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지진에 취약, 영남 초토화 시나리오

경주 지진 이후, 국가 차원 단층조사 필요성 제기

전문가들마다 견해 달라 혼란만 가중 해외 전문가 필요

경주 인근에서 지난 12일부터 발생한 지진으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국가 차원의 지질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주장했지만 경주에서 규모 5.8의 역대 최고 강진이 발생한데 이어 일주일 뒤인 지난 19일 다시 규모 4.5의 여진이 발생하자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불안한 부분은 경주 부근의 원자력발전소다. 경북 동해안과 부산 기장 일대에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원전이 밀집해 ‘작은’ 원전 사고라도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지진으로 파괴되는 등 피해를 입을 경우 나라 전체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건 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들의 견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원전의 내진 설계기준에 대한 적정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각 정부부처는 지진 대비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지진의 원인과 영향, 원전 내진성능 현황, 내진성능 보강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1일 에너지 안전 자문위원회 원전 분과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 참석한 지진·지질·원전안전 전문가들은 국가차원의 지질·단층조사, 지진원인 정밀분석, 지진 위험도 평가 등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단기적인 지진 대응 대책보다는 장기적이고 정밀한 조사·분석을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내놓은 결론이다. 또 이번 지진은 원전 내진 설계기준 이하로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보다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원전이 위치한 지역주민들은 물론 원전 전문가들은 강력한 지진에 대비한 내진성능 평가, 보강을 검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최근 “원전 내진 안전성에 대해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협력해 통섭적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하고, 특히 정확한 사실관계, 과학적 분석에 근거해 논의해야 한다”며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과학적 지질구조 분석 결과가 나오면 원전의 내진성능과 내진 설계기준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취약점이 발견되면 설비 보강·교체 등을 통해 내진성능을 보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원전 마피아 수사에서 드러났듯 숨어있는 부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뚜렷한 대책 없는 회의

국민안전처는 23일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지진대응체계 관계부처 및 지자체 점검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경주 지진 발생 이후 각 기관별 조치사항 점검과 함께 지진 대비 원전안전 확보방안 수립 등 기관별로 추진중인 지진대책을 논의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지진방재 개선대책에 대한 과제별 추진상황도 함께 점검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전(全) 원전 25기와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진행 중이며 향후 대규모 지진에 대비해 원전 및 방폐장 대상 내진성능, 방재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진방재 개선대책 과제별 추진상황으로는 국민안전처는 국내 내진설계공통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지진ㆍ화산재해대책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국민안전처는 이날 점검회의를 계기로 지진 대응 시 확인된 문제점을 신속히 보완하고, 공공ㆍ민간 시설물 내진대책 마련, 지진대응 교육·훈련 확대 등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는 과제는 조기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울러 다른 부처도 앞다투어 지진 관련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경주 현장심리지원단을 통해 재난피해자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특별재난지역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 경감 및 국민연금 납부 예외 등 긴급생활안정지원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진피해 문화재 및 고도지구 한옥 긴급복구 명목으로 예산 54억원을 지원하고, 긴급보수인력을 투입해 문화재 및 경주시내 한옥가구 수리를 돕고 있다.

기상청은 국민안전처에서 발송하던 지진관련 긴급재난문자(CBS)를 직접 송출해 신속히 국민에게 전파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행자부는 내진보강대책을 추진하는 민간건축물에 대해 지방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지방세(취득세·재산세) 감면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내진설계 의무대상을 3층이상 500m에서 2층이상 500m로 확대하고, 기존 건축물을 내진 보강하는 경우 건폐율과 용적률을 완화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해 관련법을 입법예고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초등학생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안전한 생활' 교과서를 개발하고, 이재민 수용시설 기능을 할 수 있는 지역별 재난거점 학교를 선정할 계획이다.

정부부처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예컨대 부산 기장군을 비롯한 원전 소재 기초단체들은 최근 주민이 참여하는 원전 안전점검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2일 오후 3시 기장군청에서 이번 지진과 관련한 원전소재 지자체 행정협의회 긴급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등 원전 소재 지자체 관계자들은 지난 2009년부터 3년 동안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실시한 ‘한반도 활성단층지질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원전 소재지 인근에 활성단층 지질조사 용역을 실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원전이 위치해 있는 지역의 지자체 관계자들은 “원전 사업자의 원전안전에 대한 자체 점검을 지역 주민들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외 지진 전문가와 원전소재 지자체,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총체적인 안전점검 시행 요구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민들 “셀프 대책 못 믿어”

지진에 대한 조사나 대비에 미흡했던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경북 경주 지진이 발생한 양산단층이 부산~거제 해역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활성단층이라는 연구 결과를 파악하고서도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추진한 것으로 최근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위험요소를 알면서도 원전 건설을 강행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2일 “한수원이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해양수산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지진활동분석 보고서를 신고리 5ㆍ6호기 허가 전에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은 이날 배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지진 관련 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배 의원에 따르면 이날 보고에서 한수원 측은 해당 보고서 내용을 파악했던 사실을 부인했다가 계속된 질의 과정에서 인지 사실을 털어놓았다.

한수원 측은 “하나의 연구결과이고 학계 공론화가 안 된 내용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보고서는 양산단층군에 속하는 일광단층이 현재까지 반복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원전 건설 전 최소한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그때까지 건설을 유보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보고서 자료를 배포하며 “양산단층과 인접한 일광단층이 활성단층임을 확인한 사실이 들어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번 해양과학기술원의 연구를 통해 해역의 지진위험성이 확인됐다”며 “주요 국가연구기관들이 수년 전부터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임을 확인해놓고서도 원전지역 단층 정밀조사는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지만 한수원 측은 “안심해도 된다”는 입장이어서 혼란이 일고 있다.

원전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한수원은 지난 20일 국내 원전이 규모 6.5~7.0에서도 견딜 수 있어서 최대 5.8 규모인 이번 지진에 별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또 국내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치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강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원전의 내진설계값은 0.2g(규모 약 6.5에 해당)이며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3, 4호기부터는 0.3g(규모 약 7.0) 수준으로 강화된다.

내진설계 값 단위인 최대지반가속도(g)는 실제 지진의 힘을 표현한다. 진앙에서 발생한 규모가 아니라 원전부지에서 감지되는 지진력을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지진동값이 0.1g 이상이면 원자로를 수동으로 정지해야 하고 0.2g 이상이면 자동으로 정지된다. 한수원은 이번 경주 지진 때 정지기준인 0.1g를 초과한 월성 1~4호기를 수동 정지한 바 있다.

한수원은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 원전이 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 가압경수로(PWR) 방식인데 일본 원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비등경수로(BWR)방식보다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사고 땐 대한민국 초토화

한수원은 “일본 원전은 원자로 내의 냉각수를 직접 끓여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운전하지만 우리는 이를 분리했기 때문에 외부로 방사성 물질 누출 가능성이 적다”며 “만약 노심이 녹아 수소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원전은 일본 비등경수로 방식과 달리 전기 없이 동작하는 수소재결합기가 있어 수소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일반 토사지반이 아닌 암반 위에 지어져 안전하다는 게 한수원 측의 주장이다.

한수원은 “원자로 격납건물은 단단한 암반을 굴착해 조밀하게 철근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해 짓는다”며 “단단한 암반층에 지은 원자력발전소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토사지반에 건설된 건물보다 30~50%정도 진동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격납건물 등 주요 건물과 기기에 지진계측기 등 첨단 감시체계를 갖추고 지진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수원은 강조했다.

현재 경북 동해안에는 경주 월성원전 6기, 울진 한울원전 6기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기장의 고리원전은 세계 최대원전단지로 꼽힌다. 현재 운영 중인 6개의 원전(고리 1~4, 신고리 1ㆍ2호기)에 시운전 중인 신고리 3·4호기와 정부가 건설을 승인한 신고리 5ㆍ6까지 합하면 10기다.

이와 관련해 신고리 5,6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중대사고 항목을 제외하고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자력안전과미래’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전건설허가 신청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평가서는 가동 중 원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방사능 배출을 분석하여 환경오염, 주민보호, 비상계획 등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원안위 고시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중대사고를 평가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였으나 2016. 6. 30.자로 중대사고 평가를 포함하도록 고시를 개정하였음에도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중대사고 평가를 예외적으로 제외하는 것을 원안위가 허용했다.

이에 원자력안전과미래는 중대사고를 고려한 방사선영향평가를 예비분석하고 이를 기존 방법에 의한 결과와 비교를 통해 그 차이를 분석한 자료를 내놓았다.

그 결과를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고리 원전지역의 100만kWe(설비용량) 원전을 기준으로 극한사고를 가정하여 계산한 결과 고리 주변 80km이내 700만명에 대해 7일 이내 조기사망자 수 1만1600명, 50년간 누적 암사망자 수 200만명으로 기존 설계기준사고를 고려한 평가결과에 비해 40배 이상 높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원전인 140만kWe급 원전(신고리 3, 4, 5, 6호기)의 경우 용량 비율로 1.4배임을 감안하면 극한사고를 가정하여 계산한 결과 신고리 3, 4, 5, 6호기 중 어느 한 원전에서만 극한사고가 나더라도 고리 주변 80km이내 700만명에 대해 7일 이내 조기사망자 수 1만6240명에 이르고 50년 간 누적 암사망자 수 280만명으로 계산결과가 나왔다.

이는 1개 원전에 극한사고가 날 경우 이러한 결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고 여러 개의 원

전이 동시에 사고가 나면 피해가 더욱 크게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자력안전과미래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하여 중대사고를 반영하여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고 의견수렴절차도 밟아야 한다”며 “중대사고 반영한 방사선환경평가에 따라 비상계획구역 재설정 등 전국적인 방재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중대사고를 감안한 환경영향평가는 기존의 80km 구역을 초과한 전국토 영역에 대한 종합대책을 요구하므로 이를 기반으로 전 국토를 확장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