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세탁’ 전문가, 사망에 ‘뒷말’ 무성… 최순실 해외 돈거래 실체 밝혀지나

최순실 모녀 독일ㆍ덴마크 거점 도모… ‘돈세탁’전진기지 의혹

정유라 변호사 사망 ‘돈세탁 관련설’… 정씨 송환 관계자ㆍ기업 ‘후폭풍’가능성

‘비선 실세’ 최순실(61ㆍ구속기소)의 딸 정유라(21)의 변호사인 피터 마틴 블링켄베르(46)가 현지에서 돌연 사망하면서 그 배경과 정유라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사인(死因)이 단순 사고인지, 아니면 최순실과 정유라와 관련돼 발생한 사건인지 여부에 따라 후폭풍이 전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라의 국내 송환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씨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과 별도로 독일 검찰이 밝힌 자금 세탁 실체가 드러날 수 있고, 삼성그룹의 지원 내역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라 변호사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과 향후 파장 가능성을 짚어봤다.

정유라 변호사 죽음의 미스터리

덴마크에서 자진 귀국을 거부하고 있는 정유라의 변호사 피터 마틴 블링켄베르가 사망했다.

현지 매체 ‘뵈르센’(Børsen)에 따르면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지난 17일 오후 덴마크 남부 랑엘란 로하스 자택에서 갑자기 숨졌다. 그의 구체적 사망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죽음과 관련해 덴마크 경찰은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링켄베르의 죽음을 단순 돌연사로 보고 있어 경찰의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 ‘엑스트라블라뎃’에 그의 사망에 따른 한국의 루머들을 보도한 고틀러 기자는 “덴마크 언론 그 어느 곳도 그의 죽음이 정유라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경찰이 단순히 심장마비로 결론내렸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경찰은 이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링켄베르 변호사를 잘 알고 있는 지인과 이웃들은 그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죽음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덴마크 검찰에서 정유라의 본국 송환 결정 발표 후 몇 시간 뒤에 블링켄베르 변호사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정씨의 송환을 피하기 위해 그가 살해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블링켄베르 변호사 사망을 정씨 소환과 연계시키는 것은 과도한 억측이라는 반론과 함께 그 배후도 의문시 되고 있다. 블링켄베르 변호사를 살해해 송씨의 소환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오판이고, 무모한 행위라는 평가다. 또한 블링켄베르 변호사를 살해하거나 이를 사주한 배후도 불투명하고,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해외 ‘돈세탁’ 관련성은

국제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전력’을 그의 죽음과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덴마크 변호사로, 검찰 출신의 경제 범죄 전문 변호사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형사사건 중에서도 중대한 경제 범죄에 특화된 인물로 그가 대표로 있는 로펌의 홈페이지는 ‘횡령, 배임, 탈세, 자금 세탁, 외환, 부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다’고 소개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그가 ‘자금 세탁’ 전문 변호사라는 점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지난해 7월 국내 JTBC가 최순실의 국정농단 내용이 담긴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 일파만파 확산됐다. 이 과정에 태블릿PC 주인 논란과 입수경위, 태블릿PC 내용의 진위를 놓고 이견이 충돌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불씨는 그에 앞서 지난해 5월 독일에서 타올랐다. 독일 검찰이 최순실의 독일법인 돈세탁 혐의를 수사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일까지 방문해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최씨가 90년대부터 독일에 회사, 또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수천억원의 자금을 세탁한 정황을 알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안민석 의원은 지난해 12월 14일 “최순실씨가 독일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천억 원대의 자금세탁을 한 정황을 포착했다”며 “이 페이퍼컴퍼니에서 2006~2007년과 2012년 대선 직전에 큰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1992년 최순실, 정윤회(최순실 전 남편), 유천호라는 사람 세 사람의 명의로 독일에 ‘유베리’라는 회사가 건립됐다. 이후 올해까지 한 10개의 페이퍼컴퍼니가 만들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 의원은 “비덱, 더블루케이 말고도 더 많은 회사가 만들어졌다가 파산했다가 이런 과정을 겪었다. 소위 말해서 자금세탁을 위한 페이퍼컴퍼니”라면서 “그 규모는 약 수천억 원대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독일 검찰은 최씨의 돈세탁 혐의 수사 과정에서 최씨의 태블릿PC를 압수했고, 그 안에 국정농단 문건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돈거래 내용이 담긴 것을 파악했다는 게 현지 검찰과 국제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는 태블릿PC에 대한 최순실의 발언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를 통해 직간접으로 드러났다.

최순실은 지난해 10월 24일 JTBC의 태블릿PC와 국정농단 보도 이틀 후인 26일(현지시간) 독일 헤센주 한 호텔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연설문 수정을 선의로 도와줬을 뿐 국정농단과 같은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최씨는 태블릿PC의 문건에 대해 국가기밀이란 인식도, 일부 수정한 것이 국정농단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즉, 최씨는 문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공개한 최씨의 녹취록에는 최씨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큰일났네, 고(영태)한테 정신 바짝 차리고 걔네들이 이게 완전 조작품이고 얘네들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몰아야 된다”며 “이성한(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도 아주 계획적으로 하고, 돈도 요구하고 이렇게 했던 걸로 하지 않으면…안 시키면 다 죽어.”

최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큰일 났네” “안 시키면 다 죽어” 등 위기에 몰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 녹취록은 JTBC의 태블릿PC 보도 직후 독일에 있던 최씨가 10월 30일 귀국 전에 지인들과 통화한 내용으로 최씨는 국가기밀 문건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크게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녹취록 앞 부분에서 최씨는 “고원기획은 얘기를 하지 말고, 다른 걸 좀 하려고 하려다가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도움을 못 받았다, 이렇게 나가야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고원기획’은 최씨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함께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태로 두 재단이 설립된 뒤 사라졌다. 대기업들로부터 수십억원의 돈이 투입된 미르ㆍK스포츠재단은 사실상 최순실이 주인인 법인이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재단일을 했을 뿐 국정농단 문건과는 관계없는 인물이다.

결국 최순실의 녹취록 내용은 고원기획, 미르ㆍK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돈’문제에 대한 것이고, 최씨가 이를 숨기려고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상황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말해 최씨는 국가기밀 문건이 아닌 ‘돈’ 관련 부분이 드러날까봐 불안해하고 이를 숨기려했던 것이다.

독일 검찰과 국제 정보 관계자 등에 따르면 미르ㆍK스포츠 재단이 국내에서 대기업들로 받은 돈은 일부이고 해외, 특히 독일로 자금을 보내는 창구로 활용되거나 그런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지난해 5월 독일 검찰의 최순실의 독일법인 돈세탁 혐의 수사다. 독일 헤센주(州) 프랑크푸르트 검찰은 “지난 5월 한 은행으로부터 고발이 들어와 돈세탁 수사가 시작됐고, 한국인 3명과 독일인 1명이 수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니젠 대변인은 최씨와 딸 정유라, 그리고 정씨의 승마코치이자 최씨의 독일법인 비덱스포츠 대표인 크리스티안 캄플라데로 추정되는 3명 외에 ‘30세 한국인 남성’이 수사 대상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태블릿PC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국내외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는 국정농단 문건이 아니라 독일 검찰의 최순실의 돈세탁 수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은 독일 검찰이 최순실의 돈세탁 혐의를 수사하면서 압수한 것으로 전해진 태블릿PC가 어떻게 한국에서 발견됐는가 하는 점이다. 태블릿PC 내용에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의문이다.

태블릿PC 국정농단 문건을 처음 보도한 JTBC는 특별취재팀 심모 기자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더블루K의 빈 사무실에 있던 책상 서랍에서 태블릿PC를 찾았다고 밝혔다. JTBC는 “내부 회의를 거쳐 사건 실체를 규명할 대단히 중요한 증거물인데 분실하거나 은닉ㆍ파기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틀 뒤인 20일에 사무실로 태블릿PC를 가져와 복사해 분석한 뒤 보도가 나간 10월 24일 검찰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독일 검찰이 최순실의 돈세탁 혐의를 수사한 뒤 최씨에게 돌려준 것을 최씨최 귀국할 때 가져왔다가 더블루K 사무실에 보관했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검찰의 수사 발표와도 일치한다.

검찰은 자체 디지털 포렌식팀이 기기 속에 저장된 IP의 추적과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분석한 결과 최씨의 동선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며 태블릿PC가 최씨의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최씨의 항공권, 출입국 내역 등을 대조해 본 결과 최씨가 독일과 제주도 등을 오갈 때마다 기기도 같은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고 밝힘에 따라 최씨가 귀국할 때 태블릿PC도 함께 가져왔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의 발표나 JTBC의 태블릿PC 입수 경위엔 모순이 있어 보인다. 앞서 박영선 의원이 청문회에서 공개한 최순실 녹취록의 내용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 직후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태블릿PC에 담긴 돈거래 내역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JTBC의 보도나 검찰의 수사 발표 어디에도 ‘돈거래’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실제 JTBC와 검찰이 확보한 태블릿PC에는 최씨의 돈거래 내역이 담겨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처음부터 태블릿PC에 돈거래 내역이 빠진 것을 알았다면 JTBC의 보도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최씨가 지난해 10월 30일 귀국한 것도 태블릿PC에 돈거래 내용이 없다는 것을 누군가로부터 전해듣고 결행했다는 게 국내외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르면 JTBC가 처음 보도한 태블릿PC와 독일 검찰이 돈세탁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최씨의 태블릿PC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태블릿PC 입수 경위와 관련해 독일 비덱스포츠 사무실, 또는 독일에서 관리인이 사무실을 정리하면서 처분한 것을 입수했다거나 최씨 변호인이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펴는 배경이 됐다.

태블릿PC를 둘러싼 전후 상황과 국내외 논란을 종합하면 독일 검찰이 압수한 최씨의 태블릿PC와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 차이의 핵심은 ‘돈거래’ 내역이다.

다시말해 최씨의 본래 태블릿PC에서 ‘돈거래’ 내역이 빠진 것이 한국에서 발견된 태블릿PC이고, 원본은 독일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누가, 왜 원본 태블릿PC에서 돈거래 내용을 뺀 국정농단 문건만 담긴 태블릿PC를 국내 더블루K 사무실로 옮겨놓았는가 하는 의문이 따른다.

‘자금 세탁’ 전문 변호사의 죽음

지난 17일 사망한 블링켄베르 변호사가 정유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 초 1월이다. 덴마크 경찰이 지난 1월 1일 덴마크 올보르에서 정씨를 체포한 뒤 이곳 대형 로펌의 ‘에이스급’ 변호사인 슈나이더와 함께 정유라의 변호인으로 합류하면서다.

정유라는 지난해 6월께부터 독일 헤센 주(州) 슈미텐 지역에 머물다 그해 9월 이화여대 입학 특혜 의혹 등이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덴마크 올보르로 도피한 것을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외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순실과 딸 정유라는 오래전부터 독일과 덴마크를 오가며 생활했고, 국내에 있을 때부터 해외 거점을 독일과 덴마크로 정해놨다는 것이다.

최순실이 지난해 10월 30일 귀국 후 체포된 뒤 정유라 또한 올해 1월 1일 덴마크 경찰에 체포됐다. 덴마크 검찰은 한국으로부터 정씨에 대한 송환요구를 받고 송환 여부를 검토했으나 정씨가 “한국 가지 않겠다"며 완강하게 버티고 블링켄베르 변호사 등의 조력에 힘입어 한국 송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지난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법원에서도 최종적으로 송환을 결정하면 정씨가 덴마크에 망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따라 실제 정씨의 한국 송환이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7일 덴마크 검찰이 정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날 블링켄베르 변호사는 자택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정씨 사건과 무관하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국내외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선 최순실 모녀가 독일과 덴마크에 거점을 마련한 뒤 돈세탁 과정에 블링켄베르 변호사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죽음이 최순실 모녀의 돈세탁과 관련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블링켄베르 변호사가 최씨의 돈세탁에 공조했거나 공개돼서는 안될 비밀스런 내용을 알게 돼 사망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나아가 최씨의 돈세탁 혐의에 대해 독일 검찰이 처음 수사를 했다는 점에서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사망 원인을 밝혀 줄 키(key)를 독일 검찰 쪽에서 쥐고 있다는 추론도 뒤따른다.

한편, 정유라는 블링켄베르 변호사의 후임으로 마이클 줄 에릭센 변호사를 선임했다. 에릭센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덴마크 출신 니클라스 벤트너의 음주운전 사건을 비롯해 2016년 3명을 살해한 남성 간호사와 15살 소녀에게 화염병을 던진 청소년 사건의 피의자를 변호한 ‘스타 변호사’로 알려졌다.

새 변호사를 선임한 정씨는 다음달 19일 결정된 송환거부 재판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정씨가 송환돼 ‘돈거래’ 내용이 밝혀질 경우 정부는 물론, 국내 관계자와 기업 등에 파장을 줄 수 있어 실제 송환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정씨의 돈세탁 전문 변호사가 사망하고, 국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수사, 최순실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 송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정씨의 입’에 따라 박근혜정부와 관련된 사람들과 기업이 또 한차례 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다.

이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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