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ㆍ崔 , 정유라 승마지원 ‘한목소리’… 김 “최순실 모른다” 위증 정황

우연이라 하기에 같은 시기ㆍ수차례 동일 의견 전달했던 金ㆍ崔

김종 공직 첫발에 최순실 그림자, “김ㆍ최 가까운 사이라 생각”

金·崔의 ‘의견 공동체’ 주장, 설득력 있는 정황 상 근거만 다섯 가지

한민철 기자

‘서로 모른다’고 주장하던 김기춘(7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수차례의 같은 요구 및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김종(56ㆍ구속기소)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재판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김종 전 차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최순실씨가 비슷한 시기 우연의 일치로만 간주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 모릅니다”라며 최씨와의 관계에 대해 극구 부인했던 김기춘 전 실장의 발언이 위증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주간한국>은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최서원(최순실) 뇌물수수 혐의 제3회 공판’의 신문과 증언 내용을 재구성해보며, 그 사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이날 재판에 특검 측 증인으로 참석한 김종 전 차관은 우선 김기춘 전 실장과의 첫 만남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증인 신문을 맡은 특검 측 김영철 검사(44ㆍ사법연수원 33기)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9월 지인이었던 J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손 모 교수로부터 ‘공직에 들어가 볼 생각이 있는가’라는 제의를 받았다.

사실 손 교수의 이런 제안은 하 모씨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손 교수의 제자였던 하씨는 앞서 자신이 아는 사람을 문체부 차관에 추천했다. 그러나 그가 인사검증에 걸렸고 이후 하씨는 손 교수에게 체육계 인사 중 문체부 2차관을 할 만한 사람을 알아봐주길 요청해, 김 전 차관에게까지 이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차관은 같은 달 30일 청와대 인사수석실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뒤 인사자료를 제출했고, 문체부 2차관에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취임을 약 일주일을 앞둔 10월 중순경, 김 전 차관은 청와대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비서실장님이 만나고 싶어한다’라는 연락을 받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은 “문체부의 가장 중요한 일이 스포츠 비리에 대한 체육 개혁인데,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고, 이에 김 전 차관도 자신의 포부와 소신에 대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춘 전 실장의 두 번째 호출은 김 전 차관이 취임한 지 약 두 달 후인 12월 중순경 이뤄졌다. 이날 김 전 차관은 청와대 비서실장실에서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났다.

김 전 차관은 특검 측에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김기춘 전 실장이 전달한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김 전 차관을 낙점했고, 차관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말한 사실 그리고 대통령이 체육계에 관심이 많으니 체육계 비리를 척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김 전 실장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 교수를 통해 자신을 문체부 차관에 추천해준 하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하씨는 김 전 차관에게 “사실 김종 차관 추천을 지지한 여자가 있는데, 김 차관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전 차관은 하씨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줬다는 여자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1층 커피숍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이 만난 그 여자는 바로 최순실씨였고, 최씨는 김 전 차관에게 승마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체육계에 비리가 많으니 개혁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미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 체육계의 ‘비리’와 ‘개혁’이라는 두 단어가 머릿속에 박힌 상태였지만, 최씨가 김 전 실장과 똑같은 말을 강조했다는 점에 대해 당시까지는 크게 의아해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유라 공주승마’ 의혹에 金ㆍ崔 “적극적 대응하라” 한목소리

지난 2013년 4월 경상남도 상주에서 개최된 ‘상주 승마대회’에서는 참가 선수들 중 일부가 마방의 부정 배정을 받았다는 주장이 한 선수 측으로부터 제기됐고, 이 부정행위 때문에 자신이 2등을 했다며 상주 경찰서에 조사를 의뢰했었다.

물론 이 사건은 경찰 조사와 문체부의 감사 결과,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종 전 차관은 취임 후 과거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접했고, 당시 마방의 부정 배정으로 우승을 하지 못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선수가 정유라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특검 측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상주 승마대회에 대한 문체부 감사 내용을 본 뒤 정유라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어 하씨를 통해 최순실씨의 남편이 정윤회이며 이들의 딸이 승마선수 정유라라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었다.

김 전 차관에게 정유라라는 인물을 다시 주목하게 됐던 계기는 지난 2014년 4월 8일, 국회 상임위 질의 과정에서 당시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유라가 대한승마협회로부터 별도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치지 않은 채 대표로 발탁됐다는 ‘공주승마’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차관은 정유라에 대한 의혹 제기가 언론보도를 통해 시끄러워지자 최순실씨로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문체부가) 해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사태를 수습해달라는 최씨의 부탁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도 “국회 의혹제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김 전 차관은 2014년 4월 14일, 박근혜 대통령과 정유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정유라의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도 아무런 부정이 없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는 것과 동시에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 전 차관은 이날 재판에서 당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해당 보도자료의 해명은 문체부가 직접 조사해 밝혀낸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전 차관은 특검 측의 신문에 “해당 보도자료에 대한 브리핑을 한 것은 문체부가 맞지만, 보도자료에 나온 해명 내용들은 대한 승마협회에서 자료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김영철 특검보는 “당시 증인(김종 전 차관)은 최서원(최순실) 피고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똑같은 내용을 곧바로 김기춘 실장으로부터 들어서 의아해 했는가”라고 신문했다.

이에 김종 전 차관은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사실 당시 문체부의 공식 해명으로 정유라의 공주승마 문제에 대한 언론의 관심으로부터 곧바로 수그러들었지만, 이로 인해 빚어진 승마계 내부에서의 잡음은 지속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상주 승마대회 문제 이후 정유라 문제가 국회에서까지 크게 거론되자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던 한화그룹이 2014년 4월 9일 회장사 사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종 전 차관은 최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최씨는 김 전 차관에게 “인천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화가 회장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는가, 인천 아시안게임까지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은 특검 측의 이런 신문 내용에 전부 동의했다. 그런데 여기서 김 전 차관을 놀랍게 하는 일이 이어졌다.

특검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최씨의 연락이 있고 바로 얼마 후에 김기춘 전 실장이 김 전 차관에 연락해 “인천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화가 승마협회 회장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하는가, 아시안게임까지 계속 하도록 하라”라며 최씨와 똑같은 지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김 전 실장은 “만약 한화가 더 이상 회장사를 못할 것 같으면, 스폰서라도 하라고 말하라”라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김 전 차관은 “그렇게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이에 김 전 차관은 대한 승마협회 부회장에게 김기춘 전 실장의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실제로 한화는 회장사 사의 표명 보름 만에 이를 철회했다.


재판장에서 김 전 차관은 이때부터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실장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차관의 해당 증언이 나오자, 본지 기자는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최순실씨가 김 전 차관을 매섭게 노려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승마협회 회장사, 삼성으로 바꿔”… 속전속결로 추진된 金ㆍ崔의 공동지시

한화그룹의 대한승마협회 사의 표명이 없던 일로 넘어간 뒤 김종 전 차관은 최순실씨로부터 “한화에서 승마협회를 잘 이끌어가지 못하니,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삼성에서 승마협회를 맡으라고 해야겠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은 같은 시기 김기춘 전 실장으로부터도 “한화가 승마협회를 맡을 능력이 없어 보이니, 삼성으로 옮겨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후 실제로 2014년 9월 김 전 실장으로부터 “앞으로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을 것이다. 삼성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갈 것이니 한 번 만나봐라”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차관은 김 전 실장의 지시대로 삼성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통화한 사람은 바로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이었다. 이에 김 전 차관은 임대기 사장과 같은 달 18일 처음으로 만났다고 증언했다.


특검 측은 관련 증거로 김종 전 차관의 2014년 9월 일정표를 제시했다. 재판장 스크린에 올라온 해당 일정표의 18일란에는 ‘오전 8시, 임대기, 프라자호텔 무라사키 일식당’이라는 내용이 명시돼있었다.

특검 측의 신문에 따르면, 당시 임대기 사장은 김종 전 차관에게 앞으로 삼성에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을 것이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삼성 임원 한 명을 승마협회에 파견시켜 인수인계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김 전 차관은 당시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실장의 ‘한목소리’대로 이뤄진 속전속결의 절차들에 대해 쉽게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한화그룹의 대한승마협회 회장 임기는 2017년 2월까지였고, 임기 만료까지는 2년 반이라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특히 김 전 차관은 “한화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승마협회 회장을 선임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회장사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던 2014년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문건 사건’이 알려지며, 김 전 차관은 최순실씨로부터 연락이 한동안 끊겼다고 회상했다.

김 전 차관은 “처음에 최서원 피고인은 자신이 아닌 고영태를 통해 연락을 하라고 했었는데, 제가 김기춘 실장과 삼성ㆍ승마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최서원 피고인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라며 “2014년 말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자 2~3달 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2015년 2월경 영재센터 설립 관련해서 연락이 왔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최순실씨는 김 전 차관에 영재센터 설립 이야기를 하면서, “삼성에서 승마협회 회장사가 됐으니, 지원이 잘 될 것 같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최순실씨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오기 바로 한 달 전인 2015년 1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종 전 차관을 청와대에 불렀다.


특검 측이 김종덕 전 장관 등으로부터 받은 진술 내용에 따르면,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에게 크게 세 가지 사항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문체부 인사들이 한양대와 홍익대 인사들이 많은 것에 ‘좋은 사람을 우리가 함께 데리고 쓰긴 쓰되, 언론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김 전 차관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문체부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요청으로 태권도 진흥재단 이사장 임명을 한 것과 안민석 의원이 문체부 산하 한국스포츠개발원장을 추천한 사실을 두고 ‘문화나 체육 분야에서 정치인들의 (공직) 추천을 앞으로 배제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정유연(정유라)같이 끼가 있고 운동 열심히 하는 젊은 유망주들을 잘 키워야 하는데, 왜 이런 선수의 기를 자꾸 죽이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 전 차관은 재판부에 “김기춘 실장도 말했고, 대통령도 언급하셨고, 최서원 피고도 말했기 때문에 삼성이 정유라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파악했다”고 증언했다.

한민철 기자



주간한국