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박대통령, 정치권 특검vs 엘시티 수사…창과 방패 대격돌

檢 “朴대통령, 피의자 전환 가능성”… 청와대 다음 카드는?

‘엘시티 비리’ 정ㆍ관계 인사 다수 연루설…박 대통령 압박 걸림돌

특검ㆍ국정조사 실효성 의문 제기돼… 박 대통령 버티기도 걸림돌

정치권이 최순실 특검법을 통과시키면서 청와대-정치권-검찰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현 정권이라는 최대 권력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검찰은 여러 면에서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의 압박도 검찰을 짓누르고 있어 검찰은 샌드위치가 된 처지다.

그렇다고 검찰이 약자는 아니다. ‘최순실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핵심키를 쥐고 있는 것도 검찰이다. 검찰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청와대와 정치권의 권력싸움의 승패가 갈린다. 경우에 따라 검찰에 의해 한쪽은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검찰은 현 정권 비리가 녹아 있는 ‘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정치권의 비리 뇌관인 ‘엘시티 비리’ 수사 두 개의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현 정권의 퇴진을 추진하는 정치권이 유리해 보인다. 박근혜 정권은 이미 사실상 식물정부가 된 상태인데다가 차기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이미 시작됐고, 검찰개혁을 위한 공수처 신설 등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이에 일부에서는 검찰이 지는 태양보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것이라고 전망한다.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를 놓고 현 정권이 헌법에서 보장된 권한을 총동원해 정치권 수사를 진두지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엘시티 비리’ 수사와 관련, “한치의 의혹도 남지 않게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사실상 검찰에 수사지침을 내려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국민적 퇴진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나서자 검찰 내부는 크게 동요하고 있다. 정치권의 요구로 청와대를 수사하는 검찰이 청와대의 지시로 정치권을 수사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어 수사라인에 적지 않은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창과 방패의 대격돌 승자는?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대면조사가 무산된 박 대통령에 대해 지금까지 확보한 진술 등 물적 증거를 종합해 혐의 유무를 판단할 방침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 18일 “오늘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수사팀 입장이었으나 변호인의 어제 말씀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봐서는 결국 오늘도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순실씨 등의 기소 전 대통령 조사가 어려워진 만큼 대통령에 대한 범죄 혐의 유무는 피의자ㆍ참고인 진술과 지금까지 압수수색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확보한 물적 증거를 종합해 증거법상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합리적 판단을 거쳐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최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 구속된 핵심 피의자들의 진술에 따라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역할 등을 적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되면 박 대통령이 피의자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커지는 것이어서 향후 청와대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형사소송법상 신분이 여전히 참고인인지 여부와 관련해선 ”입건 여부를 떠나 구속된 피의자들에 대한 범죄사실과 관련해 중요한 참고인이자 (박 대통령 스스로) 범죄 혐의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검찰이 그동안 박 대통령에 대해 ‘참고인 신분’이라는 입장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번 입장 표명은 상당히 전환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최씨 등 구속 피의자의 혐의에 개인 비리 등이 추가될 수 있다면서 빠르면 이번 주 중 모두 재판에 넘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검찰은 청와대 수사보다 일단 구속된 피의자들 기소에 전념할 계획이다.

검찰이 박 대통령에 대해 피의자 전환 가능성을 언급한 이날 박 대통령은 청와대 신임 참모진과 대사들에게 각각 임명장과 신임장을 수여하면서 국정 재개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복귀는 최근 사흘간 단계적으로 계획적으로 추진되는 그림이다. 지난 16일 외교부 2차관을 내정하고 김현웅 법무장관에게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을 시작으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을 내정해 이틀 연속 차관 인사를 단행하고, 12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외교부를 통해 밝힘으로써 외교ㆍ안보 일선 복귀를 예고했다.

최근 이뤄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가서명과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부지 협상 타결 등의 실무 작업에도 기존의 안보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날 임명장과 신임장 수여식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일반 국민에 공개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등에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존재감 부각과 정국 반전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국정재개 작업은 추가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신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날 늦게 귀국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존재감 강조 행위가 역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주말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지고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물러나라는 야당의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전면적인 국정 주도권 행사는 더 큰 국민적 반감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검찰, 정치권 특검에 고민 중

야당에서는 박 대통령의 국정 재개를 이번 사태를 덮기 위한 ‘물타기’, ‘꼼수’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3주 연속 5%에 그친 것도 장애요소다.

정치권은 검찰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한꺼번에 기소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청와대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들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역할이 어느 정도로 담기느냐가 검찰 수사의 최대 핵심이 될 전망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정 전 비서관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이 비밀누설의 공범으로 적시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에 촛불집회 규모와 함께 내주 초 박 대통령의 정국 운용에 커다란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주말까지 이런 기류를 신중히 살펴본 뒤 국무회의 주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만약 회의를 주재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최소화하고 국무위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식으로 평소와 다르게 회의를 진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아울러 검찰의 공소장에 담긴 자신의 연루 의혹을 반박하거나 해명할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최측근 3인방과 안 전 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정리한 이후 새 참모진과 적극 소통하면서 현 시점에 필요한 국정 운영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청와대 본관과 관저에서 업무를 보면서 주로 전화와 서면으로 협의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약 3주 전부터는 비서진이 근무하는 위민관 집무실에서 온종일 집무를 보면서 정국 대책을 논의하고 수시로 참모들과 내부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가 동요없이 국정운영을 계속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비판여론이 커짐과 동시에 강도 높은 특검에 대한 요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다음 주에 받겠다고 통보하면서 두 차례나 조사 시기를 양보했던 검찰은 말 그대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있는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 의지와 전략에서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을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할 때부터 이미 예고됐던 참사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 수사에 한계가 드러난 만큼 특별검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이 지난 17일 “다음 주에 대통령 조사가 이뤄지게 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 18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검찰의 최후통첩을 일방적으로 거절한 것이란 분석이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입지를 감안해 검찰에서 두 번이나 대면 조사 날짜를 양보했지만, 박 대통령 측은 그 어떤 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서 검찰은 최순실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기소하면서 불법모금과 국정문건 유출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공소장을 작성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 5%라는 정치적 최대 위기 속에서도 검찰을 이처럼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이 사건 초기 검찰이 별다른 수사의지를 보이지 않고 사실상 골든 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지난 9월 29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청와대 비선실세 개입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냈지만 수사에 곧바로 착수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난 10월5일에서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 같은 달 11일에서야 고발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특검에 청와대 방패 통할까

검찰은 뒤늦게 10월 27일에서야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그 과정에서 최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는 독일로 도피했으며 이 사건 관계자들은 핵심 증거들을 인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독일에서 영국을 경유해 귀국한 최씨를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배려'를 한 결과, 최씨는 30시간 이상 지난 후에야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배려해준 30시간 동안 최씨가 시중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갔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최씨뿐 아니라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 또한 한달이 지나서야 확보했다. 최씨가 스스로 귀국해 검찰에 출석한 게 10월31일이었고, 11월2일에는 안 수석이 검찰에 나왔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은 것도 같은 날이다.

이 때문에 다음주에 박 대통령을 조사한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조사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검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최순실 게이트’ 특검 법안을 통과 시켰다.

국회는 청와대의 수퍼방패를 뚫기 위해 결국 특검과 국정조사라는 더 강력한 ‘창’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창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진상규명 차원에서 국회로선 가능한 카드를 모두 던졌다. 일각에서는 ‘슈퍼 특검’ㆍ‘무제한 국조’를 청와대가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순실 게이트 특검법’은 역대 최대 규모다. 특검 1명에 특검보 4명을 포함, 파견 검사 20명, 특별수사관 40명, 파견 공무원 40명 등 총 105명이다. 파견 검사 수만 해도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특검(10명)의 2배 규모다. 90일의 활동 기간이 보장되고 대통령 승인을 거쳐 30일 더 연장할 수 있다.

특검법은 이 주 중으로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후 1~2일 내 공포 즉시 시행된다. 이후 총 14일 이내에 야권의 특검 후보 추천과 대통령 임명 등을 절차를 진행, 12월 초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슈퍼 특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의혹이 실제로 규명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자칫 ‘용두사미’로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특검법 논의 초기부터 파견검사를 30명으로 확대하거나 수사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악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하고 버티기로 일관할 경우 달리 방도가 없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박 대통령 의혹 수사 여부다. 특검법에는 ‘문고리 3인방’ 문건 유출 의혹 등 15개 항목을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최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세월호 7시간’ 수사나, 박 대통령을 직접 수사 등은 특검법 내에 명시하지 않아 보강요구도 나온다.



윤지환기자 musas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