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진출 선언… ‘대권 꿈’ 그리나

사퇴 후, 대선 출마설ㆍ킹 메이커설 등 추측 분분

차기 정부 국무총리설도…삼성과 관계회복 위해?

홍석현 전 중앙일보ㆍJTBC 회장이 지난 18일 회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홍 전 회장은 임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낸 고별사에서 “이제 저는 23년간 몸담아 온 회사를 떠난다. 최근 몇 개월,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홍 전 회장이 전격적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사퇴 배경과 향후 행보에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홍 전 회장은 일단 고별사에서 “구체적으로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풀어갈 것이다. 그러한 작업들은 명망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재단과 포럼의 형태로 진행될 것이며 중지를 모아 나온 해법들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킹 or 킹메이커로 나서나

홍 전 회장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즉각 대선 출마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홍 전 회장의 대선 출마설은 이미 작년 말부터 있었다. 국회 탄핵소추 직후인 지난해 12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나가는가 하면, 연초부터 중앙일보를 통해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리셋 코리아'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홍 전 회장 본인도 자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익히 알고 있다. 최근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그는 “평소 나라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대선 출마설까지 나온 게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대선 출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는 “거기(대선출마)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하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홍 전 회장의 대선 출마를 전망하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지난 21일 오마이TV의 <오연호의 대선열차> 인터뷰에서 “밤을 새워 몇 날 며칠 고민을 하고 회장직을 그만둔 것은 대권 출마가 아닐 바에야 그런 걸 할 이유가 있겠느냐”며 “중앙일보 회장직을 그만두었다는 그 자체가 대권을 결심했다는 뜻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선이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직접 대권에 도전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20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홍 전 회장에 대해 “상당히 경쟁해 볼만한 좋은 후보다. 중도ㆍ보수도 표방하지만 통일 문제에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회장을 사임하기는 했지만, 이제 대통령을 나올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무소속은 우리나라 정치구조로 볼 때 어려울 것이다. 또한 4개 정당이 전부 후보 등록을 마쳤고, 사실상 경선 체제로 가고 있다. 사실 정당에서 추대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홍 전 회장도 이를 고려한 듯 “지속적인 연구와 세미나를 열어 결과물을 낸 뒤 현장의 반응을 알아보고 6개월 이내, 아무리 오래 걸려도 1년 이내에 현실감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걸 해볼까 생각하고 학자들과 논의하고 있다”며 중장기적 계획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선 후보가 아닌 유력 후보를 조력하는 ‘킹메이커’로서 후방 지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광주 경선 결과 이후 김 전 대표가 주도하는 '비문 연대'의 한 주축으로 홍 전 회장이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홍 전 회장이 밝힌 것처럼 정책 연구소를 통해 국정 어젠다를 제시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홍 전 회장이 이사로 몸담고 있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를 연결고리로 안희정 충남지사의 조력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있다. 여시재 이사장은 안 지사의 경제 멘토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이고, 부원장은 안 지사의 정치적 동지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 전 부총리는 “여시재는 정파와 정당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오작동하고 있는 87년 체제를 어떤 시스템으로 개혁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과제”라고 선을 그었다.

차기 정부 입각 노리나

이번 대선 참여 여부를 떠나 홍 전 회장이 정치적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는 데는 상당수가 동의하는 상황이다. 그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경우의 수는 ‘차기정부 국무총리’다.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보수언론 출신 사주가 국무총리를 맡게 된다면 ‘국민 통합’이라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호남이 발상지인 원불교의 독실한 신자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과거 ‘홍석현 국무총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세대교체를 위해 홍석현 회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하려고 했었다"며 "(홍 전 회장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것을 김대중 대통령과 검토했으나 여러 사유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총리는 아니지만 홍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주미 대사를 하고 유엔사무총장 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몸값이 올라간 적도 있다. 하지만 대사 부임 5개월 만에 ‘삼성 X파일’이 공개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유엔 사무총장의 꿈도 사라졌다. 삼성 X파일 사건은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하고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을 홍 전 회장이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도청 테이프를 폭로한 사건이다. 이후 정부는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추천했고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홍 전 회장 자신도 공직에 대한 열망이 큰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공대에 갔다 경제학 박사를 받고 재무부ㆍ청와대ㆍ KDI, 그전엔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6년 일했으니까 난 쭉 정책을 다뤄온 사람”이라며 언론 사주로서의 능력과 차별되는 경쟁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차기 정부 입각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린 후 대권을 노리는 시나리오도 예상 가능하다.

삼성과의 관계 회복 시도?

정치적 행보와 함께 홍 전 회장이 삼성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큰 타격을 입은 인물 중 한 명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홍 전 회장의 매체인 JTBC는 최순실 태블릿PC에 담긴 국정농단 내용을 이슈화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을 이끄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JTBC는 주가가 올라갔지만 조카인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에 홍 전 회장은 “태블릿PC 보도가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을 커다란 보도를 했다는 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면서도 이 부회장 구속에 대해 “피가 통한 조카인데 당연히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그룹과 중앙일보ㆍJTBC의 관계는 썩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앙일보ㆍJTBC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광고료로 회사를 지탱하는 언론사 입장에서 최대 광고주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홍 회장의 정치 행보 내막에 ‘이재용 구하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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