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 차기 대권 잠룡들, 김무성ㆍ이재오 움직임 촉각

“박근혜 대통령 정권 재창출 역부족” 한계론 부상 불안한 친박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내부 분열 막지 못하면 조기 퇴진 관측도

이정현 신임 당 대표 선출 이후 새누리당 내 미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표면적으로 화합의 장을 열고 당 혁신이 추진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살이 어떤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이정현호가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권이 친박계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의 불만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오 전 의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 전 의원은 중도 신당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엿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세력이 커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정현 신임 당 대표와 비박

새누리당이 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 당대표를 맞았다. 지난 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친박계 3선 의원인 이정현 당시 후보가 당선됐다.

당대표를 친박계인 이 신임 대표가 차지한 데 이어 최고위원도 사실상 친박계가 싹쓸이했다. 청년과 여성 최고위원을 포함한 총 5명 최고위원 가운데 친박계가 조원진, 이장우, 최연혜(여성), 유창수(청년) 후보 등 4명을 당선시켰다. 비박계는 강석호 후보 단 1명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친박계가 염원대로 당권을 사실상 90%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되면서 비박계 내부에서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이 팽배하다. 심지어 친박계를 향해 더 이상 같이 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는 당내 계파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내년 말 대선을 관리할 새 지도부 즉, 박근혜 대통령의 ‘친정 체제’가 구축돼 당청 관계는 당분간 원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친박의 독주가 예상되는 만큼 그동안 당청 권력이 비박 친박으로 양분돼 억지돼 있던 갈등이 폭발할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이번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가장 핵심으로 작용한 것은 친박계의 조직력이었다. 이에 대한 비박계의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계파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박이 계파의 힘을 활용해 당권을 장악했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선거운동 막판 이뤄진 친박계의 조직적 지지가 이 신임 대표의 당선을 결정적으로 도왔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당원협의회의 표심이 이 대표에게 쏠리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풀이가 나온다. 당협위원장의 절반 이상을 친박계가 장악한 상황에서 수도권은 물론 TK나 부산·경남(PK)에서 이 신임 대표의 지지세를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친박이었다.

친박계의 조직적인 지원은 당협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친박계의 움직임은 치밀했다.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비박계 진영의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주호영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이 신임 대표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만큼 친박의 응집력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졌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이러한 힘을 계파갈등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손에서 놓아버릴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말하자면 친박계는 이를 통해 비박계를 장악하려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부터 친박계가 주류

이 신임 대표는 지역주의와 계파 청산을 당 운영 기조로 내세웠다.

이 대표는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새누리당에는 친박, 비박 그리고 그 어떤 계파도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 지역주의도 없음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계파와 지역을 아우르며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이를 보는 비박계의 시각은 그리 좋지 않다. 지도부에 친박이 대거 입성하면서 비박계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이 신임 대표가 먼저 손을 내미는 제스처를 취한 것일 뿐 큰 의미는 없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비박계에서 이를 반기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야말로 정치적인 행위일 뿐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전당대회 표심은 당 대표 후보의 출신지와 상관없이 친박계가 똘똘 뭉쳐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에 개혁과 혁신의 명분으로 내세우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져 갈등을 반복해왔다. 친박이 당권을 잡고, 최고위원도 강석호 의원을 제외한 핵심 당직이 모두 친박계로 채워지면서 실망한 비박계가 친박의 당권 장악에 어떻게 대응할지 벌써 여러 관측과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박근혜 정부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조기레임덕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친박-비박 간의 갈등 그리고 친박계 내부에서 구 친박세력과 신 친박세력 간의 미묘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어서다.

여권 내부에서 “비박계의 분당 움직임 등 전당대회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며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할 경우 이정현 대표체제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다”는 예상에 조금씩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조짐은 벌써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주재로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첫 최고위원회의가 열렸을 때다. 이날 회의에서 지도부에서 유일한 비박계인 강석호 최고위원은 “빠른 시간 안에 체제가 잡히면 국민과 당원이 의문을 갖는 사항 하나하나를 밝혀야 하고 투명하게 정리할 필요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윤상현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의 공천개입 녹취록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이다.

이 신임 대표는 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회의 뒤 강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일단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국가 안위 문제에 집중하면서 그 밖의 다른 현안들은 서둘지 말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녹취록 문제는 사실상 묻어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비박계은 이 신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인사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강 최고위원도 별 기대하지 않고 친박계의 향후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던져본 발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대에서 비박계가 참패하자 비박계는 패배에 승복하고 향후 대응책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비박계 내부에서는 이 신임 대표 등 친박 지도부가 향후 계파의 패권을 강화 움직임을 보일 경우에 대비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분당 사태 올까

여권 주변에서는 전대 이후 계파간 대립 양상이 다시 심화될 경우 정계개편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기치로 내건 중도로의 이합집산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비박계에 김무성, 유승민, 오세훈, 남경필, 원희룡 등 비박계 잠룡이 즐비한 상황에서 친박 패권주의가 강화되면 계파간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망론이 가시화되면 비박계의 유력 대권주자나 제 3의 중도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물갈이가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박계가 당권을 계속 유지해 대권 주자를 내세울 경우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는 계산이었지만 이제 쉽지 않게 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비박계의 대안으로 남은 건 분당뿐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계파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분당설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김 전 대표도 현 체제에 불만이 많은 만큼 실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개헌론이 일어날 경우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 전 대표는 여권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개헌을 기치로 제 3지대로의 확장에 나선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하는 그림도 그려지고 있다.

친이계 좌장인 이 전 의원이 움직이고 있어 신당 창당 작업이 향후 새누리당 내부에 어떤 파급력을 낳을지 추측이 분분하다. 분당이 친박계에 대한 협상카드가 될지 아니면 현실화 될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도실용주의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이 전 의원은 지난 10일 “해방 이후 70여 년간 이어온 한국의 정치를 현 정권에서 끝내고 다음 정부부터는 나라를 새롭게 만드는 정치판을 짜겠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대한변호사회관에서 개최한 창당추진위원회 현판식에서 이 같이 밝히고 “기성정당을 흉내 내지 않겠다”며 “우리가 만드는 정당은 개헌과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오는 10월께 두 달 과정의 정치학교를 개설할 계획이라며 “중도 실용주의가 무엇인지, 한국 정치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나라의 판을 어떻게 짜는 게 좋은지 등을 무료로 강의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창추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병국 전 의원은 “처음은 비록 이렇게 초라한 것 같지만, 국민의 호응을 얻는 순간 막강한 힘을 갖게 될 것”이라며 “힘을 합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자”고 말했다.

창추위는 오는 15일까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당명 공모를 마치고, 다음 달 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공식 출범을 선포할 계획이다. 올해 말까지 창당 발기인 1천 명을 모아 내년 1월 창당할 목표를 세웠다.

이 전 의원의 행보는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전 의원은 “대선을 앞두고 정계 개편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전 의원은 정계 개편 가능성과 관련해 “(개헌 관련) 국민운동을 하는 것이 어려우면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기존의 원내 정당과 힘을 합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이는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와 연대할 가능성을 언급, 친박에 대한 공동연합전선을 구축, 정권 재창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지난 1996년 15대 총선부터 다섯 번 연속 당선된 서울 은평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한편 잠룡들이 움직임을 본격화 하고 있어 이 전 의원 신당 창당 작업이 중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이 친박 체제로 구축됨과 동시에 비박계 대권 주자들이 경계감 속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내년 12월 대선을 향한 당내 후보경선에서 친박계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진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일부 친박계 인사들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입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반기문 대망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비박계 주호영 후보를 밀었던 김무성 전 대표는 전대가 끝나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전남으로 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7주기에 맞춰 하의도를 방문한 김 전 대표는 동서 화합의 대권 주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비박계 잠재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이날 한 시사 월간지와 국회 의원회관에서 내년 대선을 주제로 공동 대담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외에 ‘새한국의 비전’을 출범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오는 17일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 방문길에 오를 예정이다.

정 전 의장은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을 배출한 오성운동 진영의 디지털 정당을 포함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형태를 직접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정치와 접목 가능성을 연구할 계획이다.

정 전 의장은 또 내달 하순 외교, 저출산 고령화, 복지, 재정 등 국가가 직면한 장기 과제 해결을 위해 석학들과 함께 끝장 토론을 개최를 준비 중이다.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친박계 또는 충청권 의원들은 올해 말 임기를 마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관측된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역할론을 등에 업고 킹메이커로 나설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