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황교안 카드로 보수후보 단일화 모색 소문

보수진영 “안철수와 경선 연대해야 문재인 이긴다”

황 대행 ‘최순실 게이트’책임론 등 외부 세력 연합전선 구축에 장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권불출마 선언으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여권의 대선후보를 놓고 여야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그야말로 ‘대선판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사퇴하자 그에게 쏠렸던 이목이 일제히 황 권한대행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여권 안팎에서 황 권한대행의 출마가능성이 관측되자 새누리당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정당은 이구동성으로 “황 권한대행의 대권도전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최순실 게이트’를 책임져야 하는 인물이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황 권한대행이 출마할 경우 보수진영은 복잡한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은 정치적 함수 관계를 놓고 내부적으로 꼬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물론 외부적으로도 새누리당과 보수연합을 구축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또 새누리당의 경우 황 권한대행이 출마하면 다른 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정치적으로 고립될 것이 뻔하다. 골수 친박지지 세력은 결집할 수 있지만, 그 외 다른 모든 세력은 새누리당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왕따현상’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분위기다. 황 권한대행이 아니면 마땅히 대권 출사표를 던질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단 황 권한대행이 출마하는 게 우선이고 연합전선은 그 이후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고독한 선택

범여권에선 ‘황교안 대안론’이 뜨고 있다. 범보수 진영 주자 가운데 반 전 총장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10%대 지지율에 오른 후보이기 때문이다. 황 대행에게 보수층 표가 결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TK지역에선 여전히 황 권한대행을 대안으로 여기는 보수지지자들이 늘고 있다. 반 전 총장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가 황 대행 쪽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황 권한대행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고 수도권에서 다소 높은 지지율을 드러낸다는 강점도 갖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우리 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도 된다는 국민의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황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에 힘을 보탰다.

인 비대위원장은 “설 민심을 통해 당원이 아닌 황 대행이 10% 안팎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해서 대선에 도전하고 싶은 당내의 여러분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대선 준비를 해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인 위원장은 지난 2일에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정체성이 맞는다면 새누리로 오시면 좋겠다.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오늘 아침 여론조사를 보니까 (황 권한대행이) 12%까지 나온 것도 있더라. 우리도 예측 못한 건데, 대선 후보 가능성에 대해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황 권한대행을 설 연휴에 독대하는 등 ‘영입 러브콜’을 보냈다는 데 대해 “난 러브콜 보낸 적 없다. (기자들도) 러브콜 보냈다고 쓰지 말아 달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다만 인 위원장은 “황 대행이 대선에 나가겠다고 하고 당을 선택한다면 새누리당의 후보가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희망을 얘기한 것”이라며 “우리 당 대선 후보로 와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또 황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도의적 책임이 있는데 여당 후보로 나서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에는 “우리 후보로 적절한지는 경선 과정에서 당원이 판단해서 논의하고 걸러질 문제”라고 답했다.

황 권한대행이 출마할 경우 국정 혼란이 커지지 않겠냐는 지적엔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생긴다는 말도 있던데, 그것은 우리가 강요하는 바는 아니다”라며 “(출마 여부는) 본인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민과 역사 앞에 무한한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 때문에 본인이 정치적 결단을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인 위원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이 황 권한대행을 대권주자로 끌어들이는데 전력을 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 전 총장을 대신할 보수세력의 대표로 황 권한대행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 전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최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던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 상승은 황 권한대행의 출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출마와 국정운영의 딜레마

최근 한국갤럽이 조사한 대선 후보 지지도를 살펴보면 문재인 32%, 안희정 10%, 황교안 9%, 반기문 8%, 안철수ㆍ이재명 7% 유승민 의원(3%),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0.6%), 손학규 전 의원(0.5%) 등이다.

동일 방식으로 질문한 1월 첫째 주와 비교하면 안희정, 황교안은 각각 7%포인트, 6%포인트 상승해 상대적으로 변화폭이 컸다.

반 전 총장은 이번 조사 진행 첫 날인 2월 1일 오후 3시 26분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때까지 응답 완료 인원은 약 390명이다. 이후로는 반 전 총장 응답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러나 조사 진행 둘째 날에도 반 전 총장 응답은 나왔다. 아직 불출마 소식을 접하지 못했거나 여전히 출마를 바라는 유권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35.2%로 상승세다. 그 뒤를 황 권한대행이 9.7%의 지지율로 3위로 추격하고 있다. 이는 이재명 성남시장이 8.9%, 안희정 충남지사가 7.9%,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7.0%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급격한 상승세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황 권한대행은 머지않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까지 지지율이 치솟으며 반 전 총장의 지지율에 근접하는 기염을 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반 전 총장의 대선 레이스 도중하차로 보수표의 상당부분이 황 권한대행에게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황 권한대행이 보수진영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황 권한대행이 대선에 나설 수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중 있는 대선주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에서도 의도적인 ‘황교안 띄우기’에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황 권한대행의 대선출마를 결심할 경우 대통령 선거일 30일 전까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후 벌어질 국정공백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놓고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비난을 살 가능성도 있다. 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황 권한대행이 혼란스러운 국정을 뒤로한 채 출마를 선언한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황 권한대행이 어떤 명분을 내세워 대선출마를 선언할지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사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후보로 나오게 될 경우 그 공백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맡게 된다.

바른정당 장제원 대변인은 이같은 상황을 두고 “유일호 부총리의 직함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된다”며 “이는 국제적 웃음거리”라고 꼬집었다.

야권도 황 권한대행의 대선출마 선언을 대비해 날선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야당은 세월호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서 수사외압을 줬다는 의혹제기와 함께 ‘최순실 부역자' 혹은 ‘제2의 박근혜’라는 비난을 벌써부터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바른정당 오신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선 후보 구걸이 참으로 안쓰럽다”며 “황 권한대행도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신환 대변인은 “집권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대통령 탄핵심판에 따른 권한대행에 대해 대선 출마를 바라고 있는 현실이 과연 정상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오죽하면 정진석 의원도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겠느냐”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월 임시국회에 예정된 대정부질문에 성실히 답할 것을 요구한다”고 이야기했다.그러면서 “국정이 마비되고 나라가 어렵다”면서 “황 권한대행이 국회에 나와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보수진영의 복잡한 방정식

현재 범여권 보수후보로 황 권한대행과 바른정당 경선을 앞둔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거론된다.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과 오세훈 바른정당 최고위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은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이 출마의사를 밝히는 순간 어떤 변수가 돌출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야권에서는 “권한대행으로 안정적 국정운영을 바라던 기대감이 무너졌다”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대선 출마의 적절성 논란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론 등 부정적 여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층의 표를 집결시킬 수는 있지만 표의 확장성 여부가 최대 난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황 권한대행은 출마하지 않고 보수집결 카드로 활용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또 황 권한대행은 대선 직전까지 몸값을 올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황 권한대행이 불출마하면 최대 수혜자는 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수위를 다투는 유승민 전 국민의당 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충청권인 안 지사에게 충청권 표가 쏠리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중도성향의 표가 반문(반문재인) 성향을 드러내는 안 전 대표에게 옮아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황 권한대행은 여당 입장에선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다. 당내 주자로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김관용 경북지사, 정우택 원내대표, 원유철 의원 등이 거론되지만 현재로서는 경선에서 흥행 참패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내 인물을 키워 새로운 돌풍을 기대하더라도 최소한 황 권한대행이 참여해서 판을 키워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 권한대행을 보수결집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탄핵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근 당내 초선 의원들 모임에서는 황 권한대행의 첫 번째 책임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국가위기상황에 대비하는 것인 만큼 지금부터 불필요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여권에서는 반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로 한층 더 분주해지고 있다. 반 전 총장을 영입해 대선 후보 경선 흥행몰이를 꿈꿨던 바른정당엔 빨간불이 켜졌다.

여권 내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시점에 유 의원과 남 지사 행보가 주목을 끈다. 여권 후보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 의원 캠프는 이번 사태를 ‘위기속의 기회’로 삼아 세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유 의원은 반 전 총장 사퇴 다음날인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스타트업 기업 간담회를 갖는 등 평소대로 일정을 소화했다.

반 전 총장과 세게 맞붙어 이긴 뒤 강력한 여권 후보로 자리매김하려 했던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만큼 당분간은 기존에 준비했던 정책 공약 발표와 대국민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반 전 총장의 지지층 상당수가 황 권한대행으로 넘어간 만큼 그에 대한 대비를 겸하며 여론의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다.

유 의원의 지지율은 5%에 못 미치지만, 최근 여권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반 전 총장과 황 권한대행을 바짝 뒤쫓고 있다.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바른정당 지지층은 유 의원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지환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