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뇌물죄’ 적용, 李 혐의 부인… 박 대통령 공범성도 관련, 물증이 관건

‘최순실-박근혜-삼성’ 뇌물 커넥션 실체 놓고 특검-삼성 팽팽한 대결

특검, “삼성 합병 대가로 최순실 측 지원, 뇌물 혐의 정황 충분”

삼성 “부정한 청탁, 대가성 없어”…이 부회장 “사전에 알지 못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이 부회장이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2008년 2월 삼성 비자금 사건 이후 두 번째이며 9년 만이다.

눈에 띄는 점은 특검이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검찰 및 특검에 소환된 삼성 그룹 임원들은 모두 참고인 신분이었고 지난 9일 소환된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 부회장 역시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될 것으로 보였지만 특검은 예상을 깨고 피의자 신분으로 그를 소환했다. 이 부회장 혐의를 입증할 증언을 확보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삼성 둘러싼 세 가지 의혹

삼성이 받고 있는 의혹은 ▦최순실씨가 소유한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204억 원 출연 ▦최씨의 독일 개인회사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와 직접 220억 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고 78억 원 제공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여 만원 후원 등 크게 세 가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걸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정부가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그 대가로 삼성이 최씨 측에 다방면의 금전 지원을 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에겐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 이 부회장과 최지성 미래전략실 실장과 장충기 사장 등은 ‘뇌물공여자’가 된다. 소환 전날인 지난 11일 특검팀 이규철 특검보가 밝힌 이 부회장 혐의가 뇌물공여죄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이 과정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고, 최씨 측 지원의 결정과 집행을 직접적으로 승인 또는 지시를 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 측은 청와대의 압박과 강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최씨 측을 지원한 것이며, 이 부회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순실과 삼성의 금전 거래 핵심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의 존재를 미리 인지하고 지시했는지 여부다. 이 부회장이 알고 있었다면 최순실-박근혜-삼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완성되고 뇌물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6일 이 부회장은 국조특위 1차 청문회에서 “2015년 7월에는 몰랐고 2016년 2월쯤 최순실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의 증언은 사실일까?

박 대통령-이 부회장 독대 미스터리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한 횟수는 총 3회로 보인다. 첫 번째 독대는 지난 2014년 9월 15일에 이뤄졌다. 당시 대구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후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따로 불러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승마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좋은 말도 사주고, 훈련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이 특검에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이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첫 독대 당시 ‘승마선수’ 지원 요청을 넘어 구체적으로 ‘정유라’ 지원을 언급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검팀은 최근 김종(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부터 “2015년 1월 9일 대통령이 김종덕 전 장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정유라 같은 승마선수를 키워줘야 한다’고 얘기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 대통령이 ‘정유라’를 언급한 직후 김 전 차관이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과 박상진 사장을 소개받고 3~4개월에 한번씩 만나 정씨 지원을 논의했던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2015년 2월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가 임기 2년을 남기고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사임한 뒤, 2015년 3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 자리에 올랐다.

특검팀은 그해 7월 청와대가 안종범 수석을 통해 삼성전자-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국민연금 쪽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같은 해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의결됐다. 당시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은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삼성물산 2대주주 국민연금(당시 지분율 11.21%)은 7월 10일 내부 투자위원회 논의만으로 찬성 방침을 정했다. 실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예정대로 찬성표를 던졌다.

특검 관계자는 “삼성은 정권 초기 정씨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아무리 늦춰 잡아도 2015년 초에는 삼성 쪽이 정씨의 존재를 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삼성 합병안이 통과되고 8일 후인 2015년 7월 25일 청와대 안가에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의 두 번째 독대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승마선수들에게 전혀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 부회장을 다그쳤다는 진술을 삼성 측 관계자로부터 특검이 받아냈다.

두 번째 독대 이후 삼성 그룹의 승마지원은 가속도가 붙는다. 이틀 후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은 독일로 급파돼 최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의 전신 코레스포츠와 220억 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9월까지 35억 원을 지원했다.

세 번째 독대는 2016년 2월로 삼성은 독대에 앞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재단에 204억 원을 냈다.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 시점이다.

핵심은 두 번째 독대 전후다. 삼성그룹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17일,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는 7월 25일에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합병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보다 먼저 이뤄진 만큼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특검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단 한번도 그랬던 적 없었는데 왜 복지부장관이 국민연금에게 지시해 합병에 도움을 줬고 이후 특정 개인과 종목에 수백억 원대의 지원을 속전속결로 결정하고 실행했느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의 청문회 발언이다. 그는 당시 “문화 지원이라든지 스포츠 지원을 저한테 다 일일이 보고를 하지 않았다. (2015년 7월 25일) 30~40분 (박 대통령과) 독대했는데 기부 얘기는 없었다. 문화융성이란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출연을 해달라는 거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두 번째 독대 날짜인 2015년 7월 25일 이틀 전인 23일 이 부회장이 사장단 회의를 직접 소집해 승마 관련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고 삼성 고위 관계자가 특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청문회 발언과 배치되는 진술이다. 이미 최순실의 존재를 파악하고 직접 지원을 챙겼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과 관련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해도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204억 원 출연에 대한 특검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이 국조특위 측에 이 부회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을 요청한 것이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위증 혐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뇌물을 요구받고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지시하여 삼성그룹 계열사로 하여금 대통령이 지정한 곳에 뇌물을 공여했음에도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는 취지로 증언한 부분”이라고 못박았다.

특검팀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청와대가 당시 기업 총수 면담을 위해 작성한 ‘말씀 자료’ 등을 토대로 2015년 7월, 2016년 2월 두 차례 진행된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구체적 출연금 규모에 관한 상의가 이뤄졌다는 구체적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 위증 혐의 고발 요청 내용을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삼성그룹 임직원들’과 ‘계열사’로 언급한 것이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삼성그룹 계열사는 삼성전자와 제일기획이다. 삼성전자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면 제일기획은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소유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게 총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위증 고발 요청을 통해 특검팀이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두 계열사에서 모두 포착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삼성맨 입이 열쇠…물증이 관건

특검팀이 수사한 삼성 관계자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이다. 이들이 삼성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비춰‘최순실-박근혜-삼성’ 연결고리의 퍼즐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충기 사장은 지난해 11월 18일 검찰에 소환돼 17시간, 이후 지난 1월 9일에는 특검에 나와 19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특검 공식 수사 하루 앞선 지난 12월 20일에는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접촉도 했다. 최소 40시간 이상 범죄 혐의를 추궁당한 것이다. 이는 삼성그룹 임원들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이다.

반면, 삼성그룹 2인자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은 장 사장과 함께 지난 1월 9일 특검에 소환돼 대비를 이뤘다. 장 사장이 이번 수사에서 키를 쥔 인물이라고 검찰과 특검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정유라 승마 지원에 대한 사전보고와 의사 결정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사후에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최 실장 보고 전까지 자신은 몰랐다는 논리다. 최 부회장과 장 사장에게 혐의를 떠넘기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의 대응은 흡사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와 유사하다. 당시 그룹 2인자였던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은 모든 혐의를 안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은 공동정범 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당시 이건희 회장은 불구속 기소돼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 받았지만 불과 4개월이 지난 이후 그 해 12월 특별사면 됐다. 당시 이 부회장은 무혐의로 불기소됐다.

특검은 12일 피의자로 소환한 이 부회장이 최소한 삼성 합병 전에 최씨의 딸인 정유라의 존재를 보고받은 것으로 보고 뇌물공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증언과 물증이 불충분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과연 이 부회장이 9년 전처럼 특검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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