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직접 지시 설득력 약해…김원홍 ‘충성 선물’?

김정은 공포정치, 경쟁자 제거설, 망명차단설 등 분석 다양

해임 위기 처한 김원홍의 ‘충성 선물’가능성 점쳐져

김원홍 통해 이득 봐온 북한.중국 관계자들 소행 추정, 김원홍 복권 기대

북한 경제에 주민의 힘 커져, 보위부 위협…김원홍 추락 배경

김정은 신년사 ‘민족’ ‘해외동포’ 강조, 남북관계 변화 주체 가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이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탄도 미사일 발사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생일(광명성절)을 앞두고 전 세계가 북한을 주목하는 가운데 일어난 김정남 피살 사건은 여러 해석과 논란을 낳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살해의 주체와 그 배경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이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한다. 피살 배경과 관련해선 권력 경쟁자 제거설, 한국 망명 차단설, 김정남 관리 비자금 확보설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누가, 무슨 이유로 김정남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선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국내에선 북한의 소행이라는 추론이 지배적이지만, 일부는 ‘김정남 죽음과 김정은은 관련 없다’고 주장한다. 외신 중엔 ‘북한이 김정남을 죽일 이유가 없다’는 보도도 있다.

김정남의 피살에 대해 여러 견해가 분출하는 가운데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분석했다. 북한의 변화와 김정은 위원장의 위상, 그리고 김정남의 대북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소식통은 이번 사건에 북한이 연루돼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개입하진 않았으며, 얼마전 해임된 김원홍 전 국가안전보위상과 북한 경제에 관여하는 중국 경제인, 거상(巨商)들이 관련된 의심을 떨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일부 해외의 한반도 전문가와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 보위부와 정찰총국을 주목했다.

향후 남북관계와 북한의 대외 행보의 일부를 가늠할 수 있는 김정남 피살 사건의 실체를 추적했다.

김정남 피살 미스터리 여럿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이 현지시간 13일 오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출생한 김정남은 한때 후계자로 유력했으나 2001년 위조 여권을 갖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된 사건 이후 권력에서 밀려나 마카오와 중국 등지를 옮겨가며 '자의 반 타의 반'의 해외생활을 해왔다.

말레이시아 범죄 조사국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남은 13일 오전 9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한 시간 뒤에 탑승할 마카오행 항공편을 기다리던 상황에서 여성 2명에게 당했다. 출국을 위해 키오스크(셀프체크인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여성 2명이 김정남 얼굴에 액체를 뿌리고 천으로 입을 막았고, 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졌다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숨졌다.

현지 경찰이 용의 선상에 올려놓은 암살 가담자는 모두 6명으로 남자 4명, 여성 2명이다. 경찰에 체포된 두 여성은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호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로 밝혀졌다. 하지만 남성 4명의 신원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서 남성 1명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얘기가 나왔으나 이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경찰조사에서 4명의 남성이 여성과 공모했으며, 이들을 사주해 김정남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범행 여성이 살해 현장으로 돌아왔다가 체포된 것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공항에서 사건을 벌인 것 등 의문점이 한 둘이 아니다. 범행은 프로인데 이후 처신은 아마추어적이어서 청부 살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김정남이 오랫동안 암살 위협에 직면해있었는데 왜, 지금 피살됐느냐도 의문이다.

결국 김정남 암살 사건의 전모는 남성 용의자 4명이 체포되고 범행 동기와 배후가 밝혀져야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용의자 6명이 북한 등 특정국가 정보기관에 소속된 공작원이 아닌 살인 청부를 받은 암살단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 등이 북한의 개입 흔적을 지우기 위해 제3국 여권을 소지한 다국적 청부업자들을 고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도 김정남 피살 사건에 북한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한다.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 없이는 김정남 피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누가, 왜 김정남을 암살했나

김정남 피살 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여성2명과 도주한 남성 4명이 북한과 관련됐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내외 북한 전문가 대다수는 김정남 암살 배후에 북한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 없이는 김정남 암살이 불가능하다며 ‘김정은 지시설’에 무게를 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적인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며 “정남의 피살에는 북한의 정찰총국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옥현 전 국정원 제1차장도 “김정은의 직접 지시, 승인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해외암살을 전문으로 다루는 군내 정찰총국이나 보위부에서 집요하고 치밀하게 많은 훈련을 해온 정예 암살 요원으로 이뤄졌다고 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유지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는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소 통일전략센터장은 “김정은이 지배체제를 확고히 하는 데 김정남을 걸림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계속 계기를 노리다가 기회를 포착해서 그런 조치(암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제정세와 관련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정보통인 한반도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참수작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김정은 교체시 대안으로 김정남이 거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러한 돌발 사태를 우려해 김정남을 제거했다는 해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김정은이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을 원천 제거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김정은에게 김정남은 결국 잠재적인 불안요인이다. 당장에 북한의 권력 엘리트를 이반ㆍ이탈시킬 정도로 위협적인 인물은 분명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구심력을 만들어 낼 요소가 될 수 있는 불안감이 작용한 게 아닌가”하고 분석했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 소식통은 “가능성 있는 분석일 수 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김정은 지시설’과 관련해 소식통은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정적인 김정남 암살설이 남한 등 해외 언론에 보도됐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면서 “최근 김정남 사망이 김정은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도 남한식 해석일뿐”이라고 일축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2013년 숙청된 장성택이 김정은을 앞세워 북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김정남이 대신할 기회가 없었고, 장성택 숙청 후엔 김정은이 나름대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김정남이 도전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중국과 친한 장성택과 김정남이 손을 잡고 김정은을 제거한 후 북한을 통치하려했다고 주장하는데 한마디로 ‘소설’”이라며 “장성택이 힘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 권력구조상 장성택의 힘만으로 김정남을 옹립할 수도 없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도 “북한 내부에서 김정남을 옹립하려는 지지세력 자체가 없었다”면서 “김정남이 북한을 떠나 해외를 떠돈 지 이미 오래라 김 위원장의 체제 장악에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정남 암살에 정찰총국이 관여됐다는 분석에 대해서도 소식통은 “말레이시아가 북한 정찰총국의 핵심 지역인 점에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드러난 바와 같이 허술하게 일을 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쪽에서 일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쪽’과 관련해 북한 김원홍 전 국가안보위상의 보위부와 김 전 보위상을 통해 이득을 봐온 북한과 중국 관계자들을 의심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암살과 관련해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ㆍ취소할 때까지 계속 유효한 주문사항)를 거론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스탠딩 오더였다”면서 “암살 시도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됐다”고 밝혔다. 암살 시점에 대해선 “오랜 노력의 결과 실행된 것이지 암살의 타이밍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오랜 명령이 집행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정원의 ‘스탠딩 오더’엔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직 출신의 한 탈북자는 “지도자가 직접 내린 ‘1호 지령’을 북한 공작기관들이 5년간 이행해지 못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김정남 망명’이 암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 올해 초 외교가엔 김정남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몇몇 측근 외교관과 함께 한국 망명을 준비중이란 소문이 돌았다.

일부 정보 관계자는 김정남이 2012년 한국 망명을 타진했다가 가족 때문에 거절했다는 얘기도 전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7일 김정남이 망명정권을 계획하는 탈북자와 접촉했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이 여기에 가담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 북한 당국에 암살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실 ‘김정남 망명설’은 꾸준히 제기돼오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의 한국 망명 후 급격하게 수면위로 부상했다. 심지어 김정남이 북한 망명정부의 수반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왔다.

실제 김정남이 한국으로 망명한다면 북한으로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김정남이 김정은의 비밀스런 부분을 알고 있고, 북한의 해외 자금에 관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남의 망명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베이징의 대북 소식통은 “우선 김정남의 가족 때문에 망명이 어렵고, 북한은 물론 김정남을 감시ㆍ보호해온 중국 입장에서도 김정남의 망명은 국가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홍의 그림자, 중국의 방관?

김정남 암살과 관련한 여러 분석과 억측이 난무한 가운데 새로운 해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정남 암살에 얼마전 해임된 김원홍 전 국가안전보위상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고, 김홍원 전 보위상을 통해 이득을 봐온 북한과 중국 관계자들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관측이다.

김원홍은 올 초 보위성의 고문 등 인권유린과 함께 월권과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해임됐다. 그런데 앞서 숙청된 고위 인사들이 비참하게 생을 마치거나 재기 불능의 상태로 추락한데 반해 김원홍 전 보위상은 고급당학교에서 재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례없는 파격적인 조치로 김 전 보위상의 배후에 ‘중국’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원홍이 권력횡포를 부리는 이면에 북한과 연계된 중국 관료와 사업가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보위상은 그러한 대가로 중국이 경제적으로 북한을 장악하는 것을 방치해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보위부는 북한 엘리트에 대한 감시를 수행하는 조직 특성상 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북한에 진출한 중국 관료와 사업가들이 돈과 정보로 김원홍을 밀면서 더욱 큰 힘을 가지게 됐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소식통은 “북한내 중국인들이 김원홍에 돈을 대주면서 김정은의 신임을 얻도록 하고 있다”면서 “그 대가로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만들거나 인사에도 개입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김원홍 또한 중국인들의 돈과 정보를 토대로 김정은의 신임을 얻고 그릇된 정보를 올려 정적을 제거하기도 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그러나 점차 북한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재산도 모으면서 그들이 내는 세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보위부가 힘으로 거둬들이는 돈과 상응하거나 넘어서는 상황이 됐다.

이번 김원홍 전 보위상 해임은 김정은 위원장과 노동당이 보위부가 아닌 주민들의 조세에 비중을 둔 것과 관련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 주민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보위부의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 김원홍 전 보위상을 흔들었고 실무 당사자들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보위부 수장인 김원홍 전 보위상이 숙청 대신 해임 수준에 머문 것에 대해 소식통은 북한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김원홍을 통해 이득을 본 중국 관계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김 전 보위상을 통해 북한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 관계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김 전 보위상의 숙청을 막았다는 것이다.

또한 위기에 처한 김 전 보위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김정남을 제거해 일종의 ‘충성 선물’을 바친 것이라고 소식통은 해석했다. 그는 김정남 암살 과정에 김 전 보위상과 관련있는 중국 관계자들이 개입했을 기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의 동선이 알려진 것른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 보위부가 직접 암살에 나섰다면 두 여성 범인이 바로 체포되는 등 허술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김정남 암살을 ‘청부 살해’ 로 보면서 김원홍 일당과 그와 연결된 북한 경제에 관여하는 중국 관계자의 개입 가능성을 점쳤다.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을 통해 김원홍 전 보위상은 복권을 기대하고 중국 관계자들은 김 전 보위상을 통해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긱통은 “김원홍이 복권 되느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에 따라 중국의 대북한 경제 영향력과 인사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남 암살 후폭풍, 한반도는?

김정남 암살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폭압정치의 한 단면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즉, 현재 단절된 남북관계가 더욱 회복하기 어렵게 되고 탄도 미사일까지 발사한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표방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이 가중될 것이 예상돼 한반도의 냉기류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원홍 전 보위상의 복귀 여부도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유동적이다.

반면 북한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보위부의 역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주민의 힘’이 강해진 것은 향우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민족’과‘해외동포’가 남북한 협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고무적인 내용이다.

틴핵정국이 조만간 종결되고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상당 기간 경직된 남북관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때 일수록 ‘정치’와 무관한 민간, 해외동포가 주축이 돼 ‘경제’를 매개로 북한과 통로를 열어가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으로 전망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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