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가능성…대권 행보 ‘주판알’

與, 내년 6월 대선 당론 확정…野는 내년 3월까지도 염두

새누리, 유력 주자 없어 반기문 총장에 기대, 潘 안착 시간벌기도

야권, 문재인 독주에 타 잠룡들 추격…안철수ㆍ박원순 강경 드라이브

‘촛불 민심’이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차기 대선 일정도 요동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3차 국민담화에서 처음으로 ‘퇴진’을 시사하면서 박 대통령의 거취에 따라 대선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여야의 탄핵, 퇴진 시기 합의, 또는 개헌에 따라 임기가 조정된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따라 여야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시기에 따라 대권에 유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한층 달아오르고 있는 잠룡들의 행보를 짚어봤다.

탄핵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거취는 여야 정치권의 탄핵이냐, 자진사퇴냐, 개헌 등에 따라 결정지어질 전망이다.

여야는 ‘촛불 민심’에 귀기울이면서도 차기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만들기 위해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마땅한 대선주자 없는 여권은 올해말 임기를 마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야권은 속셈이 다른 가운데 반기문 총장의 등장에 대한 반응도 상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상당한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의당은 반 총장에 대해 별다른 얘기나 특별한 반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와 그가 경쟁력을 갖추느냐는 대선 로드맵과 직결돼 있다. 만일 박 대통령이 거역할 수 없는 ‘촛불 민심’에 밀려 일찍 자진사퇴(하야)하게 되면 반 총장이 대선 준비를 할 겨를 도 없어 현재 대선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에 유리하다.

반면 박 대통령이 내년 4월 무렵 물러나면 6월 즈음에 대선을 치르게 돼 반 총장이 세력을 모을 시간을 벌게 된다. 동시에 반 총장을 검증할 시간이 부족해 반 총장에 유리할 수도 있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 퇴진 시나리오를 놓고 ‘자진사퇴’와 ‘탄핵’으로 확연히 갈리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중 대선이 치러지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1일 의원총회에서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사퇴와 6월 대선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7개월 남짓이다.

이달 초 탄핵을 전제로 하는 야당의 시간표는 이보다 빠르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이날 “탄핵 가결 시 헌법재판소에서 내년 1월 정도에 결정이 나기 때문에 대통령이 즉시 퇴진하지 않더라도 늦어도 1월까지는 강제 퇴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대선은 내년 3월 무렵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4개월여 뒤다.

통상 대선시간표를 보면 선거일로부터 240일(8개월) 전에 예비후보등록을 하고 이후 당내 경선을 거치는 과정을 고려하면 대선까지 4~7개월을 남긴 지금은 사실상 레이스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여야의 잠룡들은 전반적인 대권 로드맵을 수정하고 전략을 다듬으며 물밑으로 조기 대선 채비에 나서고 있다.

여권에서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선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다른 주자들의 지지율은 야권 주자들에 비해 형편없이 밑돌고 있다. 때문에 내년 1월 중 귀국이 예정된 반기문 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이재명 성남지사 등이 문 전 대표를 추격하며 역전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중 누구도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표방하고 있지는 않다. 현 국면에서 성급하게 반사이익을 노리려는 듯한 행보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올해 말 퇴임 후 내년 초 귀국 소식만 전해졌을 뿐 구체적인 국내 정계 데뷔 시점과 지점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비주류의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대권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탄핵정국에서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도 아직 대권과 관련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야권 주자들도 탄핵국면에서 각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이를 대권 행보와 결부 짓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우선은 대통령 퇴진과 수습에 안정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그중에서도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문 전 대표가 가장 신중한 분위기다. 현시점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어 대선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볼 수 있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권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려는 기류가 읽힌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는 “당장의 민심은 대통령 즉각 퇴진이지만 그 이후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더구나 탄핵정국에서도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보이는 것에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지지율이 주춤한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강경한 메시지를 연일 내놓으며 정국 주도를 꾀하고 있지만, 역시 대선 행보와는 선을 긋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제3지대’에서 대권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나아가 반 총장과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져 누구보다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은 유불리를 따져서 대통령 하야 시점을 얘기하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현직에 우선 매진한다는 기조다. 다만, 이들 현직 지자체장들은 조기 대선을 위한 사퇴 시점이 고민이다.

만약 내년 4월 재보선 한 달 전에 직을 내려놓는다면 재보선을 통한 후임 선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3월 이전 사퇴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그러나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3월 이후 대선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 너무 늦는데다 현직을 유지한 채 경선을 치르는 부담도 있다.

결국 지자체장 잠룡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내년 대선 국면에 임박해 지지율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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