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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힐러리의 몰락, 박근혜의 추락…최순실과 애버딘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여론에 투영된 두 여성 리더의 3대 공통 악재
치명적인 스캔들과 ‘문고리’ 권력, 소통부족…공사 구분 못해 신뢰 크게 흔들려
최순실과 애버딘…공식과 비선의 차이에도 불구, 리더의 앞길에 걸림돌 공통점
[전문가칼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매직넘버 '270'이라는 숫자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세계 3위의 면적과 인구를 보유한 GDP 세계 1위 초강대국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은 탄생되지 못했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악동, 아웃사이더, 미스터 불확실성으로 명명돼 오던 미국 정치판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압승을 거둔 것이다.

박빙의 승부도 아니었다. 피말리는 접전이 예상됐던 경합주에서 거의 대부분 공화당의 깃발이 올라갔다. ‘내 과거를 돌려 놓으라’고 이야기하는 백인 남성들의 분노는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 지지율 56%의 오바마 대통령도, 오바마 대통령보다 인기 있는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응원도 결정타가 되지는 못했다.

마치 19세기 카우보이를 연상케 하는 마초맨의 거침없는 하이킥에 힐러리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트럼프가 이긴 선거라기보다는 힐러리가 진 선거로 분석되는 이유다.

선거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예술이다. 가장 많은 유권자 그룹이 백인이라면 이들 계층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했는데 힐러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남편의 백악관시절부터 익숙했던 선거대책본부장인 존 포데스타의 전략에 너무 의존하고 익숙했던 건 아니었을까.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이긴 했지만 ‘풍요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느끼는 백인 유권자들에게 힐러리는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셈이다.

이런 탓에 올해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를 석권한 시카고 컵스에 드리워졌던 ‘108년 염소의 저주’가 시카고 리글리 구장을 떠나 힐러리에게로 옮겨갔다는 비아냥거림마저 터져 나온다. 정말 그랬다면 존 포데스타의 머리를 빌리지 말고 염소의 저주를 풀어낸 컵스 구단주 테오 엡스타인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

인구 구성에서 10%를 조금 넘는 흑인과 히스패닉 그리도 10%조차 넘지 않는 아시아계 유권자들을 아무리 공략한다 하더라도 69%나 되는 백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필자는 올해 9월29일 데일리한국 『트럼프-클린턴, '진짜 대통령' 가려내는 5대 지표』에서 이미 예상한 바 있음)

대부분의 여론조사와 선거 예측 모델도 정확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만으로 결과 예측을 시도하는 기법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는 반쪽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자료를 추가적으로 더 포함해 분석하고 정교하게 예측을 시도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자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될 도시외곽 중산층 이하의 백인 남성은 조사 참여율이 낮은 즉 여론조사 전화를 받더라도 거절율이 높은 계층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주나 대도시 지역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개인적 주거 환경과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같은 지역 내에서도 투표 성향이 과거와 달리 훨씬 다양해졌다.

여론조사 결과와 경제 수준, 학력 정도, 주거 환경 등의 추가 지표만을 투입해 부분적인 여론을 전체 여론 값으로 가중 처리할 경우 이전과 달리 부정확성은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

결국 더 정확한 예측을 위해서는 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는 방법과 획일화된 지표가 아닌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더 치밀하게 밝혀낼 수 있는 다양한 지표가 반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힐러리 당선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힐러리 참패의 원인은 곧 트럼프 당선의 배경이 되었다.

힐러리 참패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데는 우리나라의 사정과 너무나 닮은 점이다. 박 대통령은 미국보다 빨리 유리천장을 깨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지만 현재는 정치적으로 추락한 상황이 되었다. 힐러리의 몰락과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우선 치명적인 스캔들이 있다. 둘 다 공교롭게도 PC를 통해 전달된 이메일로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힐러리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며 개인적인 이메일로 공적 업무를 본 일이 들통 나 버렸다. 수사를 받았고 '혐의 없음'으로 나왔지만 유권자들의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왔다고 해도 유권자들의 '의심'까지 지워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조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구체적인 잘 못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답한 부분은 유권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경선 막판까지 경합했던 버니 샌더스 후보는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해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미국 국민들은 국민들의 혈세로 급여를 받는 공적인 자리에서 개인 이메일을 통해 지인들과 수없이 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은 힐러리를 절대 이해하지 못했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은 대통령이 되기엔 분명 결격사유다. 실제로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던 미시건과 위스콘신 그리고 과거 6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던 펜실베이니아 등의 초경합주에서 민주당 지지층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미시건 주는 백인 유권자 등록 비율이 70%가 넘는 곳이다. 선거일을 열흘 앞두고 ‘이메일 스캔들’을 다시 터뜨린 FBI의 재수사 발표는 결국 힐러리의 발목을 움켜잡고 말았다. 도덕성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고, 그것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유권자들의 뇌리에 기억됐다.

TV토론이후 벌어졌던 두 후보의 격차는 점차 오차 범위내 수준까지 좁혀지는 등 판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선거 시작시간 불과 48시간 전에 FBI 코미 국장이 수상 종결을 발표했지만 버스 떠나고 난 뒤 손 흔들기였다. 이번 美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을 굳이 꼽는다면 코미국장이 거론될 것이다.

이메일 스캔들로 2차 타격을 받은 힐러리는 그 시점부터 침몰 중에 있었다. 이메일 스캔들 타격은 주로 경합주로 향했다. 이번 선거에서 전국 득표는 수십 만 표 힐러리가 앞섰다. 힐러리가 사랑한 야구팀인 시카고 컵스를 향했던 ‘염소의 저주’는 이번엔 힐러리를 정조준했다.

2000년 선거에서는 남편인 클린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당선되었고 다음 대선후보로 나섰던 앨 고어가 득표에서는 이기고 선거인단 수에서 지는 똑같은 불운을 겪었다. 선거 직전 많은 전문가들은 막말 파동으로 악동 이미지가 굳어진 트럼프의 경합주 약세를 예상했다.

그러나 끝끝내 이메일 스캔들이 힐러리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2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플로리다 주를 비롯해 오하이오,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핵심 경합주가 모두 트럼프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 경합주들은 오마바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모두 이긴 지역들이다(그림1).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현재 매우 높은 곳이다.
  • 그림1
문제는 이 지역들이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가 아닌 샌더스를 선택한 지역이라는데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는 미시건 주에서 예상을 깨고 힐러리를 격파했다. 위스콘신도 샌더스의 승리였다. 이른바 러스트벨트(Rust Belt: 철강 자동차 산업 등으로 호황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공장의 해외 이주, 신산업 등장 등으로 쇠락해버린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의 중서부 지역)에서 샌더스를 지지했던 고학력 중산층 도시 생활자들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민주당은 참담한 결과를 맛보았다. 이메일 스캔들의 늪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첫해 60~70%대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기록했다. 임기 4년차가 되면서 절대 지지층인 콘크리트 지지층만 남았지만 20~30% 정도의 지지율은 유지했다. 갖은 악재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간 감춰왔던 ‘비선 실세’ 게이트로 일순간에 무너졌다. 대한민국도 놀랐고 전 세계도 놀랐다. 투표자들의 절반 이상인 51.6%가 선택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거의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붕괴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가장 많은 응답은 ‘최순실’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국민들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고 현재도 대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온 국민을 공분으로 몰아넣은 ‘최순실 게이트’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연설문과 정부의 각종 자료를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에게 전달한 전대미문의 스캔들이다. 이때의 수단이 이메일이었다. 정부의 중요 자료를 공식적인 채널이 아닌 비선에게 이메일로 보낸 탓이다. 두 사람 모두 ‘이메일’로 비롯된 추락이고 몰락이라는 점에서 너무 닮았다.

다음으로 힐러리와 박 대통령의 공통점은 ‘문고리’ 권력이다. 힐러리의 1차 이메일 수사는 부동층의 향방을 결정하는 대선 TV토론 전에 이루어졌다. 유권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더라도 TV토론에서 능수능란한 답변으로 불식시킬 기회가 있었다.

힐러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세 차례의 TV토론 후에 트럼프와 격차를 벌여나갔다. 매스컴에서는 압승하리라는 대세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선거일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FBI의 이메일 재수사는 악재 중의 악재였다.

그런데 이 악재가 힐러리의 최측근 문고리 권력이 진앙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마 애버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수양딸같은 존재다. 문고리 중의 문고리다. 심지어는 남편인 빌 클린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비선인 최순실이 대통령의 옷과 헤어스타일까지 다 챙겼던 것처럼 애버딘 역시 힐러리의 머리 손질부터 외교 실무까지 빼놓지 않는 문고리 권력이었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애버딘은 공식 비서였고 최순실은 일개 비선이라는 차이가 있다. 힐러리와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권력 서열 운운된 것까지 판박이처럼 똑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힐러리 주변 권력을 분석하며 ‘캠프내 서열 1위는 선대위 본부장 존 포데스타, 2위는 로비 무크 선대위 사무장, 3위는 후마 애버딘’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애버딘에 대해서는 ‘사실상 선거 캠페인의 총감독 겸 힐러리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더 놀라운 일은 힐러리와 애버딘의 관계 출발이 최태민과 박 대통령의 관계처럼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힐러리와 애버딘의 관계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버딘은 1996년부터 백악관 인턴이었는데 당시 르윈스키의 마음이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에게 향했다면 애버딘은 힐러리를 향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란 ‘르윈스키 스캔들’ 이른바 ‘지퍼 게이트’의 황망한 시기에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었다는 설명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버딘이 사실상의 비선으로 감지되자 미국 언론들은 애버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갔다. 급기야 경쟁 정당인 공화당의 미셸 바흐만 하원의원이 2012년 애버딘과 관련해 피어오른 각종 의혹에 대해 힐러리에게 묻고 수사기관의 조사를 요청했다. 그렇지만 힐러리는 모든 의혹을 낭설이라며 일축했다.

민주당 정권 아래 수사기관도 ‘근거 없다’며 현존하는 권력자인 힐러리 앞에 꼬리를 내렸다. 섬뜩할 정도로 박 대통령이 최태민 일가의 각종 의혹에 대응한 태도와 정확히 닮은 꼴이다.

트럼프와 관련된 기관으로부터 평생공로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FBI 코미 국장의 수사 레이더망에 포착된 인물도 애버딘과 관련있다. 지금은 전 남편인 워너 전 하원의원의 섹스팅(성적인 채팅을 하는 온라인 대화창)에 대한 수사 와중에 애버딘이 연결되었고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로 이어졌다. 애버딘의 경우처럼 주변의 사람들은 그리고 국민들은 문고리 권력의 실체를 이미 감지하고 있다.

결국엔 당사자만 잘 몰랐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갤럽의 자체조사로 지난 1~3일 실시하고 4일 발표한 조사(전국1005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 가중치적용 응답률27%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부정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 결과 ‘최순실/미르·스포츠재단’이 49%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 ‘소통미흡/너무 비공개/투명하지 않다’, ‘리더십 부족/책임 회피’, ‘주관/소신 부족’,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인사 잘못함/검증되지 않은 인사 등용’ 순으로 나타났다(그림2).
  • 그림2
대통령을 부정 평가하는 내용 중에 특정 정책이 들어있지도 않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을 일찌감치 감지해냈다. 대통령을 부정 평가하는 내용을 종합해석하면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등용하여 너무 비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아 국정운영이 원활하지 않고 리더십이 부족해 보인다’이다. 이쯤 되면 검찰수사 전에 문제점을 고스란히 콕 집어낸 셈이다.

마지막으로 힐러리와 박 대통령의 공통점은 소통부족이다. 미국 최고의 로스쿨 중 한 곳인 예일대를 졸업했고 8년간 퍼스트레이디였고 뉴욕주 상원의원이었고 세계 최강국 미국의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더 잘난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박 전 대통령 재임시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경력도 판박이다. 국회의원과 정당의 대표도 역임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한국 정치사에 이보다 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여성 정치인이 있을까.

하지만 국민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권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힐러리는 소통의 달인인 남편 빌 클린턴을 두고 있지만 소통 감각을 제대로 익히지는 못한듯 하다. 문고리 권력인 애버딘을 경계하라는 충언을 단칼에 무시한 것은 결정적인 오판이다. 공식적으로 힐러리의 좋은 정치적 동반자가 되어줄 버니 샌더스를 어려워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에 다수의 민주당 지지층들이 원했던 것처럼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인 케인 대신 샌더스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함께 했다면 경합주의 성적은 어땠을까.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문고리인 애버딘을 거쳐야만 힐러리와 소통이 됐다는 사실은 듣는 이들을 경악케 한다. 힐러리의 외교자문역인 리처드 훌브룩과 부통령을 역임한 앨 고어 마저도 애버딘을 통해야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남편인 빌도 애버딘의 허락이 있어와 자유롭게 아내인 힐러리와 통화할 수 있다고 털어 놓았을까.

국민과의 소통은 철저하게 도외시하고 비선 문고리 권력과 수시로 대면과 통화를 했다는 ‘최순실 게이트’ 이야기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가 치민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될 법하다. 힐러리의 소통 문제는 그대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전체 유권자의 30%가 훌쩍 넘는 백인 남성들과의 소통은 철저히 외면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자신을 속상하게 만들고 심지어 일종의 ‘지퍼 게이트’ 트라우마까지 만들어낸 남편에 대한 증오일까. 백인 남성들과 살가운 정치적 유대관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백인과 남성으로부터 받은 지지율은 트럼프가 받은 지지율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다(그림3).
  • 그림3. 미국대선유권자 인종비율 2000년 VS 2016년 (단위%)
소통에 적극성이 있고 진정성이 뒤따랐다면 백인 남성 유권자들로부터 본선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을 리 있겠는가. 지난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50대 유권자들과 부산·울산·경남 소위 PK주민들은 박 대통령에게 무한 사랑을 보냈다. 대통령이 되면 잘 하겠지, 누구보다도 진정성 있게 우리 아들 딸 들과 소통하며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그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030 세대와 제대로 소통조차 시도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며 50대와 60대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청년 실업률은 내려갈 줄 모르고 학자금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소통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선거는 끝났다. 힐러리의 추락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 국민들의 몫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관련된 ‘최순실 게이트’는 언제 끝나고 어떻게 끝날까. 화려한 과거와 남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는 두 여성 정치인의 추락과 몰락을 보는 미국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메일 스캔들, 문고리 권력, 소통 아닌 불통. 어쩌면 쌍둥이처럼 똑같을까. 온몸에 소름과 전율이 돋는듯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힐러리 클린턴이 최강대국의 대통령 자리를 욕심내기 이전에 바닥 민심에 더욱 귀기울이고 소중하게 받들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박 대통령이 과거의 인연, 현재의 익숙함을 벗어나 정말 국민만 보고 국민과 진솔한 대화 나누기에 나섰더라면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으로 지금 서 있을까.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다. 만시지탄이다. 용기 있는 충언은 시간이 지나고 나야 금과옥조로 다가온다. 눈과 귀를 가리는 불통의 허들을 뛰어넘어 국민과 돌직구 소통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힐러리와 박 대통령은 왜 ‘삼국지’에 나오는 고순 같은 측근을 가까이하지 못했을까.

고순은 조조의 숙적이었던 동탁의 오른팔 여포의 부장이었다. 당대 권력자였던 동탁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여포 주변에는 각종 청탁과 유혹이 끊이질 않았다. 왕윤의 수양딸인 초선의 미모에 홀려 정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순은 여포와는 달랐다. 청렴결백했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떤 선물이나 뇌물도 받지 않았다. 적은 수의 부하를 거느렸지만 위엄을 갖춘 맹장 고순의 수하에 약졸은 없었다.

더 돋보이는 대목은 보스인 여포에게 간언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저 집과 국가가 망하게 되더라도, 충신과 지혜로운 자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행동에 임하실 때 깊이 생각지 아니하시며 금세 기꺼워하여 잘못된 말씀을 하시니 그 실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힐러리의 옆에, 박 대통령의 곁에 '제2의 고순'이 있었는가?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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