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권력이양’ 현실적…정치판 대변화 해결할 리더 요구돼

대통령 탄핵 한계…국회 가결 어렵고 헌법재판소 결정 불투명, 수개월 소요돼

박 대통령 ‘하야’ 결코 안해…하야시 대선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 커

단계적 권력이양 전제로 한 조기 대선 가능…박 대통령 민심 외면 행보 문제

새누리당 붕괴, 반기문 독자행보, 제3세력 부상 등 정치판 대변화 예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촛불이 거대한 강을 이뤘다. 지난 11월 12일 광화문 집회는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화(consolidation)시키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큰 분수령이 될 것이다. 옳은 것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이런 경이로운 촛불 집회로 이어진 것 같다.

대통령 탄핵, 하야, 단계적 권력이양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 탄핵이다. 헌법 65조에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최종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새누리당내에서도 탄핵론이 번지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탄핵을 주장했고, 비박계가 가세했다. 다만, 야권은 탄핵을 망설이고 있다. 핵심 이유는 우선, 탄핵안 가결을 위한 정족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탄핵이 가결되려면 국회에서 200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야3당 의석(165석)에 야권 성향 무소속 6석을 합치면 171석으로 새누리당에서 29명이 합류해야 한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과연 탄핵 결정을 내릴지 불투명하다. 헌법재판관 9명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이 가결된다. 그런데 보수 성향의 재판관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은 수개월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국회에서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탄핵 발의에 1∼2개월 정도 소요되고, 헌법 재판소 심판 과정 180일까지 최대 8개월 정도 걸릴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2004년 3월 9일 국회에서 발의됐고, 12일에 가결됐다. 헌법재판소가 5월 14일 기각 결정을 할 때 까지 64일이 걸렸다. 이번에는 아무리 빨리 탄핵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최소 4개월 이상 걸린다.

둘째, 대통령 하야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총회를 열어 추미애 대표가 기습적으로 제안한 박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무산시킨 후 당론으로 대통령 2선 후퇴에서 즉각 퇴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재인 전 대표도 11월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대통령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 선거를 치러야 하는 헌법 규정 때문에 대선이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이 23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 달 이내에 여야가 당내 경선을 끝내야 한다. 이럴 경우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불가능해지고 자격 없는 부실 대통령이 또 다시 탄생할 수도 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고집과 불통의 품성으로 봐선 절대로 하야하지 않을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도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도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 하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박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 11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의 심중을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은 당장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며 “대통령 임기 중 수사나 재판을 받으면 국정이 마비되고 국론 분열이 우려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사가 부절적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또한 “모든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고 매도되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이다”는 발언까지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박 대통령 측의 검찰 조사 연기 요청에 대해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커녕 탄핵에 대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셋째, 단계적 권력이양을 전제로 한 조기 대선이다.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가 과도 거국내각을 구성한 뒤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아 대선전까지 국정을 이끄는 것이다.

헌법 71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돼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도 현 상황이 헌법 71조상의 ‘사고’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방안은 사실상 하야와 같은 것이지만 즉각적인 퇴진이 아니라 ‘질서 있는 퇴진’을 전제로 한다.

한편, 단계적 권력이양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2선 후퇴한 박 대통령이 식물대통령으로 임기를 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임 시점을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 결과, 잘못이 드러나면 사임하는 시점이 포함된다.

별도 특검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12월에 시작해 120일간의 특검 활동이 끝나는 내년 4월에 대통령이 사임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면 된다. 내년 6월전에 조기 대선을 치러 새 대통령을 뽑는 것이 현 시점에서 혼란을 최대한 줄이며 질서 있게 사태를 수습해가는 방안이다.

안철수 전 대표도 지난 11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비슷한 방안을 제시했다.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퇴진 선언 → 여야 합의로 대통령 권한 대행 총리 선출 → 향후 정치 일정 제시’라는 3단계 수습 방안을 주장했다. 안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워서는 안된다”면서 내년 상반기에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기 위한 조기 대선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 민심과 반대의 길…탄핵 기대?

문제는 대통령이 모든 가능성을 닫아놓았기 때문에 탄핵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는 11ㆍ12 촛불 집회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나 질서 있는 퇴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방향을 틀었다. 청와대는 “하야는 헌정이 중단되고 국가적 혼란을 부른다”는 논리 등을 들며 퇴진 요구에 선을 그었다. 마치 ‘할 테면 해보라’며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촛불 민심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11월 14~16일)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문책 방식으로 탄핵 또는 자진사퇴를 지지한 응답자가 73.9%를 기록했다. 이는 전주에 비해 13.5%포인트 급상승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과도내각 구성 후 즉각 사퇴(질서있는 퇴진론)’가 43.5%, ‘탄핵으로 책임 물어야(탄핵론)’가 20.2%, ‘즉각 사퇴 후 현 황교안 총리 권한대행(즉각퇴진론)’이 10.2%, ‘임기 유지, 국회 추천 총리에 내각 통할권 부여(박 대통령 제안)’가 18.6%로 나타났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은 하야나 퇴진보다 탄핵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같다. 친박 내부에서는 “지금 상황에서는 탄핵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 민심을 잠재울 수 있고, 탄핵까지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최순실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면 보수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같다.

강성 친박들은 “드러난 불법이 크지 않고, 미르ㆍK 스포츠 재단 모금도 선의의 부탁일 뿐”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더구나 “촛불에 100만명이 나왔다지만 자발적 참여는 훨씬 적었다”는 판단하에 시간이 지나면 보수가 결집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같다. 새누리당 내 비주류는 김무성 전 대표 등 여권 대선 주자 급 인사들과 시ㆍ도지사, 4선 이상 중진 등 12명의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비상시국회의라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고 세력화에 나섰다. 11월 17일에 비상시국위원회가 첫 대표자ㆍ실무자 연석 회의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검찰 수사 협조와 이정현 대표의 사퇴를 거듭 압박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누리당을 해체한 후 재창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정현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주류의 비상시국회회의를 맹비난했다. “지금부터 오는 당의 혼란과 개혁, 쇄신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는 책임은 이제 대책 없이, 속절없이 무조건 (저를) 사퇴하라고 했던 분들에게 책임이 주어졌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대선 앞두고 정치판 5번 이상 바뀔 수도

여하튼, 전대미문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 지형은 요동치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큰 그림에서 보면 몇 가지 정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첫째, 새누리당의 붕괴다. 이정현 대표는 12월 21일 사퇴하고 내년 1월에 당 대표 경선을 위한 전당 대회를 치르겠다는 로드맵을 내세웠다. 하지만 즉각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 버틸수록 새누리당은 분당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새누리당이 처한 상황은 2007년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붕괴 상황보다 심각하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소속 23명이 김한길 의원의 주도하에 선도 탈당했다. 그 후 탈당파들은 5월 7일에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했다. 신당은 창당 선언문에서 중도개혁주의를 기본 노선으로, 민생정치, 선진경제도약을 실천 강령으로 채택했다.

김한길 대표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의 창당으로 제3지대 대통합의 전진기지를 마련하게 됐다”며 “창당은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등 정치권의 중도개혁 세력과의 통합을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시민사회세력과의 통합에도 애 쓰겠다”고 밝혔다.

2007년 8월 5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80명,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4명,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주축으로 한 한나라당의 일부 탈당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을 주축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했다.

새누리당 붕괴 과정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보일 수 있다. 일부 의원들과 광역 단체장들이 선도 탈당해서 무소속 연대 또는 새로운 개혁적 보수 정당을 창당한 다음 새누리당과 경쟁을 벌일 개연성이 있다. ‘1여3야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반기문 사무총장은 내년 1월 귀국 후 독자적인 행보를 할 가능성이 크다. 무소속 국민후보로의 길을 모색할 지도 모른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전 대표가 택한 길과 유사하다.

안 전 대표는 2012년 9월 19 무소속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민들의 삶을 외면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무시하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정치를 바꾸겠다”고 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라고 했던 안 의원은 문재인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을 진행하던 중 11월 돌연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

반기문 총장은 조금 다를 것 같다. 국민 후보의 행보를 하다가 제3지대 또는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신보수 세력과 결합 할 수 있다. 그 후 대권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을 흡수, 통합할 수도 있다.

셋째, 제3세력의 부상이다. 현재 야권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비상기구’ 또는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책임 있는 여야 정치인이 참여하는 ‘정치지도자회의’를 주장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박 대통령이 사임 선언과 동시에 의전 대통령으로 물러 날것을 제안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대안은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공허하다. 문제는 여러 야권 세력이 질서있는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만약, 반기문 세력과 신보수 세력이 연대해 힘을 키우면 향후 국민의당 행보가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반기문, 김무성, 안철수로 이어지는 연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손학규와 김종인이 합류하면 거대한 제3정당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력들은 권력 분점을 토대로 한 개헌을 매개로 연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나리오는 궁극걱으로 친박과 친문을 고립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런 대연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있느냐 여부이다. 그림은 좋은데 이를 화룡정점할 수 있는 인물이 누가 될지 답이 안나온다.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인 만큼 앞으로 정치 지형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이 최소 5번 정도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 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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