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ㆍ박원순ㆍ안철수 ‘봉기횃불’ 놓고 사활건 경쟁

박근혜정부 향한 분노한 민심 잡기 위한 또 다른 ‘대권 전쟁’,

박원순, 연일 강공드라이브…박 대통령 하야 조건으로 대선 불출마도

안철수, 박 대통령 하야 주장…서명운동도 나서 차별화 시도

문재인, 신중한 입장에서 ‘중대 결심’등 강공으로 전환

이재명, 현장에서 목소리 높여…안희정, 조용하게 존재감 드러내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간극이 좁혀지는 듯 벌어지고 있어 야권이 이번 혼란을 틈타 복잡한 정치적 계산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두 번째 담화 내용을 ‘알맹이가 빠진 반성문’으로 규정하고 정권퇴진 운동에 적극 동참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까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검찰 수사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파문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최순실씨 개인의 불법행위로 청와대가 규정하고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수용하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 야권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야권 대권 주자들의 행보는 그 어느 때 보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분주하다. 이번에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듯 다른 야권의 시각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분노하는 민심에 전혀 대답이 되지 못했고 진정성이 없는 개인 반성문에 불과했다”면서 “국정을 붕괴시킨 뿌리가 대통령 자신임을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대표는 “심지어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있다”면서 “비리 몸체인 대통령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는 특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법에 의해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이어야 한다”며 별도특검 수용도 추가로 요청했다.

그러나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자신도 검찰 수사에 임할 것이며 특검 수사도 수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잘한 일”이라며 “지금까지 대통령이 해오던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박 비대위원장은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 말씀한 것도 환영한다”면서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미심쩍게 생각하지만, 국민 반응도 주시할 것”이라며 일부 각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대표 회담에 대해서도 추 대표는 3가지 전제 조건을 들어 유보적 태도를 취했지만, 박 위원장은 “내가 (회담을) 받겠다고 했는데 안 해주면 어떡하느냐”며 사실상 수용 방침을 시사했다.

야권의 대권주자들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지명과 대통령 검찰 조사 국면에서 존재감 부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 마비 상황이 전개되면서 야권 주자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지지율 선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하야’라는 직접화법을 구사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습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초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등 과감하게 돌진하고 있어 지지층이 결집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그동안 발언수위가 가장 높았다. 그 덕분에 지지율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면서 이번 국면이 야권의 대선 경쟁구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3일 청와대 비서실 인선에 대해 구체적 반응을 하지 않는 등 말을 아꼈다. 야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요구 여론이 높은 것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도 침묵을 지켰다.

문 전 대표는 전날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다면 저도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야권 안팎에서는 문 전 대표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발언이 갖는 무게감이 큰 만큼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야권의 전통적 지지층의 정서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중도층 포용까지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횃불 들고 앞으로 가는 잠룡들

안 전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박 대통령 퇴진 요구가 나오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박 대통령의 하야를 거듭 촉구하는 등 경쟁적인 자세를 취했다.

안 전 대표는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을 하루빨리 물러나게 하고 오직 국민의 힘으로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정의의 길로 용감하게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안 전 대표가 국회 입문 후 대표연설을 제외하고 본회의 자유발언을 신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의 행보에 그만큼 다급했던 것 아니냐”고 분석한다.

안 전 대표보다 하루 먼저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던 박 시장은 안 전 대표 발언이 있던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죄가 분명하다면 얼마든지 탄핵 등의 길이 열려 있는 것”이라고 수위를 높였다. 박 시장은 ‘조기 대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국민의 요구와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 시장은 청계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원색적 표현을 주저하지 않고 있는 이재명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 글에 탄핵절차 착수를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이 시장은 “광화문 하야 촉구 촛불을 박근혜 탄핵, 새누리 해체 횃불로 바꾸자”라고도 했다.

또 김부겸 의원도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김 총리 내정자에 대해 “충심을 이해하지만 지금의 난국을 풀어갈 해법은 사람과 능력에 있는 게 아니라 절차와 명분에 있다. 총리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국회 추천을 받아 총리를 임명하라고 고언했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 나서야 한다. 야당이 거리에 서게 되면, 국민이 직접 나서면 촛불은 항쟁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와 박 시장의 강공 드라이브는 최근 가장 먼저 성명을 발표하며 지지율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는 이 시장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18명을 상대로 실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는 이 같은 판도의 미세한 변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문 전 대표가 지난주 주간집계 대비 0.6% 포인트 오른 20.9%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치고 15주째 만에 1위로 올라섰고, 반 총장은 같은 기간 4.4% 포인트 하락한 16.5%로 2위로 내려앉았다.

안 전 대표는 0.2% 떨어진 10.3%로 그 뒤를 이은 가운데 이 시장은 3.8% 포인트 상승한 9.7%로 치고 올라와 안 전대표를 턱밑까지 쫓아왔다. 뿐만 아니라 박 시장(5.7%)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하야요구에 동참=민심 확보

야권 대권주자들은 지난 4일부터 ‘대통령 하야’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안 전 대표, 박 시장, 이 시장 등 야권 대권주자들은 이날 일제히 박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했다.

안 전 대표는 “대통령이 외교를 포함한 모든 권한을 여야 합의총리에게 이양하고 즉각 물러나야 한다는 게 국민들의 요구”라며 “그것만이 사상 초유의 국정붕괴 사태를 끝내고 국정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통령은 최순실 개인의 일탈 문제로 전가하면서 대통령 자신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발표했다”며 “총리 문제는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사실상 국정을 계속 주도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안 전 대표 측은 이날부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서명운동’에도 돌입했다. 일단 온라인 서명부터 받고, 주말부턴 오프라인 서명운동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박 시장은 대선 출마 포기까지 불사하며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박 시장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 (담화를 보며) 국민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판단이 옳았다는 확신을 더 분명히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판국에 무엇 버리지 못하겠나, 무엇 챙길 것이 있나”라며 “국정의 공백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체제 만드는데 힘이 된다면 제가 가진 것 모두 버리겠다”고 했다.

야권 주자 중에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가장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안 지사는 “국정 수습과 관련한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음이 다시한번 드러났다”면서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진 않았다.

다만 “대통령은 즉각 의회, 특히 야당에 국정 수습 권한을 넘기고, 의회의 뜻에 반하는 개각과 인선은 중단하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 퇴진론에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추 대표는 박 대통령 담화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조건부 퇴진요구를 했다. 추 대표는 △최순실게이트에 대한 별도특검과 국정조사를 수용하고 대통령도 수사에 응할 것 △권력유지용 일방적 총리지명 철회하고,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할 것 등 2가지를 요구했다. 이런 요구사항을 박 대통령이 거부할 경우 “국민과 함께 정권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권퇴진운동의 구체적인 방식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는 “요구사항이 수용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말을 아꼈다.

이 중 박 시장의 행보가 가장 주목을 끈다. 그만큼 야권의 대권구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박 시장이 박 대통령 퇴진을 내걸고 ‘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전면에 나서자 야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2일 발표한 박 시장의 긴급성명은 지난 5ㆍ18 광주민주항쟁 36주년 당시 ‘민맹의 정치’ 발언 이후 가장 수위가 높다. 더구나 현직 서울시장이 퇴진 요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성명 발표에 그치지 않고 즉각 행동에 돌입하는 등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규탄운동 동참을 추진하고 있어 야권의 셈법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박 시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동참할 계획이다.

하야ㆍ탄핵과 선을 긋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비상 시국회의 참가를 촉구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문 전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거취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 시장은 더민주의 이같은 태도에 매우 비판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의 이날 긴급성명은 정부의 전격 개각 발표 때문에 다소 앞당겨졌다. 그동안 사회 원로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으며 시국의 해법을 고민한 결과 대통령 퇴진으로 결론내리고 원고까지 이미 완성해놓았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박 시장은 ‘최순실 정국’을 이끌 현장 민심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대선출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