윈(win)-윈(win)’하는 구상을 엿볼 수있는 정황들이 자주 포착되는 상황이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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