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신격호ㆍ신동빈 소환 조사 후 불구속 기소 움직임

“수사 계속해야” VS “더 이상은 무리” 검찰 내 미묘한 갈등 조짐

정ㆍ관계 로비 정황 밝히는데 부담감 한계… “본전도 못 건진 수사” 논란

롯데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움직임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수사를 재개했다. 당초 검찰이 곧바로 수사를 하지 않고 수사 방향과 일정 조정 등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를 깨고 발걸음을 재촉해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이 부회장의 발인이 끝나고 장례 절차가 종료되자 정신 고를 틈도 주지 않고 그룹 차원에서 조성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비자금의 용처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당초 지난달 말경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1),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62), 소진세 사장 등 그룹 핵심 관계자 3~4명을 소환할 계획이었다. 이 부회장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내부에서는 신동빈 회장 소환 일정 등 수사 일정을 전면 재조정하는 움직임이 감지됐다.

검찰은 롯데그룹 관계자에 대해 검찰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 판단하고 장례절차와 관련 없는 롯데그룹 임원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만 수사를 계속 진행해 왔다.

장례식 이후 검찰의 움직임은 속전속결 형태로 진행되는 듯 보인다. 이미 검찰은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장례식이 끝나자 롯데 총수 일가를 향해 곧바로 칼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격호 신동빈 등 핵심인물에 대한 본격 소환 수사도 조만간 추진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최근 검찰 수사를 두고 “롯데 수사 오래 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의혹규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동안 제기돼 온 의혹 중 일부만 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 “윗선에서 롯데 수사를 서둘러 종결하라는 주문이 있었다”는 말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이 부회장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검찰 수뇌부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검찰이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서둘러 수사를 마무리할 경우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더구나 변죽만 울린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여론이 청와대까지 압박할 가능성도 커 수사 방향을 둘러싼 검찰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위기의 검찰’ 체면 살리기

검찰은 일단 롯데 수사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이 부회장이 남긴 유서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수사 위축 우려를 일축했다.

수사나 범죄 혐의 입증은 증거에 의한 것이므로 유서 한 장으로 상황이나 기존 수사방향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유서를 통해 “롯데그룹 차원의 비자금은 없으며, 2015년까지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4)이 모든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서 내용을 크게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을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어떻게 수사할지를 놓고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거처를 직접 방문해 피의자 조사를 벌일 계획이며, 실질적인 업무지시가 있었는지 업무를 총괄한 실무자가 신격호 총괄회장 외 누구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파헤칠 방침이다.

롯데가(家) 고소ㆍ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지난 1월 한 차례 신격호 총괄회장을 찾아가 고소인·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사능력이 뚜렷한 것으로 파악했지만 현재 신격호 총괄회장의 상태는 이때보다 더 나빠져 제대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우선 신동주 전 부회장을 바로 불러들였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지난 1일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혐의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 경영비리 수사 시작이후 검찰에 소환된 첫 번째 롯데 총수일가 인물이다.

검찰이 총수일가를 장례식 직후 바로 부른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수사 마무리를 위해 롯데 경영진 등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로열패밀리를 바로 겨냥하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난 10여년 간 그룹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린 뒤 수백억원대의 급여를 챙기는 등 공금을 착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등기이사로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거액의 급여를 받아간 혐의에 대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신동주 전 부회장이 횡령한 회사돈이 4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검찰은 일하지 않고 거액을 급여받은 이유, 탈세·비자금 여부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다.

또 검찰은 신동주 부회장을 통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롯데 그룹 비리 의혹 전반을 함께 조사 중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조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탈세와 횡령, 배임 등 지난해 '형제의 난' 당시 제기됐던 비리 의혹에 집중될 것이라는 말이 적지 않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 동생 신동빈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들도 이번 조사 내용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이후 다음 소환 대상자는 바로 신동빈 회장이다. 검찰은 이번 주 중으로 롯데그룹 핵심 관계자들의 조사를 마무리한 뒤 신동빈 회장의 소환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두 형제의 소환을 통해 신동주·동빈 경영권 분쟁을 구체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는 관측과 더불어 “지난해 ‘형제의 난’과 관련해 당시 불거진 각종 비리 의혹을 대질 등 여러 방법으로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롯데 수사 길게 끌지 말 것

이와 함께 검찰은 계열사간 부당 자산거래나 총수 일가 소유 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비자금 조성·탈세 등 각종 의혹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의 소환도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주 전후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 다음 조사 대상이 바로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고령이고 치매증상으로 인한 한정 후견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어서 직접 소환조사보다는 서면조사나 방문조사 가능성이 높아 신격호 총괄회장에 대한 조사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 수사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될 것이며 세간에 제기된 의혹들 중 대부분이 무혐의로 결정되고 가벼운 혐의 일부만 기소처리 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검찰이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 등에 대한 조사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명백히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만 사법처리 대상을 결정하고 추석 전후 롯데그룹 비리 의혹 전반에 걸친 수사를 매듭지을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검찰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벌써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무조건 털고 보자는 식으로 수사하다 자살사건이 터지자 꼬리를 내리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검찰의 수사력과 수사방법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같이 일어나고 있다.

검찰 소식통은 “검찰은 그간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중심으로 진행해 온 수사 방향을 유지하면서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주요 소환 대상자로 정해진 이들은 모두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은 소환대상자는 참고인 신분으로 한 차례 조사를 받았던 소진세(66)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 신동빈 회장,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57)씨 등이다.

롯데 수사가 변죽만 울리다 서둘러 마무리될 것이라는 비판 섞인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검찰이 그동안 롯데 총수 일가의 각종 비리 의혹을 입증할 상당한 정황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추가 확인작업을 보태지 않고 지금까지 확보된 자료만으로 기소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이미 상당한 정황증거와 롯데 관계자 진술을 확보했고 혐의를 입증할 각종 자료 분석도 상당부분 마무리했다”며 “자료 분석 등으로 비리 추적에 상당한 진전을 봤다. 때문에 총수 일가에 대한 혐의 입증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여간 진행한 수사를 통해 물적 증거를 다수 확보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무엇보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형제의 난’이 벌어지기 전인 2014년까지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탈세와 횡령·배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직접 지시한 정황증거를 확보해 사법처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신격호 신동빈 등 오너 일가에 대한 소환 조사가 끝난 직후 그룹 비리 관여자들을 일괄 사법처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최근 롯데 내부에서는 고 이인원 부회장(정책본부장)의 자리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롯데가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조기 인사를 단행할 수도 있다며 차기 인물에 관심을 모은다.

8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5위의 롯데가 검찰 수사로 위기에 몰린 시점인 만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부회장자리를 공석으로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수사 끝에 올 수 있는 신동빈 회장의 유고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롯데 주변에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차기 부회장이 곧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롯데그룹 내에서는 이미 한달 전부터 ‘조기 인사설’이 나오고 있다. 후보는 소진세 사장(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사장(정책본부 운영실장) 3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3인 모두 검찰 수사대상이어서 롯데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을 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